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세경 Apr 02. 2020

봄이 나를 불효하게 한다

떨어지는 벚꽃도 조심하라더니

봄이다 봄!


봄바람 휘날리며 벚꽃 잎이 흩날리는 봄! 장범준은 '벚꽃엔딩'의 가사를 어떻게 이렇게 잘 썼는지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라는 가사 보면 들뜬 우리의 마음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봄바람도 봄내음도 봄햇살도, '봄'만 붙면 모든 게 아름다워지는 이 계절을 나는 사랑한다.


을 나오며 복도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께


"안녕하세요" 


했는데, 아주머니는 입꼬리를 올리며


"안녕하세요~홍~"


다.


봄햇살 같은 목소리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 다음에도 인사해야지, 그때도 내가 먼저 해야지, 다짐했다. 친절은 이렇게 돌아오는 건가, 친절이 이렇게 고스란히 돌아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다음에는 내가


"안녕하세요~홍홍~"


해야겠다.




입사하고 나의 벚꽃 플레이스는 경의선 숲길이다. 경의선 숲길은 연남동에서 용산까지 6.3km를 잇는 공원으로 과거 용산행 열차 부지만들어졌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 회사 옆을 지난다는 것이다. 헬스장 문을 닫아 운동을 못하게 됐지만 덕분에 나는 점심마다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다. 처음에는 운동을 못한다며 투덜거렸 이런 날씨에 매일 산책을 하 보니 매화의 계절을 만끽하고 있음에 감사 마음이 들었다. 지난주부터는 벚무가 꽃잎을 내나를 취하게 다.


봄기운에 취하면 나는 불효자가 다. 어렸을 때 얘긴데 할아버지는 접 운전까지 하시며 나에게 곳저곳을 구경시켜 주. 어느 날 조수석에 은 나에게


"한국은 사계절이 있어서 아름다운 나라란다."


 셨다. 하지만 이제 나는 만 되면


"할아버지, ... 저기... 제 생각엔... 봄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은데요?"


라고 말대꾸하고 싶 진다.


유치원생인 나에게 그런 가르침을 주신 할아버지 따뜻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지만 봄이 주는 울렁임은 '365일이 봄이면 좋겠구나' 하며 나를 취하게 하고 이 설렘은 그리운 마음과는 별개라 이맘때만 되면 나를 불효로 만든다.


숲길엔 삼삼오오 는 회사원들도 있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도 있고 봄 없이도 행복할 것 같은 연인들도 있다. 처한 상황은 달라도 봄 주는 설렘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것 같다. 아무리 '봄 사랑 벚꽃 말고'를 외쳐대도 결국봄이 좋아 부르는 노래고 봄만 되면 Top 100에 나타나는 '벚꽃엔딩' 보면 우리 모두 하나로 설렌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두에게 공짜인 봄을, 누구에게나 따뜻한 봄을, 나는 좋아한다, 홍홍.




산책로를 따라 이어지는 벚꽃 나무 옆을 걷다 보면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으면 회사 생활도 할만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 내음 나는 여유만 있다면 직장 생활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이겠구나 싶 것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돗자리 깔고 맥주나 마시고 싶네~하고 싶다"


하며 회사로 돌아간다.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내 앞에 앞에 옆에 옆에 앉은 직원분이 나를 보고 살짝 웃더니 머리에 벚꽃이 한 잎 묻었다고 털어주셨다. 3년 동안 두 번 정도 말해본 분인데 10년 지기 친구처럼 손을 뻗어 털어 주셨다. 보기에도 민망했지 아니면 리에 꽃을 얹은 내가 안쓰러는지 피할 새도 없 재빠른 손길이었다. 그리고는 본인도 민망


"벚꽃 구경하셨봐요~"


하셨다.


마스크에 가려진 내 얼굴은 빨개졌다. 나는 함께 다녀온 동기를 가리키며


"OO 가 나빴네요, 하하......"


라고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이미 출발했고 사람으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내 말에 대꾸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 정적은 무엇...'


얼굴은 더 빨개졌다.


하필이면 전날 파마를 한 나였다. 파마한 머리는 덜 은 라면처럼 꼽슬거렸고 벚꽃이 내려앉기엔 최고의 둥였을 것이다. 꽃을 머리에 달고 10분을 걸었다. 대로변을 나왔고 횡단보도 건넜다. 회사 출입문을 과해 카드 리더기를 찍고 다섯 개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을 사람들. '우리 회사는 머리에 꽃을 단 남자도 받아주는 친절한 회사구나' 라며 애사심이 높아졌을 사람들. 그들은 나를 보고 뭐라고 생각했을까.


양치를 하다가 머리를 털어주신  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떻게 그렇게 재빠르셨는지 나는 그분의 친절 고마웠고 시였지만 멋쩍었던 그 순간이 레기도 했다. 봄은 그런 순간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일까. 오늘 받은 친절 나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지. 비록 머리에 꽃을 단 사람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가 오면 나도 10년 지기 친구처럼 그분의 꽃을 털어주리라.


"벚꽃 구경하셨나 봐요~홍홍" 


하면서 말이다.


이런 봄을, 나는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 차라리 모기를 물리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