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EP.04
아침은 늘 같은 순서로 시작됐다. 전철에서 내려 회사 건물로 향하는 길, 자동문을 지나 로비로 들어오는 순간의 공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의 감각까지.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그 점이 오히려 신경에 걸렸다. 하루 사이에 바뀐 건 없는데, 기준 몇 개가 머릿속에 추가됐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일함을 열었다. 밤사이 쌓인 알림은 많지 않았다. 국토교통성 쪽에서는 추가 메시지가 없었다. 나는 커서를 잠시 멈췄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어제 받은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사사키. 도시정비과. 인사차라는 표현은 여전히 형식적이었다.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의 신호음 뒤에 바로 연결됐다.
“사사키입니다.”
“미즈하라 렌입니다. 어제 메시지 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상대가 목소리를 정리하는 기척이 들렸다.
“아, 네. 바쁘신데 감사합니다. 어제는 늦은 시간이라 짧게만 연락드렸습니다.”
“괜찮습니다.”
“우선 인사 겸해서 말씀드리면, 이번 미나미센주 건은 저희 쪽에서도 관심이 큰 사업입니다. 실무적으로는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
말은 부드러웠다. 속도를 조절한 톤도 익숙했다. 이런 통화는 처음이 아니었다.
“어제 컨설팅 보고서는 확인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사사키의 반응은 빠르지 않았다. 놀라지도, 안도하지도 않는 속도였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습니다. 조정 가능 항목 쪽은, 저희 내부에서도 의견이 조금 갈리는 부분이라서요. 한 번 직접 뵙고 설명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언제쯤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가능하시다면 이번 주 안으로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번 주 일정은 빽빽하지 않았지만, 비워 둔 이유가 있었다.
“목요일 오전이면 괜찮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잡겠습니다. 장소는 국토교통성 별관 회의실이 될 것 같습니다.”
별관이라는 말에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장소가 정해졌다는 사실이, 대화의 성격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느낌만 남았다.
“자료는 미리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추가 정리해서 공유드리겠습니다.”
통화는 거기까지였다. 끊고 나서야 숨을 고른 느낌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일정 하나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무게가 달라졌다.
사토 팀장이 지나가다 내 자리에 멈춰 섰다.
“전화했나.”
“네. 목요일 오전에 한 번 보기로 했습니다.”
“빠르네.”
“형식은 그렇습니다.”
사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관이면,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는 정리하고 나오겠다는 뜻이겠지.”
“그럴 것 같습니다.”
“자료는 과장 쪽에서 정리해줘.”
“알겠습니다.”
사토는 더 묻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시다가 키보드를 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국토부예요?”
“응.”
“목소리 어땠어요.”
“평범했어.”
“그게 제일 신경 쓰이네요.”
“그래서 준비를 하는 거지.”
나는 모니터를 돌려 이시다 쪽으로 보였다. 보고서의 표시된 부분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부터 다시 봐야 해.”
“조정 항목이네요.”
“응. 말은 조정인데, 실질은 기준이야.”
이시다는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 오늘 안에 정리해야겠네요.”
“오늘은 틀만 잡자. 세부는 내일.”
“알겠습니다.”
오전은 그 말대로 흘러갔다. 내부 자료를 다시 묶고, 외부 보고서와 겹치는 부분을 정리했다. 말의 뉘앙스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책임의 방향을 명확히 하는 문장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회의 자료는 늘 그랬다. 무엇을 쓰느냐보다, 무엇을 쓰지 않느냐가 더 중요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올 즈음, 이시다가 커피를 들고 왔다.
“과장님, 오늘은 나가서 먹을까요.”
“그래.”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서, 둘 다 프로젝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대신 날씨 얘기, 전철 지연 얘기 같은 가벼운 말이 오갔다.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후에는 외부 컨설팅 쪽에서 추가 메일이 왔다. 조정 항목 중 일부에 대한 근거 자료였다. 나는 파일을 저장만 해두고 바로 열지 않았다. 우선 순서를 정하는 게 먼저였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휴대폰이 한 번 더 진동했다. 이번에는 이시다였다.
‘오늘 늦어요? 아야랑 저녁 약속 있는데, 자료 정리 좀 늦을 것 같아서요.’
나는 짧게 답했다.
‘내일 해도 돼. 오늘은 먼저 가.’
곧바로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나는 화면을 끄고 창밖을 봤다. 어제와 비슷한 시간, 비슷한 풍경이었다. 다만 내일 일정에는 이미 목요일 오전이 표시돼 있었다. 국토교통성 별관. 사사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큰일은 없었다. 대신, 피할 수 없는 약속 하나가 추가됐을 뿐이다. 이런 날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회사 건물을 나서며, 나는 그 사실을 굳이 정리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만 목요일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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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건물을 나서고도 한동안 발걸음이 느려졌다. 집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역 반대편으로 잠깐 돌아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를 그대로 접기에는 머릿속에 남은 것들이 많았다.
사사키의 말투가 떠올랐다. 부드러웠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문제는 그 점이었다. 조정 가능 항목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하면서도, 어느 항목이 가장 중요한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의견이 갈린다’는 표현으로 전체를 묶었다. 실무 담당자가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말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토 팀장이 했던 말도 다시 떠올랐다. 별관이면 어느 정도는 정리하고 나오겠다는 뜻이라는 말. 정리라는 단어는 늘 애매했다. 무엇을 정리했는지보다, 무엇을 정리하지 않았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았다.
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오늘 통화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사사키의 번호는 개인 번호였다.
국토교통성 도메인 메일을 쓰는 사람이, 굳이 개인 번호로 먼저 연락을 해왔다는 점이 눈에 걸렸다. 급한 사안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메시지 내용은 어디까지나 인사차였다.
전철을 타고 자리에 앉았지만,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대신 오전에 봤던 보고서의 구성만 머릿속에서 다시 정리했다. 가이드라인 요약, 기존 자료와의 비교, 그리고 조정 가능 항목. 그 순서 자체는 문제없었다. 다만 조정 항목 아래에 붙은 근거 자료가 지나치게 정제돼 있었다. 설명회 횟수를 늘려야 하는 이유, 외부 자문위원이 필요한 이유가 너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보통은 그 정도 단계까지 오기 전에, 한 번쯤은 거친 의견이 섞이기 마련이다. 내부 메모, 수정 흔적, 표현의 흔들림 같은 것들. 그런데 이번 자료에는 그런 흔적이 거의 없었다. 처음부터 그 형태로 만들어진 문서처럼 보였다.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불을 켰다. 재킷을 벗어 걸고도 한동안 서 있었다. 낮에는 그냥 넘겼던 부분들이, 조용해진 공간에서는 다시 떠올랐다. 사사키가 날짜를 잡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점, 별관 회의실을 자연스럽게 언급했던 타이밍, 자료를 미리 공유하겠다는 말까지.
나는 노트북을 켰다. 회사 서버에는 접속하지 않았다. 대신 개인 메모 파일을 열었다. 오늘 적어둔 메모 아래에 한 줄을 더 추가했다.
조정 항목의 근거 출처 확인 필요.
그 아래에 또 한 줄을 덧붙였다.
컨설팅사 역할 범위 재확인.
이 정도는 의심이라고 부르기엔 과했다. 아직은 확인해야 할 사항에 가까웠다. 다만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협의가 필요한 사업’은 아니라는 느낌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대신 캘린더에 자동으로 등록된 일정이 눈에 들어왔다. 목요일 오전, 국토교통성 별관. 제목은 단순히 ‘미팅’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제목을 그대로 두었다. 굳이 수정하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일정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었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쉽게 잠들지는 못했다. 눈을 감고 있자 낮의 장면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회의실, 통화, 보고서의 문장들. 그중에서도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던 건, 사사키가 통화 말미에 했던 한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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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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