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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Dec 01. 2024

한국 폭설 때문에 이런 일까지... 국제난민표류기

-이틀 동안 밀라노에서 파리, 다시 체코로

117년 만의 폭설로 대한민국 전체가 혼돈의 도가니인 모양이다. 그러나 이 예기치 못한 폭설은 대한민국 안에서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쉽지 않은 유럽 여행, 하필 이맘때, 큰맘 먹고 유럽 여행 계획을 계획하고 준비한 이들에게 117년 만의 한국에서의 폭설은 난데없는 폭탄이 됐다.


국내 폭설의 여파로 귀국 항공편 결항


첫 문자가 온 것은 이탈리아 시간으로 27일 오전 10시경, 2주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이날 오후 8시 밀라노에서 귀국을 할 예정으로 짐을 싸느라고 부산할 때였다.

'국내 기상 상황으로 저녁 8시 출발이 예정된 인천공항행
비행기가 결항됐습니다'.

깜짝 놀라 바로 해당 항공사로 전화를 돌렸지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들이 어디 한두 명이겠는가. 기상 문제로 문의하는 사람이 많아 상담원 연결이 쉽지 않다는 안내만 계속 나올 뿐 연결이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중간에 절대 전화를 끊지 않고 소음 같이 들리는 전화벨 소리를 참으며 기다린 지 40여 분, 드디어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다. 폭발하려는 분노를 억누르고 상황을 설명하니, 별의별 항의를 다 받아봤을 상담원이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원래 예약대로 밀라노에서 대한항공 직항을 타고 귀국하려면 5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 5일이라니. 유럽에서 5일이면 숙박요금만 해도 100만 원에 달하고 체류비용이 얼마인데.'


그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 내 일상에서 빼낸 2주간인데, 그 시간을 또 5일이나 연장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더 황당한 것은 이건 천재지변에 의해 발생한 문제임으로 항공법상 항공사는 어떤 보상도 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오랜 통화 끝에 겨우 이탈리아 밀라노 공항에서 에어 프랑스를 타고 파리 샤를 드골 공항으로 이동한 뒤 공항에서 5시간을 기다려서 대한항공을 타는 대체 편을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게 어디인가?


밀라노에서 보려던 '최후의 만찬'이고 뭐고 마지막 여정을 다 포기하고, 서둘러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도착했다. 수속을 하는 곳에서 다른 한국인팀을 만났다.


딸이 모처럼 회사 휴가를 써서 엄마를 모시고 유럽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했다. 빨리 귀국 안 하면 회사에서 잘릴 거라던 여성은 원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비행기가 취소돼 밀라노까지 올라왔고, 다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한 뒤 한국행 비행기를 탈 계획이라고 했다. 서로에게 제발 무사히 고국 땅에 도착하기를 기원하며 수속을 밟았다.


프랑스에서도 떠나지 못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5시간만 기다리면 연결 편 항공을 탈 수 있으니 캐리어는 파리에서 찾지 않고 인천공항으로 바로 연결되도록 수속을 하고 1시간 30분여의 비행 끝에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불길한 '띠리릭~' 알람이 울렸다.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걸까? 오후 9 시 편 비행기가 다시 취소됐다는 문자다. 공항 전광판에도 유일하게 국내 항공편 비행만 취소됐다는 안내가 선명하게 떠 있다.


대한항공이 취소됐다는 파리 공항 안내판


짐은 인천공항까지 연결을 해 버렸는데, 이륙은 취소가 되고 대체 어떻게 하란 것인가. 허둥대다가 일단 하룻밤을 묵어야 하니 호텔을 또 찾아야 했다. 샤를 드골 공항을 헤매고 있는데, 또 한 무리의 한국인을 만났다. 모두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 사람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로, 한 사람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파리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편 비행기가 정해지지 않아 공항을 헤매고 있었다. 오후 9시, 불이 꺼져 가고 텅텅 비어 가는 유럽 공항에서 한국인 여행자들이 한국 항공사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모든 걸 포기하고 여권과 지갑 외에 아무것도 없이 공항 호텔로 들어오니 호텔 안에 칫솔도 없다. 프랑스 파리의 호텔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인 이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흔하다. 친환경적이라고 해야 하나? 고객의 편리를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할 수 없이 5유로나 주고 칫솔 하나를 사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그러나 하룻밤을 묵는다고 해서 연결 편이 마련될 것인가? 서울 시간을 검색해 보니 파리 기준 밤 12시가 되면 서울이 오전 7시로 공항의 국제업무가 시작된다고 한다.


결국 잠도 자지 않고 12시까지 기다려 전화를 돌렸으나 1시간이 지나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휴대폰을 집어던져 버리고 싶지만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겨우 2시간여 만에 전화가 연결됐다. 물론 항공사 직원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겠지만 돈 쓰고 시간 쓰고 잠도 자지 못한 채 불안에 떠는 여행자들의 고충도 말이 아니다.


서로가 한껏 인내심을 발휘하며 통화한 끝에 항공사가 마련한 또 하나의 대안은 다시 체코로 이동하여 체코 프라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저녁 귀국 편 비행기를 타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귀국을 예정했던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시간일뿐더러, 무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파리로, 다시 체코로 가방 없이 이틀 동안 3개국을 이동하는 기가 막힌 여정이다. 그래도 이것마저 수긍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귀국 날짜를 짐작할 수도 없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나의 캐리어.


유럽 여행의 가장 강렬한 기억


다음날 일찍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을 찾았다. 어제 짐을 맡긴 에어 프랑스사를 찾아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이동하는 동선, 체코에서 인천까지 가방이 연결되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데스크의 직원은 혀를 쯧쯧 차며 참 긴 여정에 피곤하겠다고 말을 한다.


캐리어 연결까지 마친 시간은 오전 11시, 체코행 비행기는 밤 9시다. 그리고 샤를 드골 공항은 파리의 관광 중심지인 도심과는 너무 멀리 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하려면 왕복 3시간은 각오해야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파리 중심으로 나갈 것인가? 공항에 머물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기에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파리의 공항버스는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아 잘못하면 체코행 비행기를 타는데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결국 하루 종일 공항에 머물기로 했다. 그나마 공항 곳곳에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데스크가 있어 원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원고 집필 중인 모습


그러나 저러나 나의 국제 난민 표류기는 언제 정확히 끝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체코 프라하 공항에 내린 순간 또 어떤 문자가 올지 불안하다.


이제 117년 만의 폭설도 그만 그쳐주길, 화사한 겨울 햇살에 쌓인 눈이 빨리 녹길. 그래서 나처럼 유럽 공항을 떠돌고 있는 한국 난민 여행자들이 하루빨리 귀국길에 오르길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기도하고 앉아 있다. 마음은 타 들어가지만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보는 일몰은 아름답기만 하다.


8시간 동안 샤를 드골 공항에 머물며 만난 일몰


2주간의 짧은 여행,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했지만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 인생과 여행은 닮았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 계획대로 되는 여행도 드물고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인생도 드물다. 그래도 항상 반전은 있는 법,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생고생을 한 이번 표류기는 유럽 여행의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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