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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Mar 05. 2023

과묵해도 괜찮아

말 수가 적은 편이다. 사무실에서는 사적인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팀원들과 점심을 먹을 때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물론 여자친구나 편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말이 많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말이 없는 사람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낯선 이들과의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색하지 않으려면 말이 많아야 하는데 화제를 고르고 대화 거리를 찾는 건 그 자체로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말이 없는 이유는 진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하는 생각들이 일상적인 대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왜 사는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 행복은 무엇인지, 불안하고 외로울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축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그런 생각들이다. 철학적인 생각들이 머리 한편을 채우고 특정 관심사에 대한 생각들이 나머지 머리를 채운다. 입 밖으로 발산되기보다는 마음 깊이 침잠하는 생각들이다.


말이라는 것은 결국 생각의 드러남이다. 진지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일상적인 대화에 필요한 신변잡기 적인 일들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오늘 날씨가 좋은지 나쁜지, 회사 근처의 맛집은 어딘지, 요새는 어떤 연예인이 유명한지,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다. 스마트 폰이 있는 이상 아예 모를 수는 없지만 그게 어떤지 애써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누가 어떤 맛집이 맛있다고 하면 '아~ 그렇군요...' 하는 식의 반응 밖에 하지 못한다. 사회생활을 위해 애써 공감도 하고 더 크게 반응도 할 수 있지만 그건 그저 사회생활을 위한 하나의 기술에 불과하다. 진심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너무 진지한 거 아니야,라고 하면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진지함을 금기시하는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향이고, 나 역시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그런 내 모습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고 그중에는 나 같이 맨날 진지한 생각만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주기적으로 신점을 보는 사람도 있고 일상적으로 매운 음식만 찾는 사람도 있듯이 나처럼 진지한 생각만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진지한 생각들을 모으면 글을 쓸 수도 있고 그런 덕분에 글작가도 될 수 있다. 진지하고 과묵한 성향이 일상에서는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그게 작가가 되기 위한 하나의 소양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인생에서는 모든 걸 가질 수는 없고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일이 나를 위한 길임을 알고 있다.


어려서는 말수가 적어서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어느 모임을 가든 화제를 주도하며 중심에 서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는 한 공간에서 생활하니 그런 게 적었는데 대학이나 사회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했다. 그런 순간순간에 대화를 이끄는 유머러스한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비교적 과묵한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은 되고 싶었고 그런 내 욕심과 그렇지 못한 나의 성향 사이, 그 괴리에서 오는 열등감에 괴로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는 사람들은 듣는 것보다는 말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귀가 두 개고 입은 하나'인 이유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고, 내가 주장하는 바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은 자꾸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잘 들어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관심을 줘야 하는 사람보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관심의 기본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이제는 화제를 주도하는 달변가보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인다.


예전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잘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관계를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경청하고, 공감하고, 그걸 바탕으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도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는다. 잠깐 유행했다 사라진 대왕 카스테라 가게처럼 어느새 잊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시간을 이어가는 진중한 관계가 되려면 입이 아닌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 관계에서 중요한 건 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좋은 대화는 서로가 서로에게 경청하는 대화이다. 그런 대화에는 사람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는 재미있는 드라마처럼 그런 대화를 하다 보면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리고는 다음에 또 보자고 약속한다. 오늘 정말 재미있었다고, 다음에도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누자고 약속한다. 그게 유머 있는 대화였든 진지한 얘기였든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경청하는 대화를 좋아한다. 그렇게 관계를 이어간다.


두 번째로 깨달은 건 이런 것이다. 세상에는 나와 어울리는 사람도 있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걔 중에는 같이 있는 게 편하고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해도 불편한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인지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알 수 있다.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나와 안 맞는 사람은 어떤 노력을 해도 친해지기 쉽지 않다.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편한 사람보다는 친해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소개팅을 많이 해봤다. 근데 소개팅도 결국은 둘 중에 하나였다. 내가 상대방을 마음에 들어 하든지 아니면 상대방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든지, 그 둘 중에 하나였다. 서로가 둘 다 마음에 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처음 만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그걸 몰랐을 때는 나에게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도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괜스런 유머를 던지거나 상대방이 좋아하는 취미나 음악에 대해 적극적인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나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게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걸 깨달은 뒤로는 소개팅 자리가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마음에 들 사람은 마음에 들고 그게 아닌 사람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궁합은 소개팅뿐 아니라 인간관계 전반에도 마찬가지다. 친해질 사람은 친해지고 아닐 사람은 아닌 것이다. 맞지 않는 인연을 붙잡고 살기에 인생은 그다지 길지 않다.


그렇다고 인간관계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그 관계가 끝까지 저절로 이어질 거라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나와 잘 맞는 사람도 결국은 나와 다른 점이 있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게 사람인데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건 불가능하다. 나 역시 나만의 결함을 가지고 있고 그 역시 그만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인간관계고 그게 어려운 이유로 수많은 갈등이 빚어진다. 유교사회에서는 부부유별, 붕우유신, 부자유친 등을 가르친다. 부부간에, 친구 간에, 그리고 부모자식 간에 믿음과 신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교과서적이지도 않고 그만큼 도덕적이지도 않다. 아끼는 만큼 집착하는 게 사람이고 믿는 만큼 상처 주는 게 사람이다. 사랑할수록 서운해하기도 한다. 관계가 어려운 건 나이가 들 수록 고집이 더 세지기 때문이다. 생활 습관이나 가지고 있는 철학,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점점 굳어진다.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조금은 과묵한 성향이다. 그게 때때로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사회생활이 힘들다거나 인간관계가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묵한 게 단점일 때도 있지만 과묵한 게 장점인 경우도 많다. 앞으로의 숙제는 말수를 늘리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를 주도할 유머를 배우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존재를 이해하는 일, 그럴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넓히는 일이다. 나의 진지한 얘기를 경청해 줄 누군가를 만나 그의 속얘기를 들어주며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공감해 가며 사는 것.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하루하루의 인연을 쌓아가는 것. 그게 앞으로의 숙제이다. 그러니 조금은 진지해도 괜찮다. 조금은 과묵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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