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나가는 외근이 처음인 날이었다. 운전이 서툴러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데 삼십 분이 걸렸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이유는 날씨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맑은 가을이었고 높고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외근지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공장이었는데 국도 주변의 빨갛고 노란 단풍이 가을 햇살에 반짝였다. 이렇게 좋은 날 외근을 갈 수 있다면 참 괜찮은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빛으로 세상은 아름다웠고 고객을 만나느라 긴장도 됐지만 나름대로는 들뜬 기분으로 외근을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를 때가 있는데, 당시에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마지막 이유다.
그 후로 5년이 지났다. 며칠 전에도 외근을 가려고 차량 일지에 목적지와 출발 시간을 적고 있는데 갑자기 처음으로 외근을 나갔던 5년 전의 그날이 떠올랐다. 그게 벌써 5년 전이구나, 하며 뭐랄까, 5년 전의 그날에서 오늘로 시간이 점프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간의 시간은 텅 비어버린 느낌이랄까.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든 이유는 아마도 기억력의 한계 때문인데, 방금 읽고도 잊어버리는 책의 내용처럼 어떤 일들은 얼마 전에 겪고도 금세 기억에서 사라진다. 5년의 매일을 살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5년 전의 그날 하나였고 그래서 시간이 이동한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회사에 입사하고도 이년 정도는 마음이 어수선했다. 조직생활이 힘든 것도 아니었고 못된 상사를 만난 것도 아니었지만 회사 생활을 '계속해야 하냐'에 대한 고민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밥벌이를 하겠다고 취직은 했지만 여전히 이게 내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많았던 것이다. 사실 신입사원에게 필요한 건 열정이다.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는 신입사원에게 회사가 바라는 건 대학교 입학 환영회에서 큰 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신입생과 같은 패기, 그런 느낌의 열정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게 없었고 회사의 팀장님은(지금은 바뀌셨지만) 그런 나의 태도를 눈치채고 계셨다.
게다가 문과생이었던 내가 제조업 회사의 기술팀에서 일하게 됐으니 일을 배우기도 쉽지 않았다. 나 말고는 모두 공대생이었고 회사 안의 언어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루는 팀에서 주관하는 회의가 있었고 연구소와 공장이 모두 참여하는 자리였는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다들 한국말을 하는데도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모르는 용어로만 대화를 했고 논리의 흐름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수능이나 토익에 나오는 영어 듣기 시험처럼 음성은 들려도 그게 뭔지 모르겠는 기분을 모국어인 한국어를 들으면서 느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은 마음을 잡고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적어도 근무하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야근은 안 하려고 하지만 회사에 있는 오전 여덟 시 반부터 오후 다섯 시 반까지는 최대한 집중해서 일을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9시간씩 5일을 보내야 하는 회사에서의 시간, 그 하루하루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런 부피감 있는 시간을 나만의 꿈(글쓰기)을 위해 투자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나에게 더 바람직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다. 생활은 습관이 되고 그것이 쌓여 인생이 된다. 회사에서의 시간을 대충 보내다 보면 인생도 결국은 대충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바뀐 덕분에 5년이 지난 지금은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고 앞서 말한 회의에서도 나만의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입사 초기의 수동적인 태도는 결국 '용기 없음'과 '나태함'의 결과였다. 정말 글을 쓰고 싶었으면 당장 노트북을 켜서 글을 썼으면 되는데 당시에는 그조차도 하지 않았고 그걸 변명삼아 수동적으로 회사를 다녔다. 2년 차가 됐을 때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역설적으로 그때부터는 회사 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해서 회사 일을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회사 생활에도 열정이 생겼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닌다고 글을 못쓴다는 건 변명에 불과했다. 글쓰기를 하고 싶었으면 그냥 시간을 내서 '하면' 되는 것이었다. 주말이든 퇴근 이후든 '그냥' 쓰면 되는 것이었다.
시간 이동을 경험한 차량 일지, 그 앞에서 한번 더 깨달은 건 결국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꿈을 핑계 삼던 신입사원이 마음을 고쳐 먹으니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미숙하던 운전은 일상이 되었고 어렵던 업무에도 적응을 마쳤다. 동물원의 늙은 원숭이처럼 흐리멍덩한 눈으로 꿈만 바라보던 작가 지망생은 어느새 100편이 넘는 글을 썼고 그중에서 몇 편을 모아 책을 내기도 했다. 열심히 보낸 하루하루에 시간의 부피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오늘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건 뭔가를 노력한다고 해서 곧바로 성과를 보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열심히 산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오늘 하루 야근을 한다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티브이만 보는 하루를 보내나 1분 1초를 아껴 쓰는 하루를 보내나 당장의 인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걸 아는 누군가는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며 자신의 삶을 자조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방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변화와 성장을 바란다면 조금 더 느긋한 태도가 필요하다. 당장의 변화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남의 군생활을 기다리는 듯 여유로운 자세로 기다려야 한다. 하루하루에는 최선을 다하되 그에 대한 성과에는 관심을 끄고 살다 보면 어느새 훌쩍 성장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전역하는 날이 반드시 있다고 믿듯 성장의 순간도 분명히 있다고 믿고 그렇게 지금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운동회 날 찾아오는 소나기처럼 불현듯 나타난 불행으로 삶이 흔들릴 때도 많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 역경을 극복하는 힘도 결국은 일상의 체력에서 온다고 믿는다.
나에게 소중한 건 현재다. 행복했던 과거도 아니고 희망찬 미래도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간, 이 감각, 그게 소중하다. 지금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을 이겨낼 수 있다. 그렇게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 하릴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나만의 의미를 남기는 것, 어느새 회의 시간이 익숙해졌듯, 어느새 한 권의 책을 냈듯, 그렇게 내게 남는 것들에 감사하고 싶다. 오늘을 살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