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전쟁

EP. 03

by 추설

EP.03


회사로 돌아오는 길은 점심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 같은 건물로 향하는 발걸음들, 엘리베이터 앞에서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동선까지. 점심을 먹었다는 사실만 빼면 오전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한일커플 #한일로맨스 #로맨스 #멜로소설 #도서추천 #로맨스소설추천

자리에 돌아와 재킷을 의자에 걸었다. 모니터를 켜자 화면이 천천히 밝아졌다. 메일함에는 새로운 알림이 몇 개 더 쌓여 있었지만, 나는 바로 열지 않았다. 먼저 오전에 띄워 두었던 자료를 다시 불러왔다. 미나미센주 재개발. 지도와 수치, 그래프가 정해진 순서대로 화면에 정렬됐다.

회의에서는 다들 큰 틀만 봤다. 명분과 규모, 행정 쪽의 관심. 그 정도면 충분한 자리였다. 대신 실제로 일을 하게 되는 쪽에서는, 그 틀 안에서 어디가 가장 먼저 흔들릴지를 보게 된다. 나는 주민 밀집 구역 표시를 확대했다가 줄였다. 침수 위험 표시와 겹치는 지점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숫자는 변하지 않았지만, 겹치는 선이 눈에 계속 걸렸다.#한일커플 #한일로맨스 #로맨스 #멜로소설 #도서추천 #로맨스소설추천

전화벨이 울렸다. 사토 마사노리 팀장이었다.

“미즈하라 과장, 지금 잠깐 괜찮나.”

“네.”

“아까 회의 자료, 외부 컨설팅 쪽에도 넘겼지.”

“네, 바로 전달했습니다.”

“국토부 쪽에서 연락이 갈 수도 있어. 형식적인 인사일 가능성이 크지만.”

“알겠습니다.”

전화는 길지 않았다. 설명도, 추가 지시도 없었다. 이 정도만 전달해도 충분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형식적인 인사’라는 말은 보통, 형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메일함을 다시 열었다. 오전에 임시함으로 옮겨 두었던 메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발신자, 고바야시 유이치. 외부 컨설팅사. 첨부 파일 하나.

파일을 열기 전에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사무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키보드 소리,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 낮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 이시다는 아직 자리에 없었다. 아마 커피라도 사러 갔을 것이다.

파일을 열었다.

보고서는 예상보다 두꺼웠다. 표지 다음 장부터 국토교통성 가이드라인 요약이 이어졌고, 기존 사내 자료와 겹치는 부분에는 표시가 돼 있었다. 읽다 보면 익숙한 문장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조정 가능 항목’이라는 제목 아래, 몇 개의 항목이 따로 묶여 있었다.

표현은 부드러웠다. ‘협의 필요’, ‘검토 여지 있음’, ‘추가 설명 요청 가능’. 어느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한 항목씩 읽다 보니, 방향은 분명해졌다. 이건 단순한 보완 요청이 아니었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다 멈췄다. 주민 설명회 횟수, 외부 자문위원 참여, 일정 재산정. 숫자는 작게 보였지만, 그 숫자가 의미하는 시간과 인력은 작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일정 전체를 다시 짜야 했다.

메일 알림이 울렸다. 이번에는 국토교통성 도메인이었다. 발신자는 낯선 이름, 사사키. 직함은 도시정비과 실무 담당으로 적혀 있었다. 인사말은 형식적이었고, 본문도 짧았다. 향후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문장과 함께, 연락 가능한 시간대가 적혀 있었다.

나는 메일을 읽고도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업무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고, 급하게 회신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이런 연락은 서두를수록 기준을 먼저 내미는 꼴이 된다.

이시다가 자리에 돌아왔다.

“과장님, 다녀왔습니다.”

“응.”

그는 자리에 앉으며 내 화면을 힐끗 봤다.

“파일 여셨어요.”

“응.”

“어때요.”

“생각한 대로야.”

이시다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를 켜고 자기 일을 시작했다. 키보드 소리가 다시 사무실 리듬에 섞였다. 나는 보고서로 시선을 돌려, 필요한 부분에 표시만 해두었다. 지금 판단을 내릴 단계는 아니었다.

오후는 조용히 흘러갔다. 몇 통의 내부 메일에 답했고, 다른 프로젝트 관련 자료도 확인했다. 국토교통성 쪽 메일에는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답장을 쓰기 전에 정리해야 할 생각이 남아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창가 쪽 책상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사무실 불이 하나둘 켜졌고, 누군가는 야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메모장을 열어 오늘 확인한 것들을 짧게 적었다. 조정 항목, 예상 일정, 대응 순서. 길지 않은 메모였지만, 지우지 않고 남겨두기로 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휴대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도쿄 번호. 회사에서 오는 연락일 가능성은 낮았다. 나는 받지 않았다. 진동은 곧 멈췄고, 다시 울리지 않았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시다는 이미 가방을 챙긴 상태였다.

“먼저 갈게요.”

“그래.”

그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지는 걸 보며, 나는 잠시 서 있었다. 점심시간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야라는 이름, 여행 얘기. 지금은 아무 의미 없는 일상처럼 남아 있었다.

회사 건물을 나서자 바깥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퇴근 시간대의 소음이 도로 위에 깔려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아까 걸려 왔던 번호에서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오늘 연락드린 건, 미나미센주 건 관련 인사차였습니다. 국토교통성 도시정비과 사사키입니다. 편하실 때 통화 가능하시면 회신 부탁드립니다.’

형식적인 문장이었다. 나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확인했습니다. 내일 오전 중 연락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하루가 정리된 느낌이 들었다. 급하게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였다.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창밖을 봤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창에 비친 내 얼굴이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특별히 달라진 표정은 아니었다. 아직은.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불을 켰다. 하루의 끝에 가까워지자, 낮에 읽었던 문장들이 다시 떠올랐다. 조정 가능 항목. 협의 필요. 검토 여지. 말은 부드러웠지만,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오늘 하루 동안 몇 개의 기준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한일커플 #한일로맨스 #로맨스 #멜로소설 #도서추천 #로맨스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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