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와인보다 물이 비싸지만 그래도 파리가 매력적인 이유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야 늘 품고 살지만, 막상 떠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2주 정도 되는 시간을 일상에서 뭉텅 잘라내 오직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쓰기는 적잖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일리지를 쌓아놓고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러는 중에 항공사는 마일리지 정책을 바꾸었다며 매년 일정 기간의 마일리지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고 있었다. 그동안 일로, 여행으로 쌓아둔 마일리지를 적금 든 통장처럼 뿌듯해 했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일리지 적금 만기일이 올해 드디어 도달하고 말았다.
한 사람이 유럽을 가는데 필요한 마일리지는 7만 마일, 남편과 합산한 우리 부부의 마일리지는 14만 7천 마일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유럽 여행을 가려면 올해를 넘기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늘 기회를 엿보아도 올해 내내 2주를 통째로 비울 시간은 잘 나지 않았다.
마일리지 때문에 감행한 유럽 여행
그렇게 어느새 연말이 다가오고 12월 성수기에 접어들면 한 사람당 10만 마일은 있어야 유럽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그래, 떠나자. 갈 수 있을 때 가자.'
그게 11월이었다. 11월은 유럽 여행의 최대 비수기라고 하는데 비행기 티켓을 과감히 끊었다.
'비수기면 어때. 떠나는 게 중요하지.'
11월 15일 남편과 나는 드디어 비행기에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마일리지로 가는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13박 14일 일정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두 개국의 몇몇 중심적인 도시 몇 곳을 돌아보는 것으로 계획했다.
좁은 비행기안에서 14시간의 비행을 견디는 것은 좀 힘들긴 했지만, 한국 영화 3편 쯤을 보고 하늘 위에서 먹는 나름의 맛이 있는 기내식을 세 번쯤 먹다보니 그럭저럭 첫 번째 여행지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으로 11월 15일 저녁 8시경이었다. 파리는 교통 체증이 악명 높기도 하고 마침 퇴근 시간이기도 해서 첫날은 공항에서 가까운 호텔에서 1박을 하는 것으로 미리 정하고 갔다. 호텔까지는 공항 트램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처음 공항에 내려서는 긴장한 탓에 구글 맵을 켜는 것을 잊고 말았다.
넓은 파리 공항에서 생존 영어로 트램 위치를 묻고 다니느라 좀 고생을 했다. 지나가는 공항 직원에게 물었더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는데, 내려보니 우리 호텔이 있는 역이 아니었다. 호텔들이 많다보니 그 사람도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다시 트램을 타고 되돌아오는 수고를 한 끝에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
물값 보고 놀란 가슴
안도감으로 물이라도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켜고 싶었지만 호텔은 물이 제공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중급 호텔들은 물이 제공되지 않는 곳이 많다. 그럼 편의점에라도 가서 사야지, 하고 나섰지만 시내와 동떨어진 호텔이라 주변에 가게가 하나도 없고 온통 호텔들 뿐이었다. 다시 호텔로 들어와 물을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물으니 자판기를 가리킨다. 자판기로 가 본 순간, 그야말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종류도 프랑스의 대표적인 생수 에비앙 뿐이었고, 가격은 500리터 1병에 3유로, 그러니까 4500원이라는 거다. 앞으로 물은 반드시 호텔 밖에서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 후 여정에서 밖에서 생수를 사도 그렇게 싸지는 않았다.
가장 싼 것이 1유로, 그러니까 1500원 꼴, 그마저 만나기 쉽지 않았고 대부분 1.5유로, 그러니까 2천 원이 넘는 금액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물을 시키면 아예 5유로, 무려 7500 원 꼴이다. 프랑스에서 물은 '물로 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와인 보다 물이 비싼 나라가 프랑스였다.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캐리어 2개를 들고 시내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우버 택시를 불렀다. 파리의 일반 택시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이야기가 많고 관광객들에게는 바가지를 씌운다는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나는 해외에 나가면 항상 우버를 이용한다.
우버는 정확히 거리당 요금을 계산할 뿐 아니라 메일로 계산표도 보내주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일본에서는 우버 택시 안에 휴대폰을 놓고 내린 적이 있는데, 모든 기록이 다 남아 있어서 경찰서에서 우버 회사에 연락해 휴대폰을 찾은 적도 있다.
숙소는 파리 시내에 있는 20구보다 약간 외곽으로 잡았다. 일종의 아파트먼트였는데, 게스트 하우스와 호텔 중간쯤의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위치도 지하철역 바로 앞이고 몽마르뜨 언덕과도 가까운 곳이어서 가성비가 괜찮은 곳이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할 차례, 파리는 서울의 6분의 1 크기로 지하철망이 거미줄처럼 잘 연결돼 있어 자유 여행을 하기 더없이 좋은 도시다. 그러나 악명 높은 파리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준비부터 단단히 해야 한다.
먼저 여권과 카드가 든 지갑을 코트속에 숨기고 소매치기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했다. 휴대폰도 미리 손목으로 연결되는 줄을 준비해 걸었다. 이런 준비를 할 때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3박 4일 동안의 파리 일정을 고려해 지하철 나비고 10회권을 끊어 파리의 중심 콩코드 광장으로 향했다.
지하철역 안에서도 믿을 게 구글맵밖에 없는 우리는 열심히 구글맵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우리 모습을 지켜보았는지 옆에 선 금발 머리의 프랑스 여성이 친절하게 말을 건다. 우리가 탄 지하철이 구글맵으로 보고 있는 노선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콩코드 광장으로 가는 지하철은 여러 노선이 있는데, 우리가 탄 노선으로 가려면 내리는 역이 다르다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도 잘 안 쓰고 오직 프랑스어만 쓰면서 차갑고 도도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여성으로 프랑스 사람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그 후에도 여행을 하면서 겪어보니 대체적으로 다들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친절한 프랑스인 덕분에 지하철 콩코드역에 제대로 내려서 처음 마주한 파리 풍경은 나의 신분이 여행자로 바뀌었음을 와락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파리의 명물 키 큰 마로니에 가로수들이 화려한 황금빛 단풍잎을 버버리 코트처럼 멋지게 걸치고 줄지어 도열해 있고, 그 옆에는 고딕풍의 건축물들이 나란히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얼굴에 와닿는 공기는 알싸해 목도리를 여며야 했지만, 드디어 떠나왔고 비로소 여행지에 도착했다는 설렘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센강의 매력은 주변의 놀라운 문화유산들
광장을 따라 어디로든 걷다 보면 센 강을 만나게 된다. 한강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강, 그런데 세계인은 왜 이 강에 그렇게 매료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비단 강 때문이 아니라 강 주변에 펼쳐진 놀라운 문화유산들 때문이 아닐까?
루브르 박물관이 있고,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개선문과 에펠탑 등이 다 센 강 주변에 있다. '여행은 걸어서 하는 독서'라는 말을 하는데, 이곳 센 강 주변의 문화유산들을 걸으며 제대로 익히기만 해도 프랑스 역사 완전 정복은 가능한 일이다.
비수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객이 적다는 것이다. 일 년 내내 관광객들로 오버 투어리즘이 되는 도시 파리가 가장 한적해지는 시기가 바로 11월이다. 덕분에 한 시간 이상씩 줄을 서야 들어가는 대표적인 관광지들도 짧은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샹젤리제 거리를 걷다 마주한 개선문의 전망대에도 뮤지엄 패스를 이용해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성수기 때 오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시민 대혁명을 겪은 후 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설계되었다는 개선문에서 보면 파리시는 그야말로 한눈에 들어온다. 완벽한 12개의 부채꼴 모양을 이루고 있는 파리, 어느 지역에서 무슨 일인 생기는지 개선문에서는 한눈에 파악이 가능할 듯하다.
나폴레옹이 1806년 아우스터리츠 전쟁에서 승리한 뒤 만들기 시작한 개선문은 1833년에야 완공이 된다. 파리 시내를 진두지휘하듯 중심에 자리한 개선문은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들로 가득하다. 그중에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제1 차 세계 대전에서 희생된 무명용사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꺼지지 않는 불', 1923년 점화된 이후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사망한 프랑스 병사가 여기에 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지만 이 꺼지지 않는 불빛이 정작 희생된 병사들에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그로 인해 희생되는 무수한 이름 없는 군인들이 떠올라 마음이 언짢았다.
걷는 여행지 파리
개선문 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피부 빛깔의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올 뿐더러 에펠탑도 선명히 바라보이기 떄문이다.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 그러나 에펠탑의 100년 역사를 생각하면 과연 당대 인간들의 안목과 평가는 믿을 만한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1889년 만국 박람회 당시 철강 기술의 우수함을 보여 주기 위해 건설된 에펠탑은 파리의 경관을 해치는 건축물로 당대 사람들에게 무수한 지탄을 받았다. 그나마 20년만 그 자리에 세웠다가 철거하는 조건으로 겨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18년 라디오 송신탑이 에펠탑에 설치되면서 그나마 필요성을 인정 받았고 철거의 위기를 넘겼다. 그런데 지금은 한 해 수백만 명이 바로 이 에펠탑을 보기 위해 파리를 찾는다. 이 건축물을 설계한 구스타프 에펠은 과연 100년 후 에펠탑의 운명을 예상했을까?
오전에는 자유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콩코드 광장 일대를 걸어 다녔다. 샹젤리제 거리 뒷편 골목길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도 한 잔 마시고, 튈르리 정원에 햇살 받으며 앉아있기도 했다. 파리 여행은 대표적으로 걷는 여행이다. 하루 종일 걷다가 저녁에 보면 2만 보는 기본, 2만 5 천보에 달할 때도 있었다.
오후에는 '오르세 미술관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 두었다. 가이드 투어는 자유 여행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현지의 가이드들이 신청자들을 데리고 특정한 박물관이나 명소 한 곳을 투어 하는 프로그램이다. 7년 전 파리에 처음 여행을 왔을 때 가이트 투어를 하고 가이드들이 간직한 식견에 흠뻑 빠졌다. 그래서 이번에도 몇몇 프로그램은 현지 가이드 투어로 신청을 해 두었다.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한다. 19세기 전문 미술관 오르세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