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했던 해에 운전면허를 땄다. 졸업식이 있던 겨울이었고, 입대 전의 마지막 겨울이었다. 수강료를 내고 운전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은 마침 모교였던 고등학교 옆에 있었다. 등록하고 첫날은 기초 이론을 배웠고, 며칠 뒤에 필기시험을 쳤다. 그 뒤로는 기능 조작과 도로 주행을 배웠다. 얼마 뒤에 실기 시험을 봤지만 아쉽게도 떨어졌다. 기어를 잘못 넣어 시동을 꺼버린 것이다. 연습을 몇 번 더하고 두 번째 시험을 봤다. 그때는 다행히 붙을 수 있었다. 그렇게 스물여섯에 운전면허를 따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한 건 회사에 입사한 후였다. 면허를 따고는 3년간 한 번도 운전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장롱 면허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운전을 해야 했다. 우리 회사는 섬유를 파는 회사였고 원단을 만드는 편직 공장이 우리의 고객이었다. 나의 직무는 그런 고객들이 우리 실을 잘 쓰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공장으로 외근을 가야 했고, 포천이나 양주, 대구나 구미 등의 지방 도시로 외근을 나가야 했다. 운전이 필수였다. 그걸 위해 사설 학원에서 운전 연수를 받았고 회사 선배들이 연수를 시켜주기도 했다. 그러다 초기에는 선배들과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다. 갈 때는 선배가 하고 올 때는 내가 하는 식이었다.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됐지만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운전을 배웠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혼자 외근을 가게 된 것이다. 시작부터 문제였다. 회사 주차장은 지하 5층까지 있는데 우리 팀은 주로 지하 5층에 주차를 했다. 하지만 층을 올라가는 경사로가 너무 좁았다. 원래는 2차로로 만들어놨지만 사실상 한쪽 차로는 막혀 있었다. 코너의 벽면에는 늘 다른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결국 오르막 길은 1차로에 불과했고 초보 운전자에게는 어려운 길이었다. 게다가 팀에서 쓰는 차는 승합차였다. 작은 차로도 어려운 코너를 승합차로 돌아야 했다.
처음 외근을 갔던 그날,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데 30분이 걸렸다. 코너를 돌 때면 차에서 내려 벽과 차 사이의 간격을 가늠해야 했다. 50cm 이동하고, 한번 보고, 50cm 이동하고, 한번 보고, 각도가 안 맞아 후진하고, 이런 식이었다. 한번 지나기도 힘든 길을 지하 5층에서 지하 1층까지 4번을 지나야 했다. 마음이 더 조급했던 이유는 뒤에서 오는 차들이 라이트를 비추며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낑낑 대며 차를 뺐고 몸에서는 진이 빠졌다. 사회생활은 쉬운 게 아니었다.
나에게 운전을 하는 건 어른이 되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아빠 혼자서 운전을 했다. 아빠는 길눈이 밝았고 사고를 낸 적도 없었다. 명절에는 새벽 두세 시에 출발해 고향에 내려가던 아빠였다. 가족들이 차에서 잠이 들어도 아빠는 혼자서 밤길을 달렸다. 어릴 때야 그게 당연한 줄 알았지만 운전을 하고 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게 힘들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난폭 운전 차량에겐 욕을 하기도 했고 차가 밀릴 때면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가족들을 태우는 게 힘들다고는 일절 말한 적이 없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아빠만 운전을 하는 게 뭔가 미안했고 그런 이유로 언젠가부터는 조수석에 앉아 아빠의 말동무를 했다. 그걸 보고 자라온 나에게 운전은 곧 어른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회사 주차장을 오가는 게 힘들지 않다. 처음 1년은 꽤나 힘들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익숙해졌다. 감이 생겼다고 할까, 차와 내가 이어진 느낌이다. 나의 신경망이 차까지 이어진 기분. 직접 손을 뻗어 나와 사물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듯 이제는 차가 지나는 공간을 감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그건 당연한 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첫 외근의 낑낑 거림을 기억하는 나는 그게 신기하다.
이제는 운전에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사이드 미러를 의식해서 봐야 했고 엑셀과 브레이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핸들 돌리는 각도를 연구했고 내비게이션을 잘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할 만 해졌다. 처음 컴퓨터 타자를 배울 때는 자판의 위치를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 그대로) 눈을 감고도 타자를 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의식을 집중하지 않아도 능숙하게 운전을 할 수 있다. 기계적으로 사이드미러를 확인하고 직관적으로 핸들을 돌린다. 차로 변경이나 속도 변화에 어려움이 없다. 네비를 헷갈리는 일도 별로 없다.
물론 운전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다. 큰 도로를 운전할 때면 사고 난 차량들을 종종 마주친다. 2021년에는 20만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3천 명이 사망했고 30만 명이 다쳤다. 나 역시 그중에 하나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나의 잘못이든, 상대방의 실수든, 운전은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운전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운전을 대충 한다는 말은 아니다. 조심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로 하고 있다. 핸들은 두 손으로 잡으려고 노력하고, 졸릴 때는 반드시 쉬려고 한다. 과속도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운전을 하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의식의 흐름이랄까, 생각의 실타래가 풀린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인과도 없다. 어떤 서사도 없다. 내가 생각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랄까. 무의식에 다가서는 느낌이다.
엄마는 오늘 행복할까.
아빠는 오늘 평안할까.
할머니는? 할머니는 산책을 잘했을까.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글은 언제까지 쓸 수 있지.
내 글은 괜찮은 글인가, 아니, 별로인가?
여자친구와의 시간에 감사하다.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뭘 조심해야 하지?
친구의 농담을 떠올린다.
내가 한 농담을 회한다.
나는 행복할까.
축구는 언제까지 할 수 있지.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재미는 있는데......
생각의 실타래는 끊임없이 풀린다.
어른이 된 이상 운전대를 놓을 수는 없다. 이제 조수석에 타는 일보다는 운전석에 앉는 일이 더 많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집에서도 그렇다. 다행인 건 운전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속도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드라이브가 취미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운전을 좋아한다. 변속과 코너링을 하며 교통이라는 흐름 속에 나를 맡기는 일, 그걸 좋아한다.
핸들을 돌리고 액셀을 밟는다. 사이드 미러를 보고 깜빡이를 켠다. 마음 밑바닥의 불안을 더듬는다. 가슴 저 편의 희망을 느낀다. 강변북로를 지나며 지는 해를 바라본다. 한강 물에 비치는 빨간 노을이 아름답다. 아니, 쓸쓸한 건가. 회사까지는 20분이 남았다. 다시 액셀을 밟는다. 내 삶은 흐르고 있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