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필사인가

by 추세경

나의 글쓰기 습관은 이렇다. 매일 글을 조금씩 쓰되 한 달에 두 편 정도는 글을 완성하려고 한다. 그러면 1년에 24개의 글을 쓸 수 있고 2년이 지나면 1권의 책을 낼 수 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만으로 3년이 넘었다. 어느새 한 권의 책을 냈고 서랍에는 지면을 얻지 못한 글들이 남아 있다. 언젠가는 자기만의 종이 위로 세상에 나올 소중한 글들이다.


글을 하나 쓰면 다음날은 필사를 한다. 한 꼭지의 글을 쓰면 다음 날은 머리를 식힐 겸 필사를 하는 것이다. 단지 취미로만 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더 나은 필력을 위한 훈련의 일종으로 필사를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그 책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처음으로 필사했고 지금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두 번째로 필사하고 있다.


그날도 그랬다. 어제 막 하나의 글을 마무리하고 필사를 하는 날이었다. 저녁에는 청첩장을 받는 약속이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근처 카페에서 필사를 하고 있는데 나 말고도 일찍 오는 친구가 있었다. 그와 연락이 닿아 내가 있는 곳을 알려줬고 이내 친구가 도착했다. 뭐 하고 있었냐는 물음에 필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마침 녀석은 자기도 책을 읽으려고 했다고, 각자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나도 찬성이었고 잠시 인사말을 나눈 후 각자의 할 일에 집중했다.


이십 분쯤 흘렀을 까, 친구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필사는 왜 하는 거야?"


“이거?...”


말문이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꼭 이렇게 중요한 순간이면 말문이 막힌다. 필사를 하는 이유는 정말이지 많았다. 필사를 하면 잡념이 사라지는 게 좋다. 명상을 할 때와 비슷하다. 좋은 문장을 받아 적으면 마음이 울리기도 한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와 비슷하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도 좋고 글을 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등등, 이유는 많았다.


친구에게는 글쓰기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싶었다. 요새는 필사를 하는 이유가 재미보다는 훈련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영화배우처럼 그윽한 눈빛으로 뭐라도 대단한 게 있는 냥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겨우 이렇게 답하고 말았다.


"글 쓰는 데 도움이 돼, 뭐라고 해야 되지…, 그냥… 그냥 도움이 돼…, 왠지는 잘 모르겠네"


부끄러웠다. 이걸 왜 하는지, 이게 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지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단순히 당황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왜 필사를 하는지 논리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경험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그게 도움이 되는 걸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은 분명 필사를 통해 뼈대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관성적으로 필사를 했지만 그게 어떤 이유로 도움이 되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왜 필사를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할 수 있고 나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했다.


글이란 무엇일까. 글쓰기라는 것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제된 언어란 여러 번 생각한 단어와 수 차례 고민한 문장을 말한다. 글이라는 것은 그렇게 정제된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의 아름다운 연결이다. 글쓰기를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오랜 시간 살피고 그걸 언어라는 수단으로 드러내야 한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는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나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면 무언가에 대해 그렇게 '긴 호흡'으로 생각하는 일은 드물다. 단지 순간순간의 단상이나 감각을 가지고 이야기할 뿐 무언가에 대해 논리 정연하게 생각할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스티븐 킹도 이에 동의한다. 책을 읽는 건 누군가가 오래 고민하고 여러 번 정제하여 만든 생각의 덩어리를 간접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가난한 노동자의 삶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매일 달리기를 하는 것과 소설을 쓰는 것은 왜 비슷한 일인지,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과 타인에게 감사하는 것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독자는 비로소 책을 읽고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다. 거기서 얻는 새로운 통찰로 독자는 자신의 생각을 깨칠 수 있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 그렇게 깊어지고 넓어지는 생각들을 잘 매듭 하면 또 다른 생각과 논리를 만들 수 있다. 그것들을 언어라는 수단으로 정제하면 그게 바로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필사는 왜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손도 아프고 시간도 많이 드는 데 책을 조금 더 읽지 왜 필사를 하는 거냐, 에 대해서 이제부터 이야기하려고 한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무엇을 읽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무슨 문장을 읽었는지, 앞선 페이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인공의 친구가 태석이었는지 건석이었는지 앞장을 넘겨봐야 알 때도 있다. 뭔가 이상한 것 같아 가만히 보면 지나간 곳을 한번 더 읽고 있을 때도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도 뭘 읽었는지를 몰라 씁쓸한 마음일 때가 많다. 이게 성격이 급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건지, 그냥 눈으로만 읽는 독서는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애써 큰돈을 들여 헬스장에 등록하고도 기구를 쓸 줄 몰라 깨작깨작 팔 굽혀 펴기만 하는 느낌이랄까, 뭔가 씁쓸한 맛이 있다.


반면에 필사는 고강도의 독서다. 필사를 하면 한 문장을 적어도 네 번은 읽을 수 있다. 처음 한번 문장을 읽고, 펜을 종이에 대면서 한번 더 읽는다. 손으로 따라 쓰면서 또 읽고 문장이 끝날 때까지 한번 더 읽는다. 그렇게 최소 네 번은 읽을 수 있고 어떨 때는 더 많이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왜 이런 문장으로 그걸 표현했을까,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했을까, 이 생각을 저 생각과 어떻게 연결시켰을까, 글이 왜 이렇게 잘 읽히지, 이 단어는 여기에 어울리나, 더 괜찮은 단어는 없을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한다. 이러다 보면 작가가 어떻게 글을 썼는지 복기해 볼 수 있다. 그런 되새김질은 곧 작가와의 대화이며 심도 있는 토론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고 그의 사상과 언어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따라 쓰면서 그의 능숙한 언어표현을 내 안에 받아들일 수 있다.


운동을 배울 때를 생각해 보자. 운동을 잘하려면 기본기 훈련이 필요하다. 그냥 해도 실력은 늘지만 기본기를 갖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 실력에서 차이가 난다. 기본기라는 건 무언가를 잘하기 위한 방법,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를 하나로 규정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기는 노하우를 배우는 일이고 기본기 훈련을 한다는 것은 그런 노하우를 몸에 익히는 일이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선 패스, 드리블, 슈팅 등의 기본기를 배워야 하고 반복적인 훈련으로 그에 어울리는 근육과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기본기를 익히면 여러 변수가 있는 실제 경기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노하우들을 발휘할 수 있다. 근데 필사도 이와 비슷하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의 글을 그대로 따라 쓰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익히고 그에 맞는 글쓰기 근육을 뇌에 새기는 것이다. 올바른 패스를 배우고, 정확한 드리블을 배우고, 효율적인 슈팅방법을 익히는 것처럼 좋은 작가들의 개성 있는 표현을 배우고, 깊이 있는 사상을 배우고, 유려한 문장을 익히는 것이다. 글쓰기 대가들의 노하우를 머리와 손에 새겨 넣는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무조건 필사를 해야 할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스티븐 킹도 그들의 책에서 필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수 없이 많은 책을 팔았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들의 글은 여러 나라의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국적도 다르고 세대도 다른 나 같은 초보 작가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그런 걸 보면 글을 잘 쓰려면 무조건 필사를 해야 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많이 읽고 많이 쓰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필사를 한다. 글쓰기는 고독한 일이기 때문이다. 방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 묵묵히 혼자 해야 하는 일이다. 출판을 하면서는 편집자 등과도 의견을 나누겠지만 애초에 글을 쓰는 것은 오로지 작가 혼자만의 일이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는 기준점이 필요하다. 선생님이라고 할까, 나의 글이, 나의 문장이, 나의 문체가, 아집으로 허우적대거나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하는 글이 되려고 할 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묘사가 지나치다고, 흔한 비유를 반복하고 있다고, 불필요한 부사가 많다고, 그렇게 내가 가는 길이 틀렸다고 알려줄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작가들의 글을 필사하는 일은 그런 역할을 해준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글쓰기에 교통 표지판의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사를 놓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필사를 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필사가 즐거워 그게 조금 힘들어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많은 책을 필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필사하는 데는 대략 이년 정도 시간이 드니 앞으로 내가 필사할 수 있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세상에 좋은 책이 많지만 그걸 모두 음미할 수 없어 (필사가 아닌 독서로 만나면 되지만 그래도) 아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없는 소중한 인연으로도 인생은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필사할 책이 몇 안 되더라도 그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그런 우리의 만남에 감사하려고 한다. 그 책들을 통해 삶과 사람에 대한 나만의 시선이 한결 더 깊어지길 바란다. 왜 필사를 하냐고, 이래서 필사를 한다(라고 말했으면 멋있었을까, 아니 조금 지루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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