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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Dec 15. 2022

내가 쓴 글을 읽고 내가 우네

-6개월의 글쓰기 여정 < 괜찮지 않지, 그래도 괜찮아 >를 펴내고

연필을 쥔 손이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획 하나를 긋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릴 때 뇌성마비를 앓아 몸도 불편하고 말하는 것도 불편한 지연님, 그렇게 공들여 써 놓은 글자도 너무 희미해서 글자를 알아보려면 한참을 들여다봐야 한다. 손가락에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글자 한 자 쓰는 일이 큰 노동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 6개월 동안 계속된 글쓰기 수업에 지연님은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6개월 동안 지연님이 직접 써낸 작품은 단 한 작품이었다. 

지연님의 < 느리게 쓴, 인생 첫 작품 >은 글쓰기 수업에서 첫 작품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글자 쓰기 수업 아니고 글쓰기 수업

숙현님은 '글쓰기 수업'이 아니라 '글자 쓰기'수업인 줄 알고 수업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엽서 한 장을 두고 '보이는 대로 묘사하기' 도 하고 '미운 사람들에 대해 글 써보기' 같은 수업을 하니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래도 몸도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수업을 따라왔다. 수업 시간에 함께 읽은 좋은 글을 공책에 옮겨 쓰기도 하고, 주제에 대한 글쓰기도 열심히 했다. 

수업이 마무리로 접어들던 지난 11월 말, 단체 카톡방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 서점에서 책을 샀습니다."

숙현님이 서점엘 가서 정호승의 산문집 <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를 구입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몇 차례 함께 읽었던 정호승의 글이 인상적이어서 책을 사고 싶어서 난생처음 서점엘 갔다는 것이다.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글이나 책은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던 사람들이 이제 글을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니, 이만하면 글쓰기 수업은 성공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부터 70대 초반까지, 지체 장애부터 뇌성마비, 파킨슨병, 지적 장애까지 나이도 장애 유형도 제각각인 수강생 들과 함께 6개월 간의 글쓰기 여정을 함께 했다. 

그중 몇몇은 진짜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 수업을 신청했지만 상당수는 '캘리그래피'같은 '글자 쓰기'수업인 줄 알고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고 한다. 처음 '글자 쓰기'가 아닌 '글쓰기 수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매우 당황했다. 맞춤법도 제대로 모를뿐더러 글자체도 지렁이 기어가는 수준인데 어떻게 글을 쓰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깊은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펜을 움직이는 것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책 두권으로도 부족해요

나는 까막눈 할머니들이 한글을 겨우 깨쳐 써낸, 맞춤법 틀린 시들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맞춤법이나 글씨체는 글을 담는 그릇일 뿐 중요한 건 안에 담기는 내용물이라는 설명을 했다. 

"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책 두 권을 써도 모자라요."

17년 동안 파킨슨병과 싸워 왔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대장암까지 진단을 받은 교철 님의 이야기다. 

철자법이며 글씨체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낸 그들은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자신의 마음속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러 감춰 두었던,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줄로 끝났던 글들이 점점 길어졌다. 그들이 써낸 글 속에는 장애인으로 살아온 그들의 맵고, 시고 , 짠 삶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나는 미운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어요. 미운 사람이 너무 많아요. 100명쯤 돼요."라던 정국님(BTS를 좋아해서 필명을 정국으로 정했다.)은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자신을 왕따하고 무시하던 친구들과 선생님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서 글로 썼다. 몇 편의 미운 사람의 글을 쓰던 어느 날 "이제는 미운 사람 안 쓸래요. 사랑 이야기를 쓸래요."

그 뒤부터 미운 사람 이야기는 더 이상 쓰지 않고 사랑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마흔아홉에 척추 결핵을 앓아 갑자기 장애인이 된 순남 님의 글에는 다시 시작한 제2의 인생을 살아내는 열정이 가득했다. 글 속에서 사라질 뻔 했던 그들의 인생 이야기들이 복구되고 있었다.


정호승의 시를 필사하던 어느 날, 지렁이 흘림체의 글씨를 써던 교철 님은 수업 시간 안에 한 편의 시를 옮겨 쓰지 못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수업에 들어오면서 종이 한 장을 호기 있게 내밀었다. 정호승의 시가 정자로 깨끗하게 필기돼 있었다.

"한 100번은 다시 썼어요. 깨끗하죠?"

 

내가 쓴 글을 읽고 내가 우네

시간이 갈수록 각자의 글쓰기 노트는 작품들로 채워져 갔다. 지난 6개월 동안 쓴 글을 퇴고하는 시간, 공책에 한 자 한 자 눌러쓴 글을 컴퓨터로 옮긴 인쇄물을 나눠주자 교철 님은 자신이 쓴 글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내가 우네."

파킨슨병 진단을 받던 날, 대장암 진단을 받던 날의 절망과 버팅기듯 살아온 인생살이가 글에는 담담하게 표현돼 있었다.  


글쓰기 수업을 듣기 전부터, 마음에 맺힌 게 있을 때마다 글을 썼다는 보라 님의 글 중 한 편은 한 월간 에세이에 채택돼 실리기도 했다.

지난 6개월의 여정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책 제목은 <괜찮지 않지, 그래도 괜찮아 >로 정했다. 어디 그들뿐이랴. 우리 모두의 삶은 괜찮지 않은 일 투성이다. 괜찮은 일들은 진짜 가끔, 어쩌다 행운처럼 잠깐 주어질 뿐 대부분은 괜찮지 않은 일 뿐인 게 인생이다. 장애인이라고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며 살아 온 그들의 삶은 괜찮지 않은 일 투성이라는 것이 글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두 가지, 좌절하고 절망해 주저앉아 있거나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서거나. 쉽진 않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 책 제목을 주문처럼 떠올리며 툭툭 털고 일어나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책 제목을 정했다. 


마지막 수업 시간, 처음 수업을 들었던 대부분의 학우들이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6개월 동안 겨우 한 작품을 쓴 지연님은 내 두 손을 꼭 쥐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불편한 몸에도, 글쓰기를 잘할 수 없음에도 끝까지 수업에 참석한 고마움을 모두에게 전했다.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 내가 가졌던 망설임과 염려들이 다 괜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글쓰기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좋은 글을 함께 읽는 울림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에게도 울림이 컸다. 그동안 들여다보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마음의 우물을 들여다 보고 슬픔과 기쁨을 길어올리는 치유글쓰기는 그들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6개월의 글쓰기 여정은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경험한, 내게도 참 특별한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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