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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Oct 02. 2020

왜 내 주변에는 밉상밖에 없는 거죠

가시 박힌 마음

행복으로 추억할 시절이 하나만 있어도 인생은 살만 한 것이라고 그러더라.


나에게 그런 절이 있다면, 그건 바로 고등학교 시절일 것이다. 벚꽃 만개한 봄날의 교정으로 기억하는 간이다. 집은 평안했수능이라는 목표도 있었다. 좋아하던 여자 친구는 나를 설레게 했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이랑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해야 할 목표도 있는, 이라곤 하나도 없는 완벽한 행복의 시간이었다.


작은 엄마는 우리 엄마를 부러워하셨다. 듣기 좋으라고 그러셨는지는 도 명절에 우리 엄마를 만나 나 같은 아들을 둬서 좋겠다고, 말썽도 안 피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나를 칭찬해주셨다. 그런 얘기를 들었던 엄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도 나는 작은 엄마의 말처럼 별 탈 없이 자란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고통이 없이는 어른이 될 수 없었을까. 그랬던 나에게도 사춘기가 왔다. 대학생 된 이후였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1.51의 학점으로 학사 경고를 맞았다. 학교를 가지 않았고 공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 그런 사정을 모르다. 때만 해도 맞벌이를 하고 계셨고 원래도 나에게 공부를 강제하시분들은 아니었 때문이다. 대학에 가서는 성적표 한번 보여달고 한 적 없는 분들이었으니 그런 분들에게 굳이 나서서 요새 아들은 방황하고 있다고, 공부는 1도 안 하고 있다고 말할 필요 없었다. '잘하고 있지?'라고 물으면 '잘하고 있어요'라고 할 뿐 먼저 런 상황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조용한  시작됐다.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만한 일은 세상에 많다. 지금 쓰는 이 글 부모님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읽으면 슬퍼하시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시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춘기가 와서 행복하지 않았다기보다는 행복하지 않아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대에 갈 때는 집안 사정도 기울었고 수능이라는 목표도 결승선을 지나 있었다. 헤어진 여자 친구는 싸이월드에 새로운 남자 친구 사진을 올리고 있었고 친구들과 뛰어놀던 고등학교 운동장은 지나간 과거일 뿐이었다. 집이 주던 안정감과 몰입하던 목표, 좋아하는 사람들, 그런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내 행복을 받쳐주던 여러 가지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 사춘기의 증상은 '미워 보임'이었다.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밉게 보였다. 거리를 걷는 행인도, 지하철 맞은편은 승객도, 하나 같이 미워 보였다. 왜 수염을 안 깎냐고, 왜 걸음걸이가 그러냐고, 왜 신발 끈을 그렇게 묶었냐고, 별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리고 내게 미움을 받은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들이 미워 보여서 힘들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스스로가 괴로운 일이었 그들에게 보낸 화살은 자꾸 나를 향해 돌아왔다. 사람들을 밉게 보 스스로가 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미워하기 싫었다. 내가 원해서 그들을 미워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마음만 괴로울 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해결책은커녕 원인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으려는 노력도 해봤지만 말이 안 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매일의 연속이었다.




<회복탄력성, 김주환, 위즈덤하우스, 2011>

그러던 우연히 학교 수업으로 '소통 지능과 행복'이라는 교양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인생을 극복하는 내면의 힘인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대해 배우는 강의였다. 과제를 하기 위해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읽는 데, 아래 내용에서 눈이 멈췄다. 찾아 헤매던 것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심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져온다.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평가절하하고, 편견에 사로잡혀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중략)... 당신 주변에 혹시 이상하고, 나쁘고, 사악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유난히 많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의 부정적 감정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으니, 스스로를 한번 돌이켜볼 일이다.
- 김주환, <회복탄력성> 중에서 -


사람들이 미워 보인 이유는 부정적인 내 마음 때문이었다. 내 마음이 불행하니까 사람들이 미워 보였던 것이고 그런 미움이 다시금 돌아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되었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 결국, 내 부정적인 감정의 다른 얼굴이었.


정답을 알고는 조금 허무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프고 잠을 자지 못하는 것 같다, 랄까. 허기지거나 수면이 부족하면 세상 많은 일들에 짜증이 난다. 별거 아닌 친구의 농담도, 회사 동료의 작은 실수도, 평소 같으면 쉽게 넘어갈 일들에 심통이 난다. 당시에 내가 사람들을 밉게 보았던 이유마찬가지다. 행복하지 않은 마음은 점점 예민해졌고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사람들을 밉게 보았 것이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이 좋았던 이유는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는


① 잘하는 것을 할 것.

② 감사일기를 쓸 것.

③ 운동할 것.


등의 세 가지였다(너무 당연한 얘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책이 주는 울림을 느끼려면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었고 운동은 원래 좋아했다. 따라서 당장이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감사일기 쓰기'였다. 오랜 시간 '미워 보임'으로 속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이거구나' 싶었고, 고민할 것 없이 그날부터 감사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는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별 이유 없이) 미워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학사경고로 사버린 사춘기 입장권은 생각보다 비쌌는지 그걸 빠져나오는데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행복하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30대가 된 지금은 행복지수가 꽤나 높은 사람이 되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좌절에 빠진 적도 있지만 이제는 고등학교 때처럼 요행으로 얻은 행복이 아닌 스스로 만든 행복으로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따뜻한 부모님 밑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난 행운도 있지만 그런 행운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람들이 미워 보일 때가 있고 이유 없는 짜증을 낼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그 원인을 내 안에서 먼저 찾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처럼 멋스러운 철학을 가졌다고는 못해도, 내 감정의 변화는 외부 요인과 별개로 스스로에게 있을 때가 많다는 걸 알기에 힘든 순간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려 한다. 손에 가시가 박히면 보드라운 아기의 뺨이라도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만질 수 없다.* 아가의 볼이 자꾸 따갑다면 먼저 내 손에 가시가 박혔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어른이라면, 자기를 아낀다면, 말이다.








* 일체유심조 : 다음 백과(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8a1656n15)

*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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