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전쟁

ep. 01

by 추설

EP.01


회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토 마사노리 기획2팀장이 자리에 서서 말했다.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시선이 모였다. 이 사람은 안건이 가벼울 때는 이렇게 시작하지 않는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화면을 켰다. 배터리 표시를 확인한 뒤, 무심코 밝기를 한 단계 낮췄다.

“아라카와구 미나미센주 재개발 건입니다.”

프로젝터 화면이 바뀌었다. 지도 위에 표시된 구역은 선로와 하천 사이에 끼어 있었다. 오래된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골목은 소방차가 들어가기 어려워 보였다. 사진 속 건물 외벽에는 수십 년 동안 손이 닿지 않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긴… 쉽지 않은 지역이죠.”

재무기획팀의 다나카 요시히로 차장이 예산표를 넘기며 말했다. 말끝을 굳이 닫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알고 있습니다.”

사토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후도, 방재, 고령화 지표 모두 기준을 넘습니다. 침수 위험 구역도 포함돼 있고요.”

화면에는 수치와 그래프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자료에 메모를 했고, 누군가는 팔짱을 낀 채 화면만 보고 있었다. 이 정도 자료가 나왔다는 건, 이미 내부에서 몇 차례 정리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주민 반발은 피하기 어렵겠군요.”

임원석 쪽에서 말이 나왔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말투였다.

“네.”

사토 팀장은 짧게 답했다.

“그래도 행정 쪽에서는 필요성이 명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행정 쪽’이라는 표현은 늘 범위가 넓었다. 누구까지를 포함하는지는, 그때그때 달라졌다.

“명분은 충분하네요.”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명분이 있다는 말과, 일이 수월하다는 말은 다른 의미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국토교통성 쪽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토 팀장이 말을 이었다.

종이를 넘기던 손이 잠깐 멈췄다. 다나카 차장이 안경을 고쳐 썼고, 임원석 쪽에서는 의자에 등을 깊게 붙이는 소리가 났다. 국토교통성이라는 단어는 늘 이런 반응을 불러왔다.

“처음부터 국토부가 들어오는 겁니까.”

다나카 차장이 물었다.

“정책 연계 사업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럼 기준은 계속 움직이겠군요.”

다나카 차장의 말에는 계산이 섞여 있었다. 일정이 아니라, 손봐야 할 문서의 양을 떠올리는 사람의 말투였다.

“가이드라인은 1차가 내려온 상태입니다.”

사토 팀장이 다음 장을 넘겼다.

“세부 기준은 상황을 보면서 조정될 예정입니다.”

“조정이라는 게,”
다나카 차장이 말을 이었다.
“문서가 늘어난다는 뜻이겠죠.”

회의실 여기저기서 짧은 숨소리가 흘렀다. 웃음은 아니었지만, 다들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국토부가 들어오는 순간, 한 장으로 끝날 자료가 세 장이 되고, 한 번 확인하던 내용이 세 번씩 돌아오게 된다.

나는 예산 페이지로 시선을 옮겼다. 숫자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항목도 논리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만 이 표가 이대로 끝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외부 용역 비중이 꽤 됩니다.”

내가 말을 꺼내자, 사토 팀장이 바로 이쪽을 봤다.

“환경, 방재, 주민 대응까지 대부분 외주네요.”

“내부 인력으로는 감당이 어렵습니다.”

사토 팀장이 답했다.

“정부 쪽 대응까지 포함하면요.”

다나카 차장이 예산표를 두드렸다.

“비용 자체는 문제 없습니다. 다만 수정이 들어가면 다시 봐야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회사에서 ‘다시 본다’는 말은, 당장은 결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올 때마다, 일정은 자연스럽게 밀렸다.

“오늘은 큰 흐름만 공유하겠습니다.”

사토 팀장이 말을 정리했다.

“세부 검토는 다음 회의부터 들어가죠.”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임원석이 먼저 비워졌고, 그 다음에야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는 바로 전화기를 들었고, 누군가는 자료를 가방에 넣으며 다음 일정을 확인했다.

자리로 돌아와 나는 메일함을 열었다. 방금 회의에서 사용된 자료가 도착해 있었다. 파일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화면 속 숫자와 문장은 방금 전과 거의 같았다.

거의.

“미즈하라 과장.”

옆자리 주임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국토부까지 들어오면,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겠죠.”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쪽 일은 원래 그래.”

주임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괜히 말 얹었다가 일이 늘어나는 걸 원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잠시 뒤, 외부 컨설팅사에서 메일이 하나 더 들어왔다. 발신자는 고바야시 유이치, 이번 프로젝트 담당 PM이었다.

“미나미센주 건 관련, 일부 보완 요청드립니다.”

본문은 여전히 짧았다.

“국토교통성 가이드라인 반영 필요합니다.”

나는 메일을 열어둔 채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바로 처리할 수도 있었고, 잠시 미뤄둘 수도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는 점심 약속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재킷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메일을 임시함으로 옮겼다. 지금 당장 손대지 않아도 되는 일은, 이 회사에서는 그렇게 분류하는 편이 낫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사무실 안의 공기가 조금 풀렸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에서 나왔을 때와 다름없이,
일은 정해진 순서와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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