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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Apr 21. 2020

상무님한테 딱밤 맞을 뻔한 썰

그래도 괜찮아

"술 앞에 겸손하며 살겠습니다."


회사 송년회에서 영업팀 대리님이 하신 말씀이다. 송년회에는 경품이 걸린 게임과 소소한 이벤트가 있는데, 이벤트 중에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 투표가 있었다. 대리님은 우리 층, 그러니까 내가 속한 사업부에서 '간이 제일 센', 달리 표현하면 '술을 제일 잘 드시는 분'으로 선정되었다.


5대 5 가르마에 안경을 끼신 분인데, 차고 있는 고급 시계와 반짝이는 구두가 본인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닌


'가진 만큼 쓰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시는 분이다. 심야 라디오에서 '잘 자요~'해도 어울릴 것 같은 목소리는 대리님의 그런 이미지를 완성하는데, 쉽게 말해 부잣집 도련님 같다고나 할까, 못해도 10년쯤은 외국에서 유학을 했을 것 같다고 할까, '저런 분이 우리 회사에 왜...?'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분이다.


소주 세병은 거뜬할 것처럼 하게 생긴 분들 대리님보다 라는 것이었는데,  모습과는 조금  대리님이 1등으로 선정된 장면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내 술잔을 가득 채우밑 잔 좀 깔지 말라던, 술은 먹으면 느는 것이라던 사람들 위에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상 소감이 술 앞에서의 겸손이라, 말 많은 조기 축구 아저씨들 앞에 박지성이 등장한 기분이, 돈 자랑하는 졸부 앞에 빌 게이츠가 타나


'돈 앞에서는 겸손하세요'


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앓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내 주량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주로 따지면 반 병 정도, 맥주로 세보면 500ml 두 잔 정도, 위스키로 가늠하면 세잔 정도다. 그만큼이면 충분히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으로 잠에 들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술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서도' 술을 잘 마신다고 할 수 있는 주량은 아니고 술들과 모인 자리에서는 '나보다 못 마시는 사람은 없는' 수준. 그래서 같은 돈을 내더라도 마시는 술의 양은 제일 적은, 그게 가끔은 억울한, 그런 정도의 주량이다.


내 주사는 잠드는 것인데 주량 이상의 술이 몸에 들어오면 나는 반.드.시 잠에 든다. 장소가 어디든, 앉아있든 서있든 상관없다. 친구들은 내가 잠든 모습을 재밌어했고 잠이 들 때마다 사진을 찍어댔다. 그렇게 찍힌 사진만 수십 장인데, 내 입에 과자를 물리는가 하면 자고 있는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 밀고 사진을 찍기도 다. 제주도의 한적한 펜션에서 친구들(여자인) 눈썹을 바르는 아이브로우인지 뭔지 하는 화장품으로 내 얼굴에 낙서를 , 에서 깨서 들어간 화장실, 그 안의 거울 속에서 마주친 검은 얼굴의 좀비 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그런 주량에도 나는 친구들과 하하호호 즐겁게 지내왔 회사에 입사하고 나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세 살 버릇 어디 안 간다고 회식 때도 자꾸 잠에 드는 것이었다. 신입으로 선배들과 처음 가졌던 회식자리부터 나는 졸아대기 시작했다. 한 선배는 나를 흔들어 깨웠고 밖에 나갔다 오자며 바람을 쐬게 해 줬지만 식당에 들어와 다시 한잔만 마셔도 나는 꾸벅꾸벅 졸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환영한다는(welcome to hell) 이유로 임원 몇 분과 팀장님들이 자리를 마련해주셨다. 나는 1차에서 술을 좋아하는 기획팀 팀장님과 자리를 함께 했고 열심히 잔을 맞춰드렸지만 그날도 내 간은 앞날을 계산하지 못했다. 2차로 간 호프집에서 맥주 한입에 졸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상무가 되신  팀장님은


"1시간 힘들래, 평생 힘들래"


라며 나를 깨웠고 손가락을 말아 딱밤 때리는 자세로 나를 째려보셨다.


눈을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다시 감기는 눈꺼풀은 딱밤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 500ml 잔이 반 정도 비어있었고 다시 감았다 뜨면 새로 주문한 잔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꿈벅 거리며 맥주의 탄생과 소멸을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자리를 마칠 때가 되었고, 아주 푹 잔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괜히 불쌍한 척 동기의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왔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재밌으니까 '한잔~ 또 한잔~' 하다 잠에 들곤 했지만, 회사 회식은 그런 게 아니었다. 적당히 마시라는 분들도 있었지만, 술을 남기면 눈치를 주거나 그러면 안 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런 핀잔이 듣기 싫어 못 마시는 주량에도 자꾸 원샷을 했고, 마시지도 못하는 내가 회식의 달인들과 템포를 맞추려다 보니 잠에 들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이니 어쩔 수 없해주는 친구도 있었고 술을 강하는 사람을 나보다 큰 목소리로 욕해주는 친구도 있다.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고 방향이 무엇이든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라 고마웠다. 하지만 내가 술 때문에 힘들었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있었다.


업종도, 회사도, 팀 분위기도, 약한 주량으로 태어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거절하지 못하는 내 성격에 있었다. 어떤 일을 거절하지 못해서 내가 조금의 피해를 받더라 나는 거절하는 순간의 불편함이 싫어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거절하면 나를 싫어하겠지 하며 조그마한 미움조차 받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착하다는 말 많이 듣고 살았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그렇게 행동해야 마음이 더 편해지는 유형의 사람일 뿐이었다.


졸더라도 상대방의 속도잔을 들어주는 게 나는 마음이 했고 늘어나는 잔의 개수만큼 사람들은 나를 좋아라 했다. 덕분에 '술은 못하지만 술잔을 빼지 않는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는데 몸이 힘 것과 별개로  칭찬이 조금은 뭇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은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런 걸 보면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은 개인의 성향과 별개로 사회 문화적인 영향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걸 감안하고서도 나는 그런 성향이 유독 많은, 유교 사회 최고의 인재라고 할까,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런 나의 기질을 하나의 특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 런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은 자존감 때문에 거절을 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상대방의 기호 자꾸 나를 맞추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인플루엔셜, 2014 >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는 인식은 그걸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되었고(#내 마음은 호수요) 나는 20대의 많은 시간을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며 보냈다. 심리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고 다이어리에는 매일


'나는 나 스스로 소중하다,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다.'


라는 문구를 적곤 했다. 미움받을 용기 1편은 세 번도 넘게 읽었고 새해가 되면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 되자'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간 나는 스물아홉을 먹어서도 술잔 하나 거절하지 못, 짠 한번 거절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러던 가을날이었다. 선배들이 생일을 축하해준다고 회식 자리를 마련해 다. 그때는 이미 술에 대한 거부감이 많아진 상태였지만 나를 위한 자리라는 생각에 그날도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그렇게 연속으로 잔을 비우다 보니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출근을 못할 지경이 되었다. 팀장님께는 아프다는 문자 한 통만 드린 채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화장실에 기대 쉴지언정 출근은 거르지 않던 나였는데 출근까지 못했던 적은 처음이었고 그 날 이후로 술 때문에 쌓여왔던 여러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차라리 모기를 물리겠어요).


온전히 술 때문에 아팠던 것은 아니었지만 술로 인해 면역력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었고 그렇게 수개월을 아프다 보니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런 모습을 부모님에게 보 게 죄스러웠고 쓸데없는 인정에 고파 엄마의 두 눈에 눈물을 고이게 만든 내가 한심다. 그런 내가 속상했던 친구는 나에게


"그런다고  가치가 올라가?"


라고 했다.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는 나를 나무 말이었고 어왔어떤 책 보다 진한 여운으로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2000번을 넘어져야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아기처럼, 100℃ 가 넘어서야 끓기 시작하는 물처럼,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타이밍이 묘하게는 30살이 되면서부터 인데,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의 인정에 목매달며 살지 않게 되었다. 조금은 쿨해졌다고 할까, 물론 타고난 성향과 살아온 관성이 있어 완전히 달라졌다고는 못하겠지만 미묘하게 달라진 마음의 방향을 나는 분.명.히 실감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나의 '이기적인' 행동이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배웠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이들의 상처는 돌고 돌아 나에게 온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돌아오는 아픔은 꽤나 많이, 생각보다 훨씬, 나를 힘들게 했다. 내 인생에 등장하지 않았어도 '글쎄......' 하며 아쉬워하지 않았을 누군가를 위한 나의 행동이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이에게는 아픔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왜 너네 때문에 내 사람이 힘들어야 해?'


 억울 때도 있었지만 누굴 탓하리오, 결국은 자기중심이 없던 잘못이다.




그제야 돌아보니, 나는 이미 내게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거절해도 나를 좋아해 줄, 내가 거절해도 이미 나를 마음에 담아준, 그런 지인에게는 누구보다 거절을 잘하는 '프로 거절러' 였던 것이다. 아빠가 맥주 한잔 권해도 피곤하다며 방에 들어가는 나였고 엄마가 산책하러 가도 축구해야 다며 거절하던 나였다. 그들에겐 그렇게 쿨했으면서 내 칠순 잔치에 올지 말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왜 나는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는지, 관계라는 건 멀수록 무심하게, 가까울수록 섬세하게 해야 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회식에 가도 내 주량 이상의 술은 마시지 않는다. 원샷으로 마시자고 해도 분위기를 깨지 않는 선에서 한두 번면 충분하지 그 이상은 렵다고 말한다. 주량이 원래 약하다고 더 이상은 힘들다고 허허 웃으며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소통에 필요한 본적인 예의와 배려는 갖추되 상대방이 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을 맞춰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매번의 술잔을 원샷할 능력은 없지만, 파일철에 베인 대리님의 손가락에 정성스레 밴드를 붙여줄 수 있는 사람이고, 조금 바뀐 과장님의 머리를 보고, '미용실 다녀오셨어요' 하며 살갑게 관심 가져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나 다움'을 인정해주지 않고,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네가 싫다고


'내가 싫으 네가 꺼지라고'*


당신의 인정이 없어도 나는 충분히 행복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싶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그들의 억지 인정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의 진실된 , 그 한 사람의 사랑이 나의 미움받을 용기,  나는 그를 믿고 나답게 살 수 있를, 부디 그렇게 되기를, 오늘도 내일도 간절히 다짐하는 바이다.








#미움받을 용기 #회식 #거절



*<조윤성, #내가 싫으면 니가 꺼지세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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