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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Apr 17. 2021

자꾸 죄송한, 사무실의 남자

회사를 그만두기가 쉽나


먹고사는 건 삶에서 가장 기본이고 생계를 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한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곳이라 누구도 쉽게 회사를 그만두기는 어렵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출근길 지하철도 참아야 하고 상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불편하고 힘든 것보다, 막말로 받는 스트레스 보다, 우리에겐 월급이 더 중요하다. 애초에 집이 부자인 사람이면 조금 다르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먹고살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

 

하지만 일주일에 52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다 보면 회사는 우리에게 밥벌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서 거주지를 선정하기도 하고, 해외 법인에 발령이라도 나면 외국에서 자녀를 키워야 한다. 회사 일이 누군가에게는 커리어의 전부가 될 수 있고,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직장의 동료들이 때로는 인생의 동료들이 될 수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게 회사라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다 보면 일이 일로만 끝나지가 않는다. 한마디로, 회사 생활은 개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자존감이 낮아질 일이 많다. 상사나 동료에게 무시를 받을 때도 있고 회사의 방침이나 이익에 따라 개인의 존재가 희미해질 때도 있다. 노력 대비 성과가 전혀 없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대신해서 책임져야 할 때도 있다. 자존감이라는 건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 효능감'과 스스로를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믿는 '자기 존중감'으로 나뉘는데 회사에서는 두 가지 모두를 위협받기 쉽다. 회사 생활을 통해 자신감을 찾고 인생의 활력을 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보다는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잘하면 본전이랄까, 자존감을 위협하는 회사의 여러 요소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회사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어려웠던 부분은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이었다. 자료 요청, 작업 지시, 샘플 송부 요청, 샘플 제작 요청 등 매일이 협조의 연속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할 바에는 조금 힘들어도 내가 하는 게 낫지, 라는 식으로 영차영차 살아왔는데 회사라는 조직에서는 협조를 구하는 게 일상이었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누군가에게 협조를 구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줘야 돌아가는 구조였다.


하지만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는 성격이다 보니 협조가 필요한 일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바로바로 했지만 작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해야 하는 일은 어영부영 미루곤 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시켜야 한다는 것,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껄끄러웠다. 옆에 앉은 선배들은 전화 한 통으로 여기저기 부탁도 쉽게 하는데 나는 그게 어려웠다. 전화기에 손이 쉽게 가지 않았고 그러다 보면 일이 자꾸 늦어졌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다보니 자연히 나자꾸 죄송해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죄송한데 ~ 좀 해주세요..

죄송한데 ~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죄송한데 ~ 좀 알려주세요...

~좀 부탁드리려고요. 죄송합니다...

  

누군가에게 협조를 구할 때마다 죄송하다는 말 먼저 앞선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죄송한 적은 별로 없었다.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협조를 구할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아닐 때가 더 많았다. 죄송하다는 말은 부탁하는 게 불편해서 덧붙이는 하나의 수사에 불과했다. 이렇게 말을 해야 상대방이 협조를 해주지 않을까, 그래야 어렵지 않게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당신에게 죄송해하면서 부탁을 하니 좀 들어달라, 협조를 해달라, 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내 모습이 못나보였다. 회사의 업무는 협업으로 진행되는 게 당연한데 나는 죄송하다는 표현으로 스스로를 죄인 취급. 일을 하다 보면 협조를 요청하는 건 당연하고 그러지 않으면 애초에 일을 할 수 없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조금 더 당당하게 행동하면 되는데 괜히 혼자 힘들어하며 스스로를 하하고 있었다. 이건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나 자신에게 모두 거짓말을 하는 일이었고 그런 언어 습관은 스스로의 자존감도 낮추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내 앞에 앉아 있던 선배, 고졸이기 때문에 나 보다 직급은 낮지만 회사 생활은 20년을 더 하신 분에게 뭔가를 물어볼 일이 있었다.

 

'선배님, 죄송하지만 이것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라는 한 마디에 그분은 친절하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다. 그녀의 그런 태도에 물어보고 싶은 게 더 많아진 나는

 

'죄송한데 한 가지만 더 여쭤볼 수 있을까요?'

'진짜 죄송한데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돼요?'

 

라고 했고, 그런 나에게 선배는

 

'일하는 건데 뭐가 죄송해'

 

라고 하셨다.

 

자존감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자존감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그 모든 순간순간이 우리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언어 습관도 자존감에 중요한데, 나처럼 자꾸 스스로를 비하하는 처세 방법은 자존감에 좋을 수가 없다. 내가 상대방보다 비교적 낮은 위치에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관계를 맺다 보면 어느새 그게 습관이 되어 자기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자기를 낮추는 일은 겸손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이 경우는 겸손과는 다르다. 겸손은 상대방을 존중해주면서 스스로를 낮추는 일인데 나의 경우는 그저 하나의 처세술에 불과했다. 부탁할 때 느껴지는 괜한 불편함을 없애려고 시작된 일이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별개의 문제였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많았고 때로는 존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구분 없이 항상 낮은 위치에서 관계를 맺으려고 했고 그렇게 해야 나라는 존재가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만 죄송하고 싶다. 일은 일대로 당당하게 하고 관계는 관계대로 편하게 맺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관계에서 필요한 건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지 불필요한 자기 낮춤이 아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결하면 좋겠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회사라는 조직에서 생활하는 이상 그에 맞는 삶의 방법이 필요하다. 내 불편함을 감추고자 진심 없는 수사로 상대방을 속이고 나를 낮추기보다는 조금 더 당당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일은 일대로 하고 관계는 관계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첫 번째는 나도 상대방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회사는 각자의 역할이 나눠진 곳이고 회사에서 일하는 이상 함께 일하는 관계자 역시 나를 필요로 한다. 내가 협조를 요청할 때도 있지만 그 반대의 순간도 다. 나만 항상 뭔가를 요구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내가 회사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협조를 요청할 때 그게 불편했던 이유는 그게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꾸 누군가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상대방은 그런 나를 좋게 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협조를 구하는 이유는 그저 맡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나 좋자고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해주는 협조는 그가 해야 할 마땅한 업무라는 것이다. 내가 갑질을 한다거나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닌 이상 공적으로 업무를 주고받는 것이지 그에게 내가 인간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일은 없다. 그 역시 맡은 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분명 나라는 존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업무 하는 동안 스스로를 죄송한 사람으로 만들다 보면 회사 밖에서도 자꾸 죄송해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인식을 바탕으로 이제는 조금 바뀌고 싶다. '그만 죄송할 것', 회사 생활의 작은 목표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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