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가끔 나이가 어려지면 어떨까 싶을 때가 있다. 지식이나 경험은 지금과 같은 상태로 8살로 돌아가면 어떨까, 13살로 돌아가면 어떨까, 그것도 아니면 17살이면 어떨까 싶은 상상이다. 그렇게 되면 조금 더 많은 걸 이루고, 조금 더 많은 걸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더 많은 공부를 해도 좋을 것 같고, 행복한 추억을 더 많이 쌓아도 좋을 것 같다. 타임머신이 여러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걸 보면 시간을 돌려보고 싶은 생각이 비단 나만의 공상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삶에 100퍼센트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의 연장으로 조금 더 어려서부터 독서를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어린 나이 때부터 더 많은 책을 읽었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다. 20대 초반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근 10년 정도 책을 읽었다. 지금까지는 자기 계발의 측면에서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독서 자체가 즐거워졌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책을 찾게 됐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다. 그게 조금 아쉽다.
책은 시간이 있어서 읽는 게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서 읽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책을 읽는 사람도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건 변명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짬을 내서 읽는 시간이 아니라 독서만을 위한 부피감 있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이 매일매일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모든 걸 해주셨으니 그 시절에 조금 더 많은 책을 읽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선수 출신'인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이기기가 어렵다. 그게 어떤 종목이든 취미로 운동을 하는 아마추어가 훈련으로 단련된 누군가를 앞서기는 쉽지 않다. 발육의 시기에 몸이 그렇게 세팅되었다고 할까, 그들에게는 어린 나이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된 그들만의 특별함이 있다. 마찬가지로 조금 더 일찍, 뇌가 더 말랑했던 시기에 책을 읽었으면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힘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시간은 많겠지만 욕심껏 생각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20대 초반에는 박완서 작가의 수필을 좋아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시작으로 '두부', '한길 사람 속',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 당시 서점에서 살 수 있는 대부분의 수필집을 골라 읽었다. 그중 어떤 책이었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아직도 인상 깊게 기억하는 내용이 하나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우리는 감상할 영화를 누군가와 함께 고른다. 예매를 하고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 당일이 되면 시간에 맞춰 옷을 입고 외출할 준비를 한다. 영화를 본 후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 헤어져서도 함께한 시간을 곱씹으며 여운을 즐긴다. 이게 모두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극장에 가는 건 좋아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잡는 일이다. 영화를 보는 건 설레는 외출 준비가 되고, 친구와의 행복한 교감이 된다. 극장으로 가는 지하철 창문에 비치는 얼굴, 그 설레는 표정이 영화가 된다. 영화를 본다는 사실 너머에 있는 것, 박완서 님의 책을 통해 그런 걸 배웠다
그 이후로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 또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면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단지 눈앞에 드러나는 현상뿐 아니라 그것의 전후 맥락이나 흐름을 생각하게 되었다. 박완서 작가님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스무 살이 넘어 내가 세상을 인식하게 된 여러 가지 관점을 알려준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나는 어린 날 교과서와 문제집에 안에 갇혀 있던 나의 세계를 깨쳐가기 시작했다.
사실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독서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 같았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으면 천재가 된다고, 세상의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책을 읽으면 나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겠지, 보다 앞서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생각하던 성공한 삶이 성공적인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업체의 사장님, 지역을 주름잡는 정치인, 시대를 앞서 하는 예술가, 언론에 조명되는 천재 과학자들만이 성공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성공을 이뤄가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계속 그저 주입받은 세계에 갇혀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최고라고 여겼을 것이다. 앞서가는 삶만이 최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인생에는 다양한 색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성적이나 숫자로 드러나는 자산, 치장할 수 있는 외관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좁은 시야 밖에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소중하고 귀중한 것들이 많았다.
그저 상업적으로만 쓰인 게 아니라면 책은 글쓴이가 느끼고 깨달은 인생의 정수를 담고 있다. 정제된 생각을 나열하여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깊은 곳, 생각의 깊은 속을 드러낸다. 그렇게 쓰인 책을 읽다 보면 내 안에는 어떤 균열이 생긴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귀중한 내면을 경험한다. 혹시 그게 나의 생각과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에 있더라도 세상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인식의 깨침이 반복되다 보면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이해하게 된다.
다름에 대한 이해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존중이 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삶이 공존한다는 걸 이해하는 만큼 나라는 존재의 개별성을 사랑할 수 있다. 비록 세상이 들이미는 잣대에 내 삶이 부족해 보여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내 삶은 소중하다고, 주어진 능력과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의 하루는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세상을 칠하는 나라는 색깔의 소중함을 이해하게 된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아무리 원해도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비록 어려서부터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살아가는 동안은 계속 책을 읽고 싶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런 삶도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해볼 생각이다. 하여 나에게 주어진 인생 또한 소중하다고, 그런 내 운명, 이렇게 태어난 나 자신도 사랑해볼 생각이다.
가을밤 책 한 장의 바스락 거림이 들린다. 내 운명은 어떤 책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설레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