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는 쪽을 선택했다

이별 후 10일째 되는 날

by 별빈

이별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사람에게 얼마나 기대고 있었는지,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며, 나의 온 구석구석을 잔인하게 찌른다.


이별을 하고 나니 밴쿠버에서의 두 사람이 왜 이렇게 힘들어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 사람이 밴쿠버이듯. 두 사람에게도 내가 밴쿠버였나 보다. 조금씩 나에게서 줄어드는 그들의 자리를 그들은 그 누구보다 빠르고 선명하게 알았겠지. 한 사람은 더 상처받기 전에 떠나버렸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전과 달라졌다.

지금 내 모습은 상처받기 전에 떠나버린 그 아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작은 것에도 쉽게 서운해했고, 많은 것들을 불안해했다. 타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까운 타인에게 너무나 많은 역할을 부여한다. 마치 그 사람이 내 옆에 평생 있을 거라고 착각하며. 한 사람에게 친구, 애인, 가족 모든 역할을 다 줘버렸다. 그 한 사람이 사라져 버리면 모든 게 흔들릴 거라는 걸 전혀 모른 채로.

그 사람도 느꼈을까. 지쳤을까. 공간이 필요했을까. 나는 누군가를 먼저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꾸자꾸 다시 뒤돌아본다. 이번에도 버려지는 쪽을 선택했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정말 이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연애에서도 헤어짐을 먼저 말하고 늘 다시 잡았었고, 결국 마지막에는 그만하자고 네가 먼저 얘기해 달라고 이야기하며 관계를 끝냈다.


이번에도 닫혀가는 마음을 가진 그 사람인 걸 알면서, 관계의 끝을 빠르게 수긍해 버린 그 사람인 걸 알면서, 끝내 나에게 더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그 사람인 걸 알면서, 다시 대화해 보자고 텍스트를 보내버리고 말았다. 사실 답장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확인은 바로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는 그 텍스트를 읽지 않았다.

내가 멀어졌던 친구에게 편지를 받았을 때, 그 사람에게 너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고 그 아이는 반응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그 아이는 나의 텍스트도 무반응으로 반응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아이를 알고 있다. 확인조차 하지 않을 진 몰랐지만.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는 무반응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관계에 최선을 다했고, 너무 쉽게 놓아 버린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그 짐도 마지막 텍스트를 보내며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일상을 조금씩 회복해 나가야지. 머리가 아프다. 몸이 힘들다. 오늘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해가 질 때 공원을 걸어야지. 일몰이 5시 40분이니, 5시 즈음 저녁 준비를 하고, 저녁을 먹고, 정리하고, 공원을 걸어야겠다. 걷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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