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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Sep 14. 2021

바퀴벌레와 함께 한 베트남 생활

2017년 후에 세종학당 3학기

'바퀴벌레가 있는 집에는 개미가 없고, 개미가 있는 집은 바퀴벌레가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대체 누가 한 소린지 모르겠다. 우리 집에서는 두 놈들 다 사이좋게 잘 지내던데.


2017년 5월, 한 달 호텔 살이가 끝나고 드디어 계약한 집으로 왔을 때였다. 당시 나는 집을 구했지만 동기 김 선생님은 집을 구하지 못했고, 다행히 우리 집은 방 두 개에 침대와 에어컨도 각각 있었기에 약 6개월 간 같이 살았다. 우리는 가끔 부엌에 나타나는 개미 떼를 보며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개미가 이렇게 많으니 바퀴벌레는 없겠다고 안도하기도 했다.


이사하고 며칠 후, 퇴근하고 나서 책상에 앉아 평화롭게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귀 옆에서 선풍기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뭐지?' 하고 옆을 휙 돌아봤는데... 나는 기겁을 하고 자리에서 도망쳤다. 검지 손가락 만한 바퀴벌레가 책상 옆 옷장 손잡이에서 그 커다란 날개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그게 바퀴벌레인지도 몰랐다.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가 들어온 줄 알았다. 한 달 살이 하던 호텔에서 이미 바퀴벌레를 한 번 경험해 봤지만, 이렇게까지 자세히 본 적은 없고 게다가 날개가 있는 줄도 그렇게 큰 줄도 몰랐다. 나는 혼미백산해서 옆 방으로 달려가 김 선생님에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수풍뎅인지 사슴벌레인지 이상한 게 들어왔어요! 근데 제 귀 바로 옆에서 날갯짓했어요. 웬 선풍기 소리인가 했는데 벌레 소리였어요!"


김 선생님은 내 방으로 들어가 살충제를 살포했다. 그런데 그 직후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거실로 도망갔다. 그게 힘차게 날아올라 우리 쪽으로 온 것이다! 약을 먹은 벌레는 약이 아니라 마약을 먹은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화장실 문에 부딪치고 천장에 부딪치고 바닥에 떨어져 버둥거리다가 다시 이리저리 부딪치고! 우린 그냥 저게 빨리 죽기를 바라며 살충제를 뿌려댔다.


한 2분 지났을까, 마침내 그놈은 더 이상 날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다리만 부들거렸다. 그제야 그게 바퀴벌레였다는 걸 알았다. 세상에나 바퀴벌레가 이렇게 날아다니는 거였다니. 부들거리는 여섯 개 다리와 그 다리에 달린 갈퀴, 마치 외계인 같은 이상하고 거북한 모양...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초코파이 상자로 그걸 덮었고 다음 날 아침 김 선생님은 쓰레받기에 상자와 바퀴벌레를 조심조심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다 차지도 않은 쓰레기통을 꽁꽁 묶어 아파트 앞 쓰레기 수거함에 던져 버렸다.


나는 바퀴벌레를 내 얼굴 옆에서 본 것과 그 우람찬 날개 소리, 죽어갈 때 바들거리는 다리만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시체조차 다신 보고 싶지 않았지만, 슬프게도 이 불청객은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거의 안 만들고, 살충제를 꾸준히 뿌려도 소용없었다. 우리 집의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 그리고 후에, 베트남의 문제였기 때문에. 이놈은 아파트 외벽을 올라와 외부로 뻥 뚫려 있는 우리 집 발코니를 통해 방 안으로 들어왔고 화장실 하수구를 통해서도 잘만 올라왔다. 방 안으로만이라도 오지 말라고 문틈과 창문 틈에 폼 테이프를 붙여도 소용없었다. 주로 나타나는 곳은 화장실과 발코니였는데,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기 바퀴벌레가 있나 없나 확인했다.


폼 테이프


다행인 것은, 김 선생님은 첫날에만 바퀴벌레가 무서웠지 다음부터는 별로 안 무섭다고 했다. 바퀴벌레를 봐도 날아다니지만 않는다면 덤덤해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바퀴벌레 퇴치와 버리는 일은 김 선생님이 다 하셨다. 나는 김 선생님이 참 든든했다.


그런데 6개월 후, 김 선생님이 집을 구하시고 따로 살게 된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바퀴벌레를 처리해야 했다. 나는 이미 여름에 베트남에 놀러 온 언니를 통해 바퀴벌레 퇴치에 효과가 직빵이라는 '맥스포스 겔'과 개미 퇴치에 직빵이라는 '맥스포스 퀀텀'을 받았다. '맥스포스 퀀텀'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 약의 원리는 개미들이 자주 나오는 곳에 약을 설치하면 개미들이 이 약을 잔뜩 먹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 토를 하고 죽는데, 다른 개미들이 그 토를 먹고 또 죽어서 결과적으로는 집에 있는 개미들을 박멸하는 것이었다. 개미가 나타났을 때 약을 조금 줬는데, 몇 분 후에 약 주변에 새까맣게 개미 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되니 거짓말같이 집안에 개미들이 사라졌다. 다만 빗자루로 바닥을 쓸 때 간간히 개미 시체가 나올 뿐이었다. 이렇게 개미들이 나올 때마다 약을 설치하니 효과가 아주 좋았다.


맥스포스 겔과 맥스포스 퀀텀


바퀴벌레 퇴치 약인 '맥스포스 겔'은 김 선생님이 있을 때도 우리 집 발코니마다 설치했었지만, 바퀴벌레는 계속 나타났고 바퀴벌레들이 약도 안 먹는 것 같아 효과에 의심이 갔었다. 김 선생님이 이사를 가고 어느 날,  나는 이 맥스포스 겔의 효과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그걸 너무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목격했다. 세상에나. 방 문을 열어보니 방바닥이 갈색 약으로 덕지덕지 되어 있었다! 내가 설치한 약을 맛있게 먹은 바퀴벌레는 내 방바닥을 휘젓고 다니며 약을 토해내고 죽어간 것이다. 심지어 내가 왔을 때 그 큼지막한 바퀴벌레는 다 죽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배를 까뒤집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바퀴벌레는 엎드려서 자기가 토한 약 속에서 이상하게 꺾인 날개, 역시 이상하게 뒤틀린 다리를 바들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그걸 치우는 것도 고역이어서 난 이 약을 그냥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베트남에서 사는 이상 바퀴벌레는 어쩔 수 없는 거지... 내 몸에만 안 붙으면 다행으로 여겨야지...'



......그런데 그게 내 몸 붙어버렸다.


어느 날 샤워를 하고 선풍기 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뭔가가 머리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났다. 깜짝 놀라 머리를 터니 그 소리가 들렸다. 내가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바퀴벌레를 본 날 내 귀 옆에서 선명하게 들었던 그 날개 소리... 재빨리 뒤돌아 보니 역시나 그놈이 내 방에서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쫘악! 그리고 불쾌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 못할 불쾌한 느낌도 쫘악! 스프레이형 바퀴벌레 퇴치약으로 복수를 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미친 듯이 머리를 다시 감았는데, 머리를 감아도 더러운 느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머리는 대충 말리고 우리 집에서 바퀴벌레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할 수 있는 모기장을 설치한 침대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난 약 1년 반의 베트남 생활을 마칠 때까지 바퀴벌레와 함께 살았다... 이 불청객은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나는 베트남 후에 생활이 정말 좋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적응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딱 두 가지는 끝까지 힘들었다. 한 가지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후에의 우기(雨期)였고 나머지 한 개는 이 바퀴벌레였다. 정말 이놈을 볼 때마다 한국이 그리워졌다. 한국 음식이 그립거나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한국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이놈을 보기 싫어서 한국에 가고 싶어졌다.


후에가 다른 곳보다 특히 바퀴벌레가 많은 것은 아니었고, 베트남 자체가 바퀴벌레가 많았던 것 같다. 대도시인 호찌민에 놀러 갔을 때 꽤 좋은 호텔에 갔는데도 화장실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바퀴벌레 모자(母子)를 봤으니 말이다. 5성급 호텔 후기에도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얘기가 있었다. 베트남을 완전히 떠날 때, 베트남에 너무 정이 들어 떠나는 게 싫었는데도 바퀴벌레를 안 볼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아, 그래도 후에에서 주택에 사는 한국인이 집에서 쥐가 나와서 집안 곳곳 쥐덫 다섯 개를 설치해 놨더니 다음 날 그 쥐덫에 모두 쥐가 잡혀있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나마 우리 집은 아파트 4층이라 그럴 일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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