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장소, 두 개의 이름

신오쿠보에서 김치찌개를 먹었을 뿐인데, 밤이 길어졌다 Ep.3

by 추설

Ep.3


그다음 날도 퇴근하고 신오쿠보에 있는 김치찌개집으로 갔다.

친구 하나 없이, 일과 집을 오가는 게 전부였던 나에게는 그 선택만으로도 하루가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일이 생긴 건 아니었다. 다만 어제와 같은 장소로 다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일상 어딘가가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신오쿠보 역에 내리자 익숙해진 풍경이 펼쳐졌다. 여전히 사람은 많았고, 식당 앞에는 줄이 이어져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귀찮기만 했던 장면이었는데, 오늘은 그 사이를 지나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큰길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는 발걸음도 자연스러웠다.

김치찌개집 앞에 섰을 때, 가게 안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손님이 제법 많았고, 안쪽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종이 울렸다.

그녀는 계산대 근처에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짙은 쌍꺼풀이 선명한 눈이 잠깐 나를 향했다. 오늘은 머리를 묶은 채, 앞치마를 단정하게 매고 있었다. 시선이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어제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또 와주셨네요. 오늘은 목도리 챙겨가셔야 해요. 오늘도 김치찌개, 드릴까요?”

어제와 같은 질문이었다.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드릴게요.”

말을 하고 나서야, 오늘도 같은 메뉴를 고른 이유를 생각했다. 다른 걸 시킬 수도 있었는데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다. 어제와 이어진 하루라는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김치찌개가 나오기 전까지 물을 마시며 가게 안을 둘러봤다. 단골처럼 보이는 손님들의 얼굴도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여전히 내 또래는 나 혼자인 것 같았지만, 오늘은 그 사실이 이상하게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이곳에 앉아 있는 내가, 어제의 나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김치찌개가 나왔다. 김이 올라왔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고 고개를 숙였다. 맛은 여전히 평범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평범함이 마음에 들었다. 괜히 다른 걸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가게 안을 오가며 일을 했다. 물을 채우고, 계산대에 섰다가, 주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바쁜 와중에도 앞치마 끈을 한 번 고쳐 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작은 동작 하나가 어제보다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말을 걸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어제까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대로 아무 말 없이 나가면 조금 아쉬울 것 같았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다.

계산대 쪽으로 다가가던 그녀를 보며, 생각보다 입이 먼저 열렸다.

“저….”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네?”

짧은 대답이었다. 그 한 음절에 괜히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여기 자주 오시는 분들 많죠.”

말을 꺼내고 나서야,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게 궁금하셨나 봐요. 네, 단골분들 많아요.”

말투는 여전히 조금 어눌했다. 그런데 그 어눌함이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공간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는 결심을 하나 했다.

“이름… 여쭤봐도 될까요.”

말을 하고 나서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괜히 무례한 질문은 아닌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아주 작은 웃음을 지었다.

“아, 네.”

그리고 자기 이름을 말했다. 짧고 분명한 한국 이름이었다. 한 번에 귀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불러봤다.

“저는….”

내 이름을 말하자, 그녀가 한 번 따라 불렀다. 발음이 조금 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발음이 싫지 않았다.

“예쁜 이름이네요.”

그녀가 말했다.

별 뜻 없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말이, 오늘 여기까지 온 이유처럼 느껴졌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그녀보다 내가 먼저 말했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친구도 없이, 일과 집만 오가던 내 하루에

이제는 하나의 장소와 그녀와 나, 두 개의 이름이 더해졌다는 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은 회사에서 들은 꾸중보다

그녀가 불러준 내 이름이 더 오래 남아 있었다.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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