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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Aug 10. 2021

늘의 어려움

한 달 정도, 몸이 좋지 않았다. 딱히 아픈 건 아니었다. 감기에 걸렸거나 몸에서 열이 나는 건 아니었다. 소화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쉽게 피로가 몰려왔고, 몸 여기저기에 알레르기가 났다. 붉게 돋아난 녀석들은 좁쌀처럼 작았고, 가려웠다. 지우개로 쓱싹 지우면 사라질 것처럼 생겼지만 손으로는 아무리 긁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긁으면 시원하긴 했지만 피가 나기도 했다. 잠을 푹 자면 괜찮아지는 듯하다가도 퇴근하고 긴장이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가려웠다.

 

사실 스물아홉이던 2018년에 피부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전신의 피부가 뒤집어졌고 증상이 가라앉는 데 3개월이 걸렸다. 당시에 방문한 한의원에서 내 몸을 보고 당황한 의사의 눈빛을 기억한다. 의사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집안 청소는 잘하고 있냐고, 이불 빨래는 자주 하냐고 그랬다. 집의 청결 상태를 의심할 만큼 피부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피부가 아프다는 것이 그렇게 괴로운 일인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환부에선 열이 났고, 피부는 딴딴하게 부어올랐다. 가려움이 심해 밤에 잠도 잘 수 없었다. 한번 긁기라도 하면 손은 멈춰지지 않았고 가려움은 범위를 넓혀 온몸으로 퍼졌다. 긁을 때의 시원함은 쾌락에 가까웠지만 긁어도 긁어도 가려웠다. 결국에는 피가 나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열을 식히기 위해선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하지만 새벽 시간 몽롱한 상태로 찬물을 몸에 뿌리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려워서 긁고, 피가 나면 따갑고, 찬물로 환부를 식히고, 후회하고, 그런 일상이었다.

 

피부 질환으로 수십 년을 고생하는 분들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그 시절이 꽤나 고통스러웠다. 학생 때 여드름 말고는 피부가 아파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후로 컨디션이 저조하면 조그만 알레르기들이 몸에 올라오는데 이번에는 그게 꽤 오래갔다.


그래도 뭐,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잠드는데 무리도 없고 가려움의 깊이도 깊지 않다. 아직 완치가 안됐을 수도 있고 체질이 조금 바뀐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만하게 나은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조금 아쉽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몸 컨디션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어떤 정도의 항상성은 있겠지만 그래도 나름의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해도 그렇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늘 같은 정도의 몸상태를 가질 수는 없다. 우리는 그런 걸 바이오 리듬이라고 부른다. 30대가 된 이후로 나는 바이오리듬, 그런 몸의 오르내림을 말 그대로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오르내린다는 것, 살면서 그런 게 비단 바이오 리듬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많은 것들에는 오르내림이 있다. 늘, 언제나, 항상이라는 말은 다정하고 설레는 말이지만 사실은 실현 불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그게 무엇이든 항상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해 한 해 살수록 점점 더 느낀다. 그게 무엇이든, 늘 같을 수는 없다.


사실 어렸을 때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착각했던 순간이 많다. 하나의 사건이 영원할 거라고 믿곤 했다. 어떤 친구와 친해지면, 서로의 진심을 알고 마음을 나누면, 그 관계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우리는 멀어져 있었다.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어서가 아니라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지면 자연스레 서로 멀어지곤 했다. 물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제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관계도 많다. 그렇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다. 당장에 친해지는 것과 별개로 그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훨씬 더 큰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변화를 이겨낼 수 있는 어떤 수준 이상의 정성이 필요하다.

 

수험생 때는 수능 시험이 인생의 전부 같았다. 군대를 전역했을 때는 인생에 자유만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다. 취업에 성공했을 때는 그저 멋스러운 직장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순간순간이 지나면 늘 새로운 것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능은 끝났지만 인생에는 새로운 과제와 도전들이 넘쳐났다. 군에서는 전역했지만 어느새 또 새로운 울타리, 안정감을 핑계로 한 또 다른 부자유를 찾고 있는 나였다. 취업의 기쁨도 잠시였다. 회사원으로 사는 게 그저 한번 사는 인생에 올바른 선택인지 고민이 많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인생은 언제까지나 흔들릴 거라는 것이다. 변하고, 흔들리고, 오르내리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름의 자신이 생겼다. 인생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삶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다고, 기쁨만이 가득해 보이는 사건에도 어쩌면 비극의 씨앗이 숨겨져 있고 때로는 인생의 바닥을 경험해야 희망을 꿈꿀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늘 항상 같을 수도 없고 늘 항상 좋을 수도 없다고, 그렇다고 인생이 언제나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삶의 진리를 깨달은 양 자신하며 살고 있었다. 그럴 수 있는 나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현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이 생겨도 어느새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행복하지만 언젠가는 또 힘든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힘든 일이 생기면 곧 다시 기쁜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에는 근거가 없었다. 긍정적인 마음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나쁘게 보면 그건 지금의 위기를 방관하는 태도였다. 좋아진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현재의 상태를 눈감아 버리는 속 편한 회피였다.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변하는 게 인생이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나의 일상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출퇴근을 한다. 월급을 받고 돈을 모은다. 글을 쓴다. 운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난다. 사람들과 우정을 나눈다. 근데 이런 것들이 모두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면 괜스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배고파질 거 밥은 왜 먹고, 어차피 이별할 거 사랑은 왜 하고, 어차피 흙이 될 거 왜 살고 있냐, 라는 생각이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 누구와도 이별할 수밖에 없다. 나와의 이별과 너와의 이별, 그리고 인생과의 이별이다.

 

무엇이든 변한다는 마음은 미래에 초점이 있다. 힘든 게 다시 좋아질 거라는 믿음은 긍정적 마음이지만 그런 식으로만 믿다 보면 지금이 왜 힘든지,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고민을 소홀히 할 수 있다. 오지 않은 미래를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을 회피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좋을 때도 마찬가지다. 환희에 찬 순간, 그게 곧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현재에 누릴 수 있는 온전한 기쁨을 반납하는 것이다.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며 오늘을 더 만끽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행복해질 기회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지난 한 달도 그랬다. 피부가 또 아팠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좋아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금 쉬면 자연히 낫겠지, 싶었다. 하지만 한 달의 시간이 지나도 피부에 생긴 병변은 그대로였다. 아마 몸의 컨디션과 별개로 알레르기가 하나의 질환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결국 여자 친구의 조언을 듣고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일주일 정도 연고를 바르니 많이 좋아졌다. 안 해도 될 고생을 한 달 동안 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게 악화되었으면 더 큰 고생을 했겠지, 라는 생각도 든다. 막연한 믿음으로 내 상태를 방치해둔 꼴이다.


인생에는 오르 내림이 있다는 것, 늘 항상 같을 수는 없다는 것, 여전히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게 몸이든, 인생이든, 뭐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어쩌면 오늘의 삶을 방치하는 나태한 게으름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살아있는 지혜나 살아가는 연륜이 아니라 인생을 허무하게 만드는 우쭐한 착각일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늘 항상 같을 수는 없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싶다. 어차피 지나갈 인생이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오늘의 행복을 즐기고 싶다. 나에게 중요한 건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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