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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Mar 02. 2020

문제아에서 문제적 작가로

-달동네 화가 엄경근의 이야기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달동네 위로 커다란 둥근달이 떠 있다. 빨간 산타복장을 한 산타클로스가 달 위를 걸어가고 있다. 썰매도 달릴 수 없는 꼬불꼬불 산동네 골목 때문이었을까? 루돌프 사슴은 썰매도 없이 산타 할아버지 뒤를  따라 걷고 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인지 달 위에도 하얀 눈이 내려 쌓였다. 걸어가는 산타와 사슴 뒤로 그들이 남긴 발자국이 또렷하다.     

달동네의 크리스마스/ 엄경근 작

우리 집 거실에 있는 내가 '애정'하는 그림이다. 달이 뜨는 곳이면 어디든, 그곳이 판자촌이든 달동네든, 달 위를 걸어서라도 산타는 온다는 위로를 주는 그림, 달은 세상 어디에나 뜨는 법이니, 산타는 세상 어디에나 선물 보따리를 메고 찾아와 주지 않을까?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달동네 화가’로 알려진 엄경근, 나는 그의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끈질긴 '희망'과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낭만'과 따스한 삶의 '위로'를 좋아한다.    

아버지의 퇴근길 / 엄경근 작 2018

그의 또 다른 그림, 좁은 계단이 가파르게 이어져 있는 산동네, 계단 양쪽으로는 노란 은행잎 같은 창문을 단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그림에서 단연 시선을 끄는 것은 계단 앞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 이게 바로 엄경근화가가 간직한 낭만이다. 누군가가 동네로 막 들어서는데 마치 그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듯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이가 피아노를 친다. 노란 가로등 그림자에 어슴프레 비추이는 그림자, 그는 아버지다. 엄경근 작 < 아버지의 퇴근길 2017 >     


'달동네 화가'라는 이름답게 그의 그림에는 항상 달이 등장한다. 둥근달 위에 사람 사는 동네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왕자가 살기도 하고, 이미 어른이 된 어른 왕자가 살기도 한다. 그의 그림 대부분에 등장하는 달 덕분에 그는 ‘달동네 화가’가 됐다.     

달동네의 어린왕자/ 엄경근작

달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 특별한 이유는 그가 달동네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갈치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부산의 한 달동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어부였다. 오징어 배를 타고 나간 아버지는 항상 보름이 돼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부들은 물 때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던 어린 화가에게, 아버지는 그믐이 되면 배를 타러 갔다가 보름달이 뜨면 집으로 돌아오는, 달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믐달이 보름달이 될 때까지 그 시간은 작가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아버지 오시던 날. 엄경근 작 2018

빠듯한 살림살이, 엄마마저 하루 종일 일을 하러 나가고 나면 학교에서 돌아온 어린 작가는 할 일이 없었다. 공부에 딱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시간부터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케치북을 사는 것도 사치일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  눈에 보이는 벽지에다 장판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작가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은 가장 재미있는 방법이었지만 누구도 그의 그림을 유심히 봐주지 않았다. 먹고사는 것이 당장의 문제인 가족들에게 그가 그린 그림은 그저 낙서로 여겨질 뿐, 늘 혼이 날 뿐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학교 대표로 그림 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아왔는데 엄마는 오히려 타박만 했다. 국어, 산수를 잘해야지 그깟 그림만 그려서 뭐할 거냐고...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고 그림으로만 유일하게 실력을 인정받는데 집에서는 정작 인정을 안 해 주니 중학교 무렵부터는 빗나가기 시작한다. 학교를 결석하고 오락실을 가고  온갖 문제행동을 하는 '문제아'로 낙인찍혀 오토바이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동네 경찰관들이 이름을 알 정도로 '문제아'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면 지나가던 순찰차가 마이크로 이름을 부를 정도였다. 

“ 경근이, 경근이, 오토바이 세워 ” 


'문제아'의 인생이 달라진 결정적인 계기는 고등학교에 가서였다. 공부에 뜻이 없었던 탓에 당연히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다. 그런데 고 2 때 담임 선생님이 미술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엄경근의 그림을 처음으로 유심히 봐주었다. 

경근아, 니가 그림을 열심히 그리면 대학을 갈 수 있겠다.     

그 말은 엄경근에게는 천지개벽과 같은 소리였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인생에 대학이라는 곳을 꿈꿔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그에게 조건을 걸었다. 

“오늘부터 니가 미술부 부장이다. 제일 먼저 등교해서 미술실 문을 열고 제일 마지막에 미술실 문을 닫고 가라


선생님이 그에게 건넨 미술실 열쇠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는 열쇠가 되어 주었다.    


새로운 세상에 목표를 둔 그의 행동은 달라졌다. 그는 소위 놀던 모든 친구들과 인연을 끊고 그림에 매진했다.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미술실 문을 가장 빨리 열고 가장 늦게 닫았다. 미술실에서 내내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영어책과 수학책을 사서 기초부터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고 3이 되었을 때 선생님은 그에게 이제는 입시미술을 배워야 하니 학원에 등록을 해서 미술공부를 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께 차마 학원 등록을 시켜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자신의 돈으로 엄경근을 미술학원에 등록시킨다. 결국 그해 그는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에 합격하게 된다. 그의 사범대학 합격은 학교 개교 사상 처음 있는 일로 학교에 플랭카드가 내 걸릴 정도였다.    


내가 방송 때문에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부산에 있는 한 대안학교의 미술교사였다. 기존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을 모아 교육시키는 그 학교에서 그는 가장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다. 그가 인기 있는 선생님이 된 것은 너무 당연했다. 그는 바로 그 자신이 걸어온 길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구구절절 말로 털어놓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교사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리가 부러져 학교에 오는 아이들을 그는 눈빛만으로도 이해했다.    

괜찮아, 아빠는 슈퍼맨이니까/ 엄경근작

그때 미술실에 그의 그림 몇 점이 걸려 있었다. 달 위에 사는 어른 왕자의 그림이 인상적이었지만 그가 정식 화가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후 첫 번째 전시회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가 정식 화가로 데뷔한 것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나이 서른이 되면 달동네를 주제로 첫 전시회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일찍 결혼을 해 가정이 있었지만 그는 목표에 매진했다. 쌀독에 쌀이 떨어져도 아내 눈치를 보며 전시회를 위한 그림을 그릴 물감을 사곤 했다. 목표대로 서른에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 후 10년 동안 그는 8번의 달동네 개인전을 비롯해 크고 작은 전시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경근 작

그의 인생 스토리는 항상 드라마틱하다. 서울 인사동에서 지역에서 주목받는 화가들을 모아 전시회를 할 때 그의 그림이 초대된 적이 있다. 고심 끝에 고른 2점의 작품을 갤러리에 걸고 집으로  올 때 너무 뿌듯했단다. 드디어 전국적으로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는 화가가 됐다는 생각에. 전시회중 누군가가 그의 작품을 사고 싶다는 전화를 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 주는 그 말만으로도 눈물 날 정도로 감동적이어서 전시회가 끝나면 그냥 그림을 가져가지라고, 돈을 주시지는 않아도 된다고, 제 그림을 갖고 싶다는 말씀만으로도 제게 위로가 된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상대편에서는 공들여 그린 작품을 그냥은 가져갈 수 없으니 팔아라고, 둘이서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그림 값을 5만 원으로 합의하고 그림을 팔았다. 그림을 사간 사람은 다음에 전시회를 하면 자신에게 꼭 연락을 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10만 원에 그림 두 점을 사 갔다. 그리고 그다음 전시회 때 연락을 하자 나타난 그 사람은 전시된 그림을 둘러보다 말했다.

 여기서 여기까지 그림 제가 다 사 가겠습니다.

갤러리 한쪽 벽면에 전시된 그림을 그 사람이 다 사갔다. 이번에는 기대 이상의 그림 값을 지불하고...    

출항/ 엄경근 작

가끔 연락을 할 때마다 그는 늘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 그의 삶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때로는 무모하기까지 한 일에도 끊임없이 도전하며 그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도 부산에서 남해를 거쳐 올해부터는 산청 간디학교로 간다고 한다.     


그의 삶을 떠올리며 그의 그림을 다시 본다. 그는 왜 남루하고 초라한 산동네 한편에 따스한 기운을 온 동네에 비추는 달을 항상, 어딘가에 반드시 그려 넣는 것일까? 달 위를 걸어서라도 산동네를 향하는 산타는 왜 또 그리기 시작한 것일까?

  

비록 지금은 달동네 한편 가파른 계단 위 판자 집에 살아도 언젠가는 선물 보따리를 메고 찾아 올 산타를 그는 항상 믿고 기다렸던 건 아닐까?


실제 그는 주변에 선물 보따리를 메고 나타난 수많은 산타들 덕분에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의 그를 만나 지나온 이야기를 들으면 한때 지독한 ‘문제아’였던 엄경근은 떠올릴 수도 없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지만 가끔은 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를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 사람의 믿음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엄경근 화가의 작업실

그에게 새로운 인생으로 가는 열쇠를 건넸던 그의 스승은 우리가 방송 출연을 요청했을 때 굳이  얼굴 드러내는 걸 사양했었다. 그러나 제자 엄경근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스승이 된 그도 독특한 화풍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아름다운 연을 이어가고 있는 스승과 제자는 함께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열었던 그림 전시회
엄경근의 스승 김진희 화가의 작품

 비록 선물 보따리 한 가득 메고 오는 산타의 방문이 다소 무모한 희망이라고 해도 고단한 하루를 헤쳐 가는 우리에게 산타는 필요하지 않은가?  열심히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딘가에서 선물 보따리를 멘 산타가 막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해 있지 않을까...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고,  


열심히 살다보니 산타가 있더라고,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자고, 그의 그림이, 항상 현재 진행형인 그의 삶이 따스한 위로를 보낸다.   


당신은 산타를 믿으세요?

달동네 크리스마스. 엄경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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