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벚꽃이 유독 오래가는 것 같다. 꽃이 피었다며 좋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주 동안 벚꽃을 보고 있다. 오래가는 벚꽃나무가 좋으면서도, 피자마자사라지던 꽃잎이 전과 다르게길게 가는 것 같아 낯설기도 하다.
벚꽃이 지지 않는 이유는 꽃을 시샘하는 날씨 때문인 것 같은데, 여전히 조금은쌀쌀한 기온과마스크로수 놓인거리가 묘하게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봄을 만끽하기엔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은 겨울이라고 해야 할까, '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서 이렇게 오래 머무는거니?'라고 벚꽃에게 묻고 싶다.
봄과 벚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올해처럼 여러 번, 긴 시간 동안을 즐겨본 적은 없었다.
'사는 게 바빠서...'
라고 하기엔 머리 한번 긁적여야 하지만 봄의 분위기를 온전히 내 안에 담아 가며 살아본 적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회사에서는 점심시간마다 경의선 숲길의 꽃길을 즐겼고 퇴근하면 글쓴다는 핑계로 벚꽃 만개한 신촌의 거리를 걸었다. 지난 주말에는 친구들과 보령 오천항에서, 어제는 부모님이 계신 충남 공주에서 꽃구경을 했다. 그렇게 여러 번 그리고 긴 시간을 벚꽃과 함께하다 보니 녀석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됐는데 그중 하나가
'떨어지는 꽃잎'
에 대해서다.
하루는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나왔는데 한 젊은 여자가(신촌이니까 여대생이라고 짐작하는데) 나무 아래 손을 모으고 있었다. 내가 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팔랑팔랑 떨어지는 꽃 잎 하나가 그녀의 손에 들어갔다. 학생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머금었다.그녀의 미소와 떨어지는 벚꽃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의 3박자가 완벽해 잠시 멈춰 그 장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주책없이 내 입꼬리는 왜 올라가는지 '벚꽃 잎 하나로도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구나' 했다. 글의 소재가 될 것 같아 순간을머리에 어루 담았다, 찰칵.
어제는 가족들이랑 공주 산성에 갔다. 공주 공산성은 금강 옆에 자리 잡은 백제의 성곽으로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도 군사적 행정적 요충지였다.* 엄마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소풍으로 와봤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살랑살랑 사진을 찍는 엄마와 누나를 뒤로하고 나는 산성을 두른 성벽 위를 걸었다. 근데 태어나 처음 보는 풍경이 나타났다. 벚꽃 잎이 성 아래에서 성벽을 타고 승천하고 있는 것이었다.
성벽 밑에는 벚꽃 나무가 많았고 성을 오르는 계곡풍(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을 타고떨어진 벚꽃 잎들이 아래에서 위로 흩날리고 있었다. 밑에서 올라온 벚꽃 잎은 벽을 넘어 산성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나무 밑에서 벚꽃 비를 맞아본 적은 있어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벚꽃 눈을 맞아본 적은 처음이었고 발 밑에 작아 보이는 나무들과 그 옆을 흐르는 강물, 그리고 하늘을 휘날리는 벚꽃 잎에 나는 황홀함을 느꼈다.
벚꽃은 만개한 벚꽃만이 전부가 아니구나, 떨어지는 꽃잎도 이렇게 매력적이구나, 이번 봄, 하나 배웠다. 룰루.
성벽 위를 걸으며 여러 생각을 했다. 봄이라 기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옆구리가 허전했고 불안한 미래에사람 관계는 잘해가고 있는지, 봄이 주는 울렁임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예전에 ROTC 동기가 축구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늦게 피는 재능도 있어, 형"
이라고 했다.
'이 녀석이 동생이 맞나......?'싶을 만큼 울림 있는 말이었다.
만개한 꽃보다 떨어지는 꽃이 아름다울 수 있고, 늦게 피는 꽃처럼 늦게 피는 재능이 있듯이, 내게 익숙한 많은 것들이내가 보아왔던 그대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게 많고 앞으로 알아가면 좋을 것들도 정말이지 많은데, 지금의 나는 내 안에 갇혀 나를 둘러싼 상황과 주변의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선입견이 나쁜 색안경이든 긍정적인 바라봄이든판단에 앞서그들과 함께 시간을,좀 더가까이서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하지 않을까싶기도 했다.
나를 이해하는 일도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또는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어쩌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닐 수 있음을 알고, 때로는 성벽 위에 멈춰 승천하는 꽃잎을 바라보듯, 그렇게 잠시 서서 나를 둘러싼 세계를, 그 안의 나를, 돌아볼 일이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우리의 다양함을 이해하고 내가 해왔던 판단이 전부가 아님을 깨쳐나갈 때, 좀 더 내 안 깊숙이 누군가를,그와 함께인나라는 사람을,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만개한 나와 너의 모습도 보고 싶고 떨어질 때의 너와 나의 모습도 궁금해진, 행복하면서도 아련한, 그런 황홀한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