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1월 15일에 발행했던 <친절 머리 나는 하루>를 퇴고하여 재 발행하는 글입니다.
친절의 기본값이 높은 사람이다. 비교적 친절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대화를 할 때도 충고나 조언보다는 경청을 해주는 편이다. 상대방의 말을 공감해 주고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적절한 타이밍에 전할 수 있다. 조금 틀린 말을 해도 감정이 상할 것 같으면 굳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하루는 26시간이야'라고 하면 '아니야 24시간이야'라고 말하기보다는, '아… 그런가?' 하며 넘어간다는 것이다. MBTI 성격검사를 해도 그런 성격으로 나온다. 공감을 잘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사람, 사람들은 나를 친절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러는 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건 아니건, 일단 상대방은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회사로 따지면 적을 두지 않는 편이라고 할까,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겠지만 나는 조금 강박적으로 그걸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밉보이는 것은 내가 가진 처세 능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적을 만들지 않는 게 처세의 성과지표라면 그것 또한 잘하고 싶다는 것이다. 승부욕, 이라고 해야 될까.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다름에 대한 이해'이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때로 그걸 혐오하기도 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나 또한 상대방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고 나 역시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되도록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남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한다. 친절의 기본값이 높은 편이다.
그런 반면 마음은 잘 열지 않는다. 겉으로는 그래도 속으로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상냥하게 웃기도 하고 듣기 좋은 말도 더러 하지만 속은 잘 보여주지 않고 쉽게 친해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가까워지지 않는 이상 애써 인연을 만들지는 않는다. 원래도 남에게는 관심이 없고 마음을 열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다. 게다가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은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게 귀찮기도 하다. 이미 있던 관계도 정리하는 나이에 굳이 새로운 인연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강원도 인제에서 군 생활을 할 때였다. 본부 중대장으로 30명 정도의 병사들을 관리했다. 관리라는 것은 병사들이 먹고, 입고, 자고, 훈련받는 등의 일상을 통솔하는 일이다. 그런 역할을 하면서도 그들에게 욕을 하거나 얼차려를 준 적은 없다. 부대 운영에 필요한 지시와 명령은 내렸지만 인간적으로 불합리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같은 건물에는 다른 본부 중대가 있었는데 그 부대의 중대장님은 나와는 스타일이 달랐다. 병사들에게 장난도 치고 때로는 욕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병사들은 그를 좋아했다. 내 병사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그의 병사들이 더 많이 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질투를 한 건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왜 인기가 많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나는 병사들한테 욕도 안 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데 왜 가끔은 장난도 치고 욕도하는 그가 더 인기가 많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 내린 결론은 이랬다. 나는 친절했지만 진심으로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는 않았다. 그들이 군에서 잘 적응하길 바랐지만 그 이상으로는 정을 주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친절은 직책에 대한 책임감과 관리자로서의 내 군생활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온 것이다. 그들에게도 내가 가진 친절의 기본값 이상으로는 정을 주지 않았다. 그들을 진짜 동생처럼 여겼다면 그들도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내가 그러지 않았고 그러니 그들도 나에게 거리감을 느꼈던 것이다. 다른 중대장님은 병사들에게 더 많은 정을 주고 있었다. 그게 그와 나의 차이였다.
사람은 진심을 알아챈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마음을 주는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느낀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마음속의 진실을 구분할 수 있다. 기교만 뛰어난 노래와 진심을 담은 노래가 관객들에게 주는 감동이 다르듯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지 아닌지를 감각적으로 알아챈다.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진심이라는 것을 그 후로 깨달을 수 있었다. 병사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그들이 먼저 다가오기를 바랐던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이중인격자처럼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험담만 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다만 다수에게 많은 정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향에 대한 이야긴데, 나는 내가 가진 에너지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에너지를 발산하기보다는 수렴시키는 사람이다. 나를 이해하고, 나를 표현하고, 그렇게 내면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에너지가 소비되고, 혼자 있을 때는 에너지가 충전된다. 외로운 건 싫지만 그렇다고 넓은 인맥은 필요하지 않다. 좋아하는 소수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부터 10년 이상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고 그들과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섬세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누군가에게 친절할 수 있는 건 그만큼 그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대방에 맞게 나의 행동을 '통제'하는 일이다. 친절의 기본값을 높게 하는 건 그 자체로 피곤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타인과의 소통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듯 잠옷 바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회사에서 미팅을 하듯 머리도 감고, 옷도 신경 쓰고, 그렇게 긴장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나 같은 종류의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사람이 대인관계를 잘해야지, 인맥도 넓고 그래야 성공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성공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 간에 일이라 결국 대인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의 평가가 쌓여 성공에 영향을 준다고 말이다. 그러니 대인관계를 잘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야 한다고 말이다. 나도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어려서는 많은 사람 속에 스스로를 던져 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고 그런 모임에서 리더 역할을 자처했다. 봉사 동아리, 축구 동아리, 학군단 ROTC, 군대 등에서 모임장을 맡았다. 조직의 목표에 맞게 구성원들을 이끌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들을 조율했다. 공동체로서 하나가 될 수 있게 노력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그때 경험한 여러 가지 일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면서 대인관계의 핵심은 소통능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의 주장을 들어주고, 혹시 그와 다를 수도 있는 나의 입장을 전달하고, 그러면서도 일을 진행시키고, 그에 따르는 갈등을 조율할 수 있는 것. 그게 중요했다. 대인관계를 잘하는 건 인맥이 넓은지 좁은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소통을 잘하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성공하기 위해선 인맥이 아니라 실력이 있어야 한다. 협상을 잘하든, 기계를 완벽하게 이해하든, 전 세계의 맛집을 꿰고 있든, 한 분야의 전문가여야 한다. 거기에 소통능력이 함께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인맥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인맥이 넓어야 성공하는 게 아니라 능력이 있으면 인맥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때문에 이제는 인맥이 넓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차라리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타인과 관계하는 나'에 대해 돌아보면 나라는 사람은 관계에 '섬세한' 사람이고 나와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게 한 명이 됐든 두 명이 됐든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게 맞는 사람이 있고 그걸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니 다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나에 대해 그러면 안 된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앞으로는 친절의 기본값을 줄이며 살고 싶다. 친절한 태도에는 가식이 섞이기 마련이고, 그 마음에는 '나는 정을 안 줘도 너는 줬으면 좋겠어'라는 심보가 자리한다. 그건 상대방과 나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고, 진심이 통하는 사람 사이에서 그런 이기심은 결국 틀통이 나기 마련이다.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모두 찝찝한 일이다. 그렇다고 예의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건 아니다. 반사회적인 인물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의 시선에 대한 과도한 자의식을 줄이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다는 말이다. 너와 나 사이에 명확히 선을 긋는 태도, 이제 속으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겉으로도 그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 더 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진심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여 조금 불친절한 사람이 되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