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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Dec 02. 2020

'어쩌다' 만난 '앤'이 들려주는 놀라운 말들

-당신은 <빨간 머리 앤>을 제대로 아시나요?

'어쩌다'는 '운명적인'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대부분의 운명적인 일들은 '어쩌다'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앤'과의 재회는 내 인생에 또 하나의 '운명적인' 만남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앤'은 이렇게 말했다.

거창한 생각을 표현하려면 거창한 단어를 써야 해요


그 말은 작은 파문을 만들며 내 마음에 퍼져갔다. 되도록 간결, 명확하게만 표현하려고 하는 나의 글쓰기 습관을 '앤'의 이 말은 돌아보게 했다.  


그렇게 인상적인 '빨간 머리 앤'과의 재회는 정말 '어쩌다' 시작됐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 ,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래된 책장 뒤지듯 '넷플릭스'를 뒤지며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는지 찾고 있었다. 그런다 우연히 <빨간 머리 앤>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영화 한 편 즐길  마음으로 시작 버튼을 눌렀다. 어쩌다 그 만남이 시작된 만큼 나는 넷플릭스 < 빨간 머리 앤>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었기 때문이다. < 명작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꼭 닮은  '앤'이 쉼 없이 달음박질을 하는 그 영화에 빠져 재밌게 보고 있는데, 드라마는 '앤'이 그렇게 살고 싶던 초록지붕 집에서 살지 못하고 마릴린의 브러치를 훔친 누명을 쓰고 집을 떠난 데서 난데없이 끝나버렸다.

넷플릭스 < 빨간 머리 앤> 이 배역을 맡은 에이미 베스 맥널티 18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앤'이 됐다.  


'이게 뭐야? 이거 시리즈였어? '다음 화' 버튼을  누를 때까지만 해도 3,4부작 미니 시리즈 정도로 생각했다. 한 편을 보고 다음 회를 누르고 금요일 밤은 깊어가는데 끝나지 않는 이야기 때문에 계속 다음 회차를 눌렀다.

어느새 새벽 1시, 이제 머리까지 아파왔다. 일단은 머리를 좀 쉬어야 할 듯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또 다음화 버튼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10편이 끝났을 때 '이제 끝이겠지'했더니 이제 겨우 시즌 1이 끝난 거였고 다시 시즌 2로 이어졌다. 그렇게 금 토 일 월요일까지 <빨간 머리 앤> 시즌 3까지를 다 봤다.


그리고 든 생각, '나는 '빨간 머리 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생각해보면 까마득한 예전, 꼬맹이 시절에  세계 명작 <빨간 머리 앤>을 읽었을 뿐이고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로 시작하는 TV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봤을 뿐... 그런데 나는 왜 빨간 머리 앤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책을 다시 한번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에서 '앤'이 뱉어내는 따발총 같은 대사들 속에 들어있는 매력적인 대사들이 책에도 고스란히 있는지 궁금했다. 어떤 책을 사면 좋을지 웹서핑을 열심히 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 빨간 머리 앤>의 마니아들은 상당히 많고 그들 중에는 기존 나온 출판사들의 책을 다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 빨간 머리앤>이 시리즈로 무려 10권까지 나온 책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그중 인디고 출판사에서 나온 2권으로 나온 책과, 어린 시절 우리가 본 애니메이션을 중간중간 삽입한 더 모던 출판사의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 책에 빠져 있었다. 이번에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책 속에서 그대로 뛰어다니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야말로 앤을 제대로 만났다. 그렇게 살고 싶던 초록지붕 집을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룻밤만에 쫓겨가면서도 씩씩하게 말하는 아이,


"아, 희망 하나가 또 사라졌네요, 제 인생은 그야말로 희망을 묻는 묘지예요, 이건 언젠가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요, 무언가에 실망할 때마다 되풀이하면서 위안을 얻어요"


빨간 머리에, 고아에, 주근깨가 가득한 아이 , 평생 따뜻한 집을 가져본 적 없는 아이, 그런 '희망을 묻는 묘지'의 상황 속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앤', 이제 내 나이에서 보니 앤은 너무 기특한 아이였다.

  

좋아하는 작가 모건 부인의 방문을 앞두고 보이지 않는 벽장까지 구석구석 청소하는 앤에게 마릴린이 그렇게까지 할 건 없다고, 모건 부인이 벽장까지 보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자 앤이 자신의 좌우명이라며 드려주는 롱펠로우의 시.


일을 처음 배웠을 때
석공들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일했다네.
매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은 무엇이든 보시기 때문이라네. 


그 좌우명이, 비록 매번 실수하고 넘어져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앤'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인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앤'이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말들은 때로는 글쓰기 교재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때로 희망의 묘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겐 거창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감동과 위로를 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나도 <빨간 머리 앤>의 마니아 클럽에 동참하기로 맘먹었다. 누가 알랴,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하다 결국은 <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백영옥 작가처럼 나도 그렇게 될지... 그렇게 말하는 내게 앤은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알아갈 일이 많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만약 이것저것 다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럼 상상할 일도 없잖아요



빨간머리앤을 사랑하다 결국 소설가가 되었다는 백영옥 작가의 책<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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