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고찰- 인간의 비극과 고통을 통해 본 예술
지난 겨울 이탈리아 여행 중 바티칸 시국의 바티칸 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보게 되었다. 작품의 이름은 ‘라오콘 군상’ 이었다.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군상에 등장하는 세 인물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품 자체에 경외감이 들었다. 단순히 뱀이라는 동물이 주는 고통을 넘어, 다른 높은 존재의 개입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조각의 형태와 인체미가 너무나 완벽해 보여서 조각 기술이 완벽히 발달한 시대의 작품으로 느껴졌다. 이는 거장의 작품이 분명하지만, 작품의 목적이 단순히 사실 묘사가 아닌 종교적 상징성을 띄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여행이 끝난 후, 좀 더 자세한 사실적 조사와 나의 발칙한 상상력을 동원해 ‘라오콘 군상’을 고찰해보았다 . 먼저 본격적인 주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라오콘 군상을 둘러싼 배경을 알아보려고 한다.
구체적인 제작자와 제작연도는 미상이다. 다만 제작연도는 BC 175년~BC 150년으로 추정되며, 1506년 로마에서 발굴 된 것으로 현재는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중이다.
라오콘 군상은 헬레니즘 시대의 대리석 조각으로 1506년 어떤 농부의 포도밭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조각이 발견된 이후로 수많은 예술가들의 예술적 모티브로 활용되었다.
또한 조각의 천재로 불리는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자기의 조각품 보다 뛰어나다고 인정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과 거장들의 모티브로 활용될만한 내외적 의미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먼저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려보자. 헬레니즘 시대 당시에는 오늘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종교의 대상이 되었다. 이 작품의 모티브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등장인물들이었다.
고대 그리스 영웅 서사시에 나오는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의 전쟁 , ‘트로이 전쟁’ 이 10년 넘게 지속되자 이를 끝내고자 하는 신들의 개입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트로이 목마’ 이었는데, 당시 트로이의 신관이자 포세이돈 신전의 사제였던 라오콘은 이를 알아차리고 트로이 목마를 절대로 성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본 신들의 노여움으로 인해 라오콘은 바다에서 나온 거대한 뱀에 휘감기게 되었고 그의 아들들 역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장면을 목격한 트로이 군은 신의 노여움을 풀고자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보내고, 목마 안에 있던 그리스 군이 트로이 군을 멸망시킴으로서 트로이 전쟁은 끝이 나게 된다. 이러한 신화적 배경이 담겨진 작품이 라오콘 군상이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작품을 고찰해본다면 라오콘과 그의 자식들 표정에서는 많은 것이 느껴진다. 자식들의 라오콘을 올려다보는 시선 속에서는 아버지의 대한 원망과 두려움과 고통이 느껴진다. 특히 사진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아들은 거의 의식을 잃어가는 표정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오른쪽에 위치한 아들의 두려운 표정은 그 생동감과 현실감 때문에 소름이 끼친다.
그렇다면 라오콘의 심정은 어땠을까? 라오콘은 분명 사건 이전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아테네 여신의 목적이 개입된 목마였기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면 응징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트로이가 함락 당한다면 이는 죄책감과 많은 인명피해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라오콘의 시선은 오른쪽 위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자식들이 먼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아버지로서의 극한의 고통과 자신에게 선택의 기회가 있었지만 두 가지 선택 모두 희생을 감수해야했던 사제로서의 소명 그리고 자신과 자식을 응징하는 아테네 여신에 대한 깊은 원망과 포세이돈에 대한 실망감 등의 모든 인간의 고통의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만약 라오콘의 상황이 우리 자신에게 왔다면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한치 앞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트로이 목마를 들여보냈다면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인명이 살해당할 것이고, 신관으로서의 명예를 지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불가피한 두 가지의 선택적 기로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무기력했다. 당시의 그리스 로마 신들은 일종의 종교적 존재들이었다. 신들의 목적이나 의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되면 무조건적으로 응징을 받게 되었으며, 신들은 무조건적으로 선을 추구하지는 않았으며 각자 개인의 사리사욕이 있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땐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오늘날 종교적 대상이 되는 주체들은 언제나 선을 강조하고 약자의 편에 서며 살생을 금기시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신분제도의 존재는 물론, 전쟁과 살생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대이다. 이를 기반으로 파생된 종교 역시 완벽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라오콘의 조각가는 인간이 가진 무능함과 부성애를 바탕으로 일부 신들을 비판하고자하는 의도를 가진 파괴적 조각으로도 보인다. 다른 관점으로는 신에게 대응하여 응징 받는 모습을 표현하여 대중에게 공포감을 생성하기 위한 작품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조각상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조각의 생동적인 표정 뿐만 아니라 사실보다 더 사실에 가까운 인체미에 감탄하게 된다. 커다란 두 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세 사람의 몸짓과, 뱀의 똬리로 인해 뒤틀린 근육과 뱀에게 물려 부풀어오른 핏줄은 당시의 어느 조각상들과 비교해도 완벽한 조각이란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두고, 미술사학자 요한 빙켈만은 “고귀한 단순과 위대한 고요”로 정의 내렸고, 미켈란젤로는 “예술의 기적” 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이후 수 많은 미완성의 ‘피에타’의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마스터피스에 분류되는 조각인 만큼, 필자는 작품에 신화적 배경과 종교적 상황 외에 또 다른 작가의 의도가 담겨져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에 대한 모든 해석은 사실과 무관한, 필자의 주관에 근거한 독자적 해석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