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몇%의 열정과 몇%의 이기심 몇%의 무지함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완벽을 갈망하고, 보다 완벽해지고자 이 순간을 살아간다.
갈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반면, 사람들의 갈망을 깎아내리고, 스스로가 이미 완벽한 존재인양 으스대는 이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체계적이지 못하지만 거칠고 자극적인 가치관을 무기 삼아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로 인해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바쁘게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들의 자극적인 목소리에 눈길을 던지고 그 내용은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간혹 이들의 언행을 비난하는 이가 나타난다면 이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빛깔 좋은 포장지로 스스로를 감싼 체 바쁘게 움직이는 군중들에게 호들갑을 떨며 선동을 야기시킨다. 그리하면 깊은 속사정을 모르는 다수의 군중이 빛깔 좋은 포장지에 이끌려 그를 옹호하고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발달한 통신기술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누구나 제한 없는 접근성과 어디서든 접근 가능하다는 편리성. 표현의 자유라는 그늘 아래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세계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환경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표현에 제한과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들의 잘못을 따지는 것부터가 개인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통의 장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 우리가 어떠한 입장에 속하는지부터 인지하는 게 첫 단계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다음 중 어떠한 존재인가?
1. 완벽을 갈망하고 보다 완벽해지고자 노력하는 이.
2. 타인의 갈망을 깎아내리고, 완벽한 존재인양 으스대는 이.
3. 이들의 자극적인 언행에 이끌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선동되는 이.
나는 1번이야 하고 선택한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생각에만 담아두겠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린 저 세 가지 부류에 모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을 갈망하기에 노력을 하지만 이 노력이 계속 이어지지는 못한다. 왜? 우리는 완벽하지 못하니까. 그렇기에 우린 때로는 흐트러지고 어긋나면서 누군가를 시기하기도 하고 깎아내리기도 할 것이며, 스스로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허풍을 칠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귀도 얇아 다른 이들에게 쉽게 선동되고 바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기도 한다.
즉 우리는 이 글에 등장했던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존재란 의미이다. 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당신은 1번에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우리에게 좋은 일이다. 그 거대한 소통의 장에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점도 분명 좋은 일이다. 다만, 그 거대한 이야기의 호수에서 적절한 이야기를 골라내고 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자원으로 정제하는 과정을 우리는 익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 논쟁이 있을 수 있고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 과정을 분노로 표출해 버리는 것이 아닌 성장의 밑거름으로 만드는 과정과 태도가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수많은 소통의 장을 넘기고 있을 것이다. 나랑은 상관없어, 자극적이지 않아. 이러한 생각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기 보다 열린 시야로 이를 접하고 논쟁하고, 보다 완벽을 갈망하는 건강한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