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붐비는 퇴근시간대의 지하철. 가만히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복잡한 인파를 뚫고 전동 휠체어 한대가 열차를 힘겹게 오르는 중이다. 서른은 되었을까 아직 앳된 얼굴의 청년이다. 피곤에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지하철을 오르는 사람들은 단지 몇 분이라도 빨리 각자의 보금자리로 가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길 뿐 열차에 오르는 느린 휠체어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행여 누군가의 발을 바퀴로 누르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손으로 휠체어를 조종하는 그의 노력 대신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 불빛만을 눈에 한가득 담고 있었다.
저것 보라 움직이는 휠체어를 새치기하며 먼저 열차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 움직이는 휠체어 앞으로 위험하게 비집고 들어가는 그들에게 한마디 불평을 쏟아낼 법도 하건만 그는 불평 한마디 없이 집중하여 휠체어를 움직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관사만이 카메라를 통해 그의 마음을 지켜보듯 지하철 문은 닫히지 않고 묵묵히 그가 무사히 열차에 오르기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이윽고 열차에 오른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주변의 누구도 그의 노고와 다정함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러면 어떻겠는가? 그는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대충 손으로 훔쳐 닦으며 그는 내려야 할 역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하철의 안내방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를 향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말을 건넨다.
"젊은 사람이 고생이 많아, 열심히 살아가시게."
생각지 못한 덕담에 감사 인사로 답하자 할아버진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손에 든 쓰레기는 나 주게, 나는 이번에 내리거든 내가 버려줌세."
할아버지는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빈 음료수 병이 눈에 들어온 것인지 손을 내밀었다. 지하철에 오르기 전 버린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열차를 놓칠까 서두른 탓에 미쳐 버리지 못한 쓰레기였다.
"어유, 아뇨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당황한 그가 연신 손을 저으며 거절했지만 할아버지는 괜찮다며 기어코 그의 손에서 빈 병을 받아내곤 감사하단 그를 등뒤로 하고 열차를 내렸다. 남겨진 남자의 얼굴엔 열차를 오를 때의 노심초사한 긴장 가득한 표정이 아닌 따스함이 창 밖 노을처럼 펴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