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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Jan 23. 2020

왼손도, 학맥도, 인맥도 없이 모든 것을 이룬 화가

-경주 솔거 미술관을 다녀와서

살아보니 ‘기대’는 대부분 ‘기대’만큼 효력이 있지 않았다. 경험상 ‘기대’는 ‘기대 이상’은 커녕 ‘실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즈음에는 어떤 사람이나, 일에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대’ 하지 않으며 사는 삶은 때론 훨씬 큰 효력을 발휘한다. 기대하지 않은 덕분에 약간의 ‘감동’도 곧잘 ‘기대 이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번에 방문한 < 솔거 미술관 >에서도 이 법칙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 솔거 미술관 >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지인이 보여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사계절 다른 자연 수채화를 선보이는 경주 솔거 미술관의 유리창

미술관 안에 있다는 커다란 창 밖으로 창 밖 자연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는 미술관의 유리창, 그 유리창에 끌려 꼭 한번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생각’은 늘 바쁜 일상에 밀리는 법이라 어느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와 있었다. 문득 그 아름다운 창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일던 날, 미술관에서 무슨 전시를 하는 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길을 나섰다.    


미술관이 경주라는 것만 알고 길을 나서 도착해보니 < 솔거 미술관 >은 경주 엑스포 안에 있었다. 경주 세계 문화 엑스포 공원 안에는 여러 관들이 있었지만 다른 관들을 둘러볼 마음은 전혀 없는데, 엑스포 입장료를 끊어야 미술관을 갈 수 있다고 해서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입구까지 와서 발을 돌릴 수도 없어 엑스포 입장권을 끊고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게다가 ‘3한 4 온’은 잊은 지 오래인 날씨 덕에 겨울 내내 따스하던 날씨가 며칠 동안 제대로 동장군 기세를 떨치고 있던 터라 바람은 쌩쌩 부는데 미술관까지는 언덕을 걸어 제법 걸어 올라가야 했다. 입장권을 끊고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 올라가는 동안 한 장의 사진에 가졌던 기대마저 무너졌다. 그 창 하나를 보겠다고 가져서는 안 될 기대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되기도 했다.    

미술관은 170여 미터 언덕 위에 나지막한 일자형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예술적인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었다. 도착해서 보니 미술관에는 2019 경북 미술인 지원사업에 선정된 2명의 젊은 작가와 박대성 화가의 전시가 같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에 문외한이기는 했지만 3명 다 이름을 알지는 못하는 작가였다.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젊은 작가의 그림을 보며 한 점쯤 집에 걸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박대성 화가의 작품이 있는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감탄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오로지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표현된 우리나라 산수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박대성의 작품

특히 복도에 걸려 있는 눈 쌓인 풍경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 아무리 봐도 흰색과 검은색 두 가지의 색깔밖에 없는데, 가지마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나무의 표현이 마치 흑백사진을 찍은 것처럼 너무 선명하고 강렬했다. 특히나 눈을 표현한 흰색은 흰색 물감을 사용한 것인지, 그냥 흰 종이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힘차게 표현된 < 구룡폭포 >는 마치 급전 낙하하는 세찬 물소리가 귀에 들릴 듯 생생했다. 그런데 떨어지는 물줄기인 폭포조차 온전한 흰색으로, 역시 색을 칠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박대성 작 < 한라산>400*500

박대성 화가의 작품은 지하 전시실 여러 칸에 나뉘어 있었다. 대부분 경주의 자연을 그린 수묵 풍경화가 많은데 언뜻 얼마 전 왜관 수도원에서 본 겸재 정선의 그림과 인상이 겹쳐지기도 했다. 그림 길이도 8미터, 10미터를 넘는 대작들이 많았다. 전시실을 들어선 관람객들이 그 크기에 압도해 탄성을 자아내곤 했다.     


그림을 볼수록 박대성이라는 작가가 궁금해졌다. 다행히 자료실에 가니 그동안 박대성 화가에 관해 방송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 마련돼 돼 있었다. 박대성 화가는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몰랐던 것뿐이고 현재 한국 화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가 중의 한 분이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뒷 배경으로 등장한 그림이 박대성 화가의 < 장백폭포 >이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박대성 화가는 한국 전쟁 때 한쪽 팔을 잃어 왼쪽 팔이 아예 의수라는 것, 그러니까 이 많은 작품들을, 그것도 천호, 이천호, 삼천호에 달하는 대작들을 오직 오른쪽 팔 한쪽으로만 그렸다는 사실이다. 거기다가 내가 가졌던 의문 중의 하나인 흰 눈은 덧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종이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 구룡폭포 >의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여백이라는 것이다. 내가 본 대부분의 작품은 오직 까만색 ‘먹’ 하나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자연경관을 소재로 그린 ‘실경 산수화’의 맥을 잇는 박대성은 조선시대 실경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맥을 잇는 화가로도 꼽힌다고 한다. 실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겸재 정선 그림과 나란히 박대성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겸재 정선과 박대성 작품

박대성 화가가 직접 말하는 자신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고 다시 지하 전시실로 내려갔다. 혹시 내가 허투루 보고 지나친 작품은 없는지 다시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보자 감동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지 않음으로 그림이 되는’ 동양화의 신비가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그중 작가가 특별히 언급했던 <독도>를 다시 봤다. 용이 독도 위를 날고 있다. 용이 들고 있는 빨간 여의주는 작가가 일장기를 생각하며 그린 것이라고 한다.    

박대성 작 <독도>

<솔거 미술관>이 지어진 배경도 박대성 화가가 자신의 작품 830여 점을 기증을 하면서 경상북도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박대성 전시실은 상설로 박대성 작품을 일정한 주기별로 교체하며 계속 전시한다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박대성 화가는 미술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 학력은 중졸이 전부이고 오직 독학으로 이 모든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육체적으로도 일반인에 비해 불편한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그는 경주 남산 아래 아예 < 불편당 >이라는 이름의 집을 지어놓고 불편 투성이인 그곳에서 정신의 날을 세워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화가 박대성

“ 묵은 검정, 한 가지 색이 아니에요, ‘일묵 다색’이라고 하는데, 묵은 모든 색을 품은 색이에요 ”    


그의 그림을 보면 작가의 이 말은 온몸으로 이해된다. 오직 먹 하나로 그린 그림이 어떻게 이렇게 천 가지, 만 가지의 풍경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해 낼 수 있단 말인가.    


< 솔거 미술관 >에서 만난 박대성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다음에는 남산 아래 < 불편당 >을 수소문해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예술가를 곁눈으로라도 한 번 뵐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마음속 인명사전에 간직하고 싶은 또 하나의 이름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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