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나에게, 불안한 너에게

by 추세경

환한 대낮에 블라인드 뒤에 숨은 은은함을 좋아한다. 블라인드를 비껴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은 어두운 방안을 살며시 비춘다. 형광등을 켜지 않아도 방안은 따사롭다. 고요하고, 편안하다. 설 연휴에 이틀의 연차를 붙여 주말까지 9일을 쉬게 되었다. 정신없는 일상 속에 오랜만에 가지는 휴식이 반갑다. 몸과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


연차 때면 보통 집에서 글을 쓴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의 하얀 화면에 생각을 적는다. 책 한 권 낸 적 없지만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있을 때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최근에 영국의 글작가인 '조지 오웰'에 대한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물 농장'과 '1984'라는 소설로 유명하다. 그의 칼럼을 엮은 [더 저널리스트-조지 오웰]을 읽었고 그의 사상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를 읽고 있다. 오웰은 쉽고 명료한 문체로 글을 썼다. 칼럼, 소설, 에세이, 평론 등 글쓰기 분야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생에 걸쳐 글을 썼다.


연휴에 혼자 시간을 보내면 문득 불안해질 때가 있다. 논리적이라기 보단 감정적이고 예상하기 어려운 충동적인 감정이다. 불안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인생이 망가질 것 같은 느낌이다.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비극 중에 하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걸 바라지만 그걸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일류대는 가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을 수 있다. 취직할 능력은 없는데 막노동은 자기 수준에 안 맞아 보인다. 부자는 되고 싶은데 일은 하기 싫고 연애를 꿈꾸지만 집 밖은 나가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무력해진다. 박탈감이 들고 자신의 운명을 탓하기도 한다. 꿈을 줄이거나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데 이도 저도 하지 않는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된다.


다중지능 이론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가 제시한 지능 이론이다. '인간의 지능은 서로 독립적이며 서로 다른 9가지 유형의 지능으로 구성된다'는 이론이다. 언어, 논리수학, 공간, 음악, 운동, 대인관계 등 여러 가지 지능이 있다. 그중 '개인 내적 지능'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는 능력이다. 스스로의 성격이나 성향, 신념이나 기분 등을 성찰하는 지능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지능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할 사람이었고 강자보다는 약한 자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돈보다는 꿈을 좇고 경쟁보다는 사랑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과 싸워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그런 기대가 하나씩 사라졌다. 로는 불의 앞에서도 눈을 감았고 돈 앞에서 작아지는 때도 많았다. 지인의 성공에 배 아파했고 남들보다 앞서야만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시기도 하고 질투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욕망과 충동에 휩싸이는 보통의 인간이었다.


미래가 불안한 이유는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이다. 등산으로 따지면 산의 초입을 걷고 있는데 눈은 자꾸 정상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정상에 가려면 한참인데 벌써부터 어깨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조급한 마음에 산 위를 바라보지만 갈길이 멀어 한숨이 나온다. 빨리 도착해서 산 밑을 바라보고 싶은데 몸은 힘들고 마음은 급하다. 그러니 막막하고 불안한 것이다.


꿈을 꾼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어려운 현실에서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고 그걸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두 손 모아 손뼉 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현재를 잊은 막연한 꿈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오늘의 일상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꿈은 되려 일상을 짓누르는 무게가 될 수 있다. 쉬는 날 불현듯 불안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꿈꾸는 미래는 크고 높은데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 그 거리가 너무도 멀어 보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의미가 있는지 이렇게 산다고 내 인생이 변하기는 할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잘못된 방향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선 어떤 하루를 보내야 하고 행복한 인생을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의 내 모습과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를 점검해보았다. 결국 답은 같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사람들을 만나 정을 나누는 것, 꾸준히 운동하고 깊은 잠을 자는 것, 자연을 느끼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이게 하루하루 내가 해야 할 일들이었다. 이런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꿈과 현실은 조금 멀지만 계속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불안은 한 여름 소나기처럼 때때로 마음에 떨어진다. 그럴 때는 막연한 미래에서 시선을 거두고 지금의 나를 바라보려고 한다.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불안해하지 말자. 조급한 마음을 줄이고 오늘의 발걸음에 집중하자. 불안은 미래에 있지만 행복은 현재에 있고 우리는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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