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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Jan 08. 2021

<쇼미더머니 9> 우리에게 영웅이 필요한 이유

릴보이의 우승을 축하하며

우리에겐 영웅이 필요하다.


쇼미더머니는 TV 채널인 Mnet에서 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힙합 음악을 하는 래퍼들이 나와 순위를 가르는 경연을 한다. 올해 벌써 9회 차로 근 10년 가까이 된 프로그램인데 그만큼 이전 시즌들이 재미와 감동을 주며 흥행에 성공했고 힙합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대중 미디어 안에서는 힙합계(힙합씬이라고들 하던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힙합을 잘 모르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다이나믹 듀오와 에픽하이, 슈프림팀의 노래는 학창 시절부터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힙합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송민호'의 <겁>이나 '비와이'의 <forever> '지코'의 <Okey Dokey> 등 쇼미더머니에서 유명해진 노래들은 더러 들어봤지만 TV를 통해 쇼미더머니를 챙겨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작년 12월에 끝난 쇼미더머니 시즌 9 은 처음으로 한 회 한 회 챙겨봤다. 추석에 집에서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이후로는 유튜브를 통해 하이라이트를 챙겨 봤고 준결승과 결승 무대는 본방송까지 라이브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명의 참가자를 응원했다. 그가 보여주는 랩 실력과 그가 살아온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고 결국은 그가 우승하는 기쁨을 함께하기도 했다. 본명 오승택, 바로 릴보이다.


<릴보이>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운동선수든 가수든 그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그가 보여주는 결과물에 기뻐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좋아하는 축구 선수나 축구 클럽이 있으면 일주일에 한 번 씩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를 기다릴 수 있다. 아끼는 배우의 드라마를 보기 위해 금요일 밤을 기다리는 것도 좋고 애정 하는 가수의 앨범 발매를 기다리는 것도 행복하다.


물론 그런 팬심이 지나쳐 스토커가 되거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사생팬이 되는 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이돌의 스케줄을 따라다니기 위해 학교에도 가지 않고 알바하며 힘들게 버는 돈을 대로 쏟아붓는 건 (그의 삶과 취향을 존중하는 문제와 별개로)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기 생활을 유지하는 선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팬이 되는 일은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으레 그렇듯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20년의 마지막 3개월 나는 릴보이의 팬이 되었다. 한 주 한 주 쇼미더머니를 기다리며 그를 응원했고 그의 다음 모습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가 릴보이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그가 피해를 받아 온 약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릴보이는 힙합계에서 한동안 소외를 당했다. 첫 데뷔 곡인 'officially missing you'는 사랑에 대한 노래였는데 그게 차트 1위를 하며 성공하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래퍼들이 그를 욕하기 시작했다. 사랑 음악을 하는 '발라드 래퍼'라며 그런 건 힙합이 아니라 했다. 상업성을 위해 영혼을 팔았다며 그를 비난했다. 릴보이는 그의 앨범 제작을 도와준 프로듀서가 주도적으로 그를 욕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배신감에 배신감을 느껴 정신 질환까지 앓았고 근 5년 동안을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릴보이는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싶어서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다고 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앞으로는 무시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음악을 재미있게 하고 싶다고, 음악을 다시 즐기고 싶다고 했다. 내가 그의 이야기에 공감한 건 나도 '표현자' 중에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고 그 수단을 선택하는 것도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게 사회에 해악을 끼치거나 타인에게 폐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릴보이는 힙합을 통해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왜 그걸로 뭐라고 하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릴보이의 음악이 힙합이냐 아니냐는 문제와 별개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표현의 양식을 제한하는 목소리 때문에 한 명의 표현자가 상처 입고 힘들어하는 사실이 나는 안타까웠다.


물론 사랑 노래가 정말 힙합이 가진 오리지낼리티를 훼손하는 일이라면 릴보이를 좋아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릴보이가 만들었던 노래가 힙합에 폐해를 주고 그들이 말하는 힙합 정신을 훼손시킬 한 일이라면 그렇게 욕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힙합을 오래도록 좋아해 온 사람이고 힙합은 애초에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음악이 니라고 생각했다면,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릴보이가 디스(욕)를 받았을 때는 이미 사랑을 노래하는 힙합도 대중에게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다이나믹 듀오, 슈프림팀, 에픽하이와 같은 메이저 래퍼들은 이미 그때도 사랑 노래를 하고 있었다. 다이나믹 듀오의 <죽일 놈> 슈프림팀의 <그땐 그땐 그땐>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인데도 영향력이 큰 메이저 래퍼들은 디스 하지 않고 릴보이와 같이 비교적 마이너인 래퍼들 만을 공격한 것은 그다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말 힙합에 대해 논하고 싶었던 게 맞느냐, 정말 소신을 가지고 욕한 게 맞느냐, 하는 의문이 는 사건이었다. 이질감으로 릴보이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았 나 역시 그중에 하나였다.


릴보이가 랩을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마냥 히히힣 하며 웃기만 하는 그가 사실은 꽤나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와는 반대로 랩은 엄청 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예선 심사에서 저스디스라는 심사위원은 릴보이가 랩을 '눈물 나게 잘한다'라고 평가했다. 이후로도 릴보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매회 그의 존재를 증명해 나갔고 결국은 우승자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경쟁보다는 단지 음악을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그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승부욕을 직접 표현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경쟁에 앞서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더 많이 보였고 힙합에 대한 진지한 애정도 느낄 수 있었다.


약하고 소외된 이들의 성공에는 쾌감이 있다. 내가 릴보이에 빠진 이유도 마찬가지다. 박지성이 사실은 평발이었다는 것,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일본 배 133척을 물리쳤다는 것,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 병에도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가 되었다는 것, 이런 스토리는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나는 릴보이가 그를 괴롭힌 자들에 맞서서 승리하기를 바랐다. 그걸 기다리며 한 주 한 주를 설레는 마음으로 보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음악을 통해서 그걸 해냈다. 실력을 인정받았고, 대세가 되었다. 소외된 자들의 반란, 약한 자들의 승리, 보통 이들의 성공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사실 우리 자신이 보통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약하고, 때로는 소외받기 쉬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공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우리에게 영웅이 필요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번 쇼미더머니 9 이 좋았던 이유는 릴보이뿐 아니라 다른 래퍼들도 모두 각자만의 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퇴물 래퍼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러 나왔다는 스윙스, 이전 시즌에서 억울하게 탈락했다는 머쉬베놈, 충 청주 할머니 방에서 음악을 했다며 스스로를 시골 잡종이라고 부르는 원슈타인, 이제는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는 심사위원 저스디스 까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두 함께 쇼미더머니 9 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나는 릴보이의 승리를 응원하면서도 사실 그들 모두를 지지하는 마음도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을 녹여 쓰는 가사는 울림이 있었고 때로는 시처럼 아름다웠다. 그게 누구든 그 자리까지 오는 게 평탄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보였다. 1년, 2년을 노력한 게 아니구나, 싶었고(나 혼자 가늠하기에) 적어도 모두가 5년에서 10년은 힙합에 빠져 살아온 것 같았다. 그 정도는 노력해야 저렇게 빛을 발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들만큼 포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들이 해낸다면 나도 해내야지, 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이런 내 흥분이 얼마나 갈지는 모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전으로 돌아가 '힙합? 나 그런 거 몰라~' 하며 지낼지도 모른다. 혹시 그러더라도 아쉬울 건 없다. 지난 3개월 힙합에 빠져 행복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쇼미더머니가 힙합을 그대로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힙합의 멋이 무엇인지 덕분에 가늠할 수 있었다. 자기 삶의 영웅이 되는 이야기와 그런 서사가 어우러진 음악, 그걸 꿈꾸는 래퍼의 멋을 배웠다. 우연히 본 시즌 9 이 역대급 시즌이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응원했던 릴보이가 우승까지 한 것 감사하다.


who ryhmes better

who writes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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