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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May 20. 2020

잘하는 것을 잘하는 것에 대하여

축구가 글이 될 수 있을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지금 어떨지 모르겠지만 약 15~20년 전, 그러니까 내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가 아닌 것들은 모두 쓸데없는 짓으로 여겨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 저런 말을 하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저런 이야기가 오 가는 것을 분명히 들은 적이 있다. 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타고 가는 버스에서든, 어디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저 문장은 내 귀로 들어와 내 마음 어딘가에 박혀 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저 같은 말을 (간접적으로 라도) 들어봤을 사회, 렇게 말해도 '걱정서 그러는 거야'라고 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에서 라 왔다.


2010년 초반,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이 유행했다. 수백만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꿈꾸기 열풍을 이끌었다. 핵심 내용은 R=VD(Realization = Vivid Dream,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한다면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R=VD' 란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하는 능력인데, 꿈을 하거나, 글로 적거나, 꿈에 대해 명상하는 등의 행위 일체를 말한다. 꿈을 쓰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꿈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책이 가진 위험성


1. 업으로서의 성취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는 점

2. 성공한 사람들의 꿈을 이루는 과정, 수 없이 많았을 좌절의 시간들, 에 대해선 제대로 조명하지 않고, 화려한 '결과' 만을 보여준다는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은 아지만 20대 초반, 저 책 덕분에 꿈에 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내가 잘하는 것은?' 하고 말이다.




당시 나이로 20여 년을 살면서, 재능이 있다고 느끼거나, 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다면, 그건 딱 하나, 바로 '축구'였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학교 축구부 감독님은 나에게 정식으로 축구를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1년 차이가 하늘 같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축구 때는 1,2년 차이 나는 형들 앞에서도 우쭐할 수 있던 나였기에, 엄마 아빠한테 축구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실패한 운동선수를 수 없이 보아 왔던 부모님은 그건 안돼’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엄마 아빠가 하지 말라는데 뭐...' 하며 포기하고 말았다. 박지성처럼 몇 날 며칠을 단식 투쟁했다면 '이 녀석...', 하며 결국은 시켜주셨을 분들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고, 당시의 나는 부모님이 지 말라면 안 하는 게 맞다고 여겼던, 말 잘 듣는 초딩일 뿐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꿈은 싱겁게 날아가 버렸고, 꿈을 고민하기 시작한 스무  '축구 선수가 되고 시포용!!!' 하기엔 수염이 너무 굵어 .




요새는 직업 외의 분야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많아졌다. 먹을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맛집 탐방으로 파워 블로거가 되기도 하고, 맛있는 걸 많이 먹는 사람은 먹방 유투버가 되어 돈을 벌기도 한다. 낚시에 빠진 직장인이 유튜브에 채널을 운영하는가 하면, 취미였던 필라테스 매진해 강사가 되는 사람도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가 글쓰기가르치는 작가도 눈에 띄는데, 그래서 요새는 N 잡러(업의 개수가 여러 개인 사람)의 시대라고 하기도 한다. 일과 취미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축구와 관련해서는, 축구 해설가가 되거나 프로 구단에 사무직으로 입사하는 등의 선택지가 있었다. 스무 살이 넘은 나이였지만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 그렇게 노력하며 10년을 보내, 축구를 가르 수 있는 길 눈에 보. 하지만 어려서부터 엘리트 축구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이제와 굳이 경쟁하고 싶지 않았. 거기에 미래를 걸기에는 ‘이제 와서 왜...?’라는 불안이 앞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건 축구라는 스포츠 전반이 아니라 '축구를 한다는 행위' 였기 때문에 축구 선수가 되는 게 아니라면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따라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나에게 축구는 업이 될 수 없었다. 업이 될 수 없는 취미, 업이 될 수 없는 재능, 그게 나에게는 축구였다.




김연아 

박지성

유재석

이상혁(페이커)


자기 분야에 최고에 오른 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자기가 잘하는 일, 그 고유의 영역에서 본인만의 라마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뤄 낸 결과가 단순히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하기 위해 었을 좌절의 시간과, 그걸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을 존중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그것도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수준의 재능이 없이는 불가능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이 가진 재능이 그들의 성공에 얼마 큼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타고난 재능 없이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잘하는 것을 잘해서' 성공한, 재능을 업으로 삼아 성공한, 부러운 사람들이다.


자기가 잘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글쎄, 주변에는 별로 없다. 지인들을 돌아보,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재능을 발휘하며 돈을 버는 사람보다는 생계를 위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취직을 위해 수십 개의 자기소개서를 썼던 사람도, 공직을 위해 수년을 공부했던 사람도 찬가지다. 잘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기보다는 먹고살기 위 직업을 선택한 쪽 가깝다는 것이다.


잘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과 생계를 위해 직업을 고른 사람


누구의 삶이 더 훌륭하다거나,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다거나를 평가하고 싶지는 . 극단적으로 말해, 김연아나 유재석보다 내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런 두 삶을 비교해보려는 게 아니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재능으로 먹고살지 못하는 우리가, 이 되지 못한 그 강점을, 우리 인생에서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 것다.




처음으로 돌아, 공부 말고는 쓸데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사회 우리는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쓸데 있다'라고 여겨지는  여가 보내려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책을 읽어야 돼, 운동을 해야 해, 영어 공부도 좀 해야 돼’ 하며 자기 계발의 강박 속에 산다는 것이다. 책 읽기를 싫어해도,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 영어가 필요 없어, 그래야 똑똑 해지니까, 그래야 멋있어지니까, 그래야 창피하지 않으니까, 하며 그런 식으로 남는 시간을 것이다.


게임을 잘해서 PC방 가는 게 즐겁고, 축구를 잘해서 운동장 행복하고, 노래를 잘해서 노래방이 미인 사람들도, 누군가가 나는 어제 독서 모임 했어,  나는 PT받았어’라고 하면 ‘음... 그럼 나는 뭐했지? 라며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 것이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에서 말하길, 우리 사회는 약점을 보완하고 가르 회라고 한다. 약점 없애고 강점은 묻어두길 요구하는 것인데, 안타까운 것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약점보다는 강점에 집중하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의 기본 수준을 높이고 낙관적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앞서 갈 것인가 보다는 어느 면에서든 뒤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도록 교육받았다....... 약점에 집중해서 그것을 보완하는 방법으로는 자기 발전도 없고 행복도 없다. 그러한 노력이 성공한다 해도 기껏해야 평범한 사람이 되는 데 그친다....... 진정한 행복의 핵심은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 김주환, <회복탄력성> 중에서 –


나는 축구를 잘해서 축구하는 순간이 즐겁다. 그때 발휘하는 내 능력, 그런 모습을 좋아한다. 그래서 축구하기 전이면 컨디션 관리에 최선을 다한다. 경기 전날엔 술은커녕 과식도 하지 않다. 평소에 하는 근력 운동도 축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달리 말하면 상하체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한다. 내려가는 계단은 무릎에 좋지 않, 되도록 이 에스켤레이터를 용하고, 올라가는 계단은 허벅지 탄력을 위해 두 계단 씩 오르려고 한다. 이런 내 노력들이 매주 일요일, 축구 경기에서 결실을 맺을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회사에서 느끼는 성취감과는 조금 다르다. 회사원인 내가 하는 일은, 회사를 위해 주어지는 일이다. 조직이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건데, 거기서 얻는 성취감은 하나의 '안도감'에 가깝다. 일이 잘못되지 않아서, 조직에 피해를 주지 않아서, 팀장님에게 잘 보일 수 있어서,  좋은 정도랄까. 온전한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느낌은 아니다. 회사 일 살아있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라는 얘기다. 안타깝지만 회사에서는 일을 열심히 해도 피가 끓는 성취감을 껴본 적이 아직은 없다.


축구하기 전날 만난 친구는 나에게


"국가대표야? 누가 보면 월드컵 나가는 줄 알겠네"


라고 했다. 치킨을 먹으러 서, 축구 때문에 맥주는 싫다고 했, 네가 국가대표냐고 안정환도 이탈리아전 전 술을 마셨다고(근거는 모르겠음), 나보고 유난 떨지 말라고 한 말이다.


당연히 나는 구 선수도 아니고 경기를 이긴다고 수당을 받는 것도 아었다. 하지만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축구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성취는 1등을 하거나, 누구보다 잘하거나, 무조건 이기거나 하는 등의 성취가 아니다. 내가 설정한 기준에서, 내가 노력한 만큼에 대한 보상을,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게 이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하는 것을 잘하 위해 노력함으로써  살아있음을 확인는 것이다.





모두의 재능은 각자 다. 누군가에게는 축구가, 어떤 이에게는 노래가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림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남을 웃기는 것’ 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사람들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거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이제는 벗어났으면 좋겠다. 외국인과의 소통이 즐거워 영어를 배우고, 이 주는 쾌이 좋책을 읽고 싶다면, 이 많이 응원해주고 싶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쓸데 있다고 여겨지는 자기 계발이기 때문에, 나만 뒤쳐진다는 강박감 때문에 는 것이라면, '음...' 하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축구를 잘 잔디를 ,

노래를 잘한다면 노래를 러라.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잘한다면, 더 많은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

혹시 글을 잘 쓴다면, 더 많은 글을 써라.


독서모임을 못 갔는지, 왜 영어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지, 씁쓸해하지 말고 말이다.


나는 축구 얻는 자신감으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높아진 행복감, 고양된 자존감으로 파이팅 있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업무를 만나더라도 ‘오늘 안에 타임머신을 만들어와~'라는 정도의 일만 아니면 ‘하면 되지 뭐라면서 부딪힐 수 있다. 시간이 지나, 내 글이 지금 보다 나아질 거라는 도 축구에서 온다고 하면 과장일까? 글쎄...


아무리 R=VD를 외쳐봐도 축구는 나에게 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재능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일상에 그것을 발휘 수 있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돈이 될 수 없는 축구, 꿈이 될 수 없는 축구지만, 축구를 통해충분히 많은 행복을 얻고 있다. 렇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처럼, 자기만의 강점으로 각자 일상을 만들어나갈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잘하는 것을 잘하는 것에 대하여, 의 쓸  짓에 대하여, 이해해 수 있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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