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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없는 사회

by 추세경

23년 1월 30일에 발행했던 <성공 없는 사회>를 퇴고하여 재 발행하는 글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성공의 이야기가 있다. 집에서 소를 훔치고 고향을 떠나 국내 최고의 대기업을 일군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 평발을 가지고도 영국 축구 리그에서 성공하여 해외 축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박지성 선수의 이야기, 환풍기 수리공을 하면서도 노래의 꿈을 가지고 TV오디션에서 우승한 가수 허각의 이야기, 이처럼 성공한 사람들의 수많은 서사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해 전파는 되는데 내용은 달라도 결론은 비슷하다. 지치지 않는 노력, 불굴의 의지, 역경을 극복하는 마음, 그런 것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서사를 동경한다. 최근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대회에서 우승확률이 꼴찌였던 선수가 우승하면서 그의 인터뷰 내용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였고 그 말은 '중꺾마'라는 줄임말로 유행하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나 역시 이런 성공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내 인생에도 돌이켜보면 뿌듯하고 누군가에게 한 번쯤 자랑하고 싶은 성공의 서사들이 있다. 대학교 ROTC에서 대대장 후보생이 되었던 기억이나, 어좁이(어깨가 좁은 사람)를 벗어나려고 열심히 운동한 노력이나, 독학으로 삼수를 해서 괜찮은 대학에 갔다는 이야기 등, 몇 가지의 성공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들이 나에게 소중한 이유는 '노력하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도 좋은 작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아가 이런 나의 노력이 언젠가는 혼자만의 은밀한 성공이 아니라 내로라하는 더 큰 성공의 서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관심 분야만 보여주는 알고리즘 기능으로 나의 SNS 에는 성공을 이야기하는 영상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영상의 내용들은 대부분이 비슷하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이 악물고 노력해 본 적이 있냐고, 힘들어도 참고 버티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다. 강연자들은 그러니 너도 할 수 있어, 열심히 살아야 해, 최선을 다해,라고 말한다.


그런 걸 계속 보다 보면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든다. 성공의 비결이 그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것이라면 왜 누군가는 성공을 하고 누군가는 그러지 못할까,라는 것이다.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왜 누군가는 돈도 많이 벌고 유명세에 으스대며 사는 데 왜 누군가는 외출조차 두려워 집에서 티브이와 인터넷에 의존해 밖에도 나오지 못할까,라는 의문이다. 세상에 널린 성공의 교과서가 왜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되고 왜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되지 못할까,라는 것이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장혜영'이라는 작가의 <어른이 되면>이라는 에세이다. 책의 내용은 저자인 장혜영이 중증 발달 장애인 동생인 '혜정'을 시설 밖으로 데려와 같이 사는 내용이다. 혜정은 열세 살부터 18년 동안 장애인 보호 시설에서 생활했지만 언니가 그녀를 사회에 데리고 나온 것이다. 혜영은 그간의 평범했던 일상을 포기하고 동생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책에는 혜영이 느끼는 여러 개인적인 감정들, 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차별에 대한 인식, 사회 복지서비스의 구조적인 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이 좋았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저자인 장혜영의 인간다움이었고, 둘째는 내 안에 새로운 세상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저자의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이런 말이다. 혜영의 결정은 멋지고 가치로운 일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과대 포장하지 않는다. 동생과 함께 생활하는 게 너무 힘들고 때로는 화도 많이 난다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은 의로운 생각 만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늘 방황하고 늘 고민하며 사는 게 인간이다. 혜영은 그렇게 내면의 갈등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그녀의 이야기에 힘을 더했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동생과 함께 하려는 마음, 그걸 단순히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혜영의 진심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부모의 손을 떠나 시설에 갇혀 산다. 나쁘게 말하면 부모에게도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내가 사회에서 보는 사람들, 회사에서, 거리에서, 또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그런 곳에서 보는 사람들은 대개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노인도 별로 없고 아픈 사람도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젊고 건강한' 일반인들이라는 말이다. 사회의 이곳저곳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 늙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데 나는 그걸 까마득히 모르고 살았다.


장애인을 마주했던 적은 성인이 되기 전이 전부였다. 초등학교 때는 특별학급이 있어 복도에서 가끔 그런 친구들을 마주쳤고, 중고등학교 때는 봉사활동으로 시설 학교에 가봤던 기억이 있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는 가끔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게 전부다. 21년도 통계에 따르면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가진 발달 장애인은 인구의 0.5% 라고 하는데 5,000만 명 인구를 계산하면 25만 명이 된다. 그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기억이 안나는 게 아니라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그 때문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하지만 우리의 사회에는 늘 있어왔던 것, 그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뜨거운 뚝배기에 손이 닿은 듯 화들짝 놀란 것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불편한 이유는 삶의 너무 일부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성공의 잣대로는 재단할 수 없는 삶도 세상에는 많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노력이라는 가치가 반드시 지상의 규율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성공의 모습은 너무도 획일적이고 너무도 일률적이라는 것, 그것을 알아야 한다. 돈을 제일 잘 벌고, 축구를 제일 잘하고, 가장 높은 관료가 되는 것 만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건 조금 불편하다. 그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하자.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때문에 어려서는 제대로 된 학창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성인이 되자 비로소 꿈이 생겼다. 안락한 가정을 만드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예쁜 딸을 낳고 그들과 함께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하는 것, 그게 그의 꿈이었다. 회사에서 구박을 받고 월급이 적어도 자신의 가정, 작고 따뜻한 그 울타리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에게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일은 힘들어도 가정에 충실한 그의 인생은 성공하지 못한 인생일까, 그런 사람에게 왜 꿈을 더 크게 꾸지 않냐고 질책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에는 운이라는 요소가 많이 개입한다. 타고나길 건물주인 사람과 가난해서 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 천성이 성실한 사람과 애초에 게으르게 태어난 사람. 가정폭력이 난무하는 집에서 자란 사람과 존재만으로도 사랑을 주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 선천적으로 몸이 아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과 장애가 없는 사람. 타고난 운과, 물려받은 기질과, 살아가는 환경의 수많은 조합으로 사람은 살아간다.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오로지 노력과 성공이라는 잣대 하나로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몇몇 사람들의 성공 서사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지독한 가난에도, 가정 폭력의 비극에도, 너는 안된다는 멸시와 조롱에도, 내로라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라면 하나에 소금을 넣어가며 하루를 버텼다는 트로트 가수 장윤정의 이야기처럼 성공의 상징이 된 사람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는 건 그 자체로 위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은 인생의 손님이지 주인이 될 수는 없다. 노력해서 성공한다는 건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만 그것들이 인생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성공의 서사보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건 너의 삶을 사랑하라는 따뜻한 전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는 진실된 위로이다. 모든 인생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침마다 회사 화장실을 반짝반짝 닦아주는 아주머니의 삶, 새벽 4시에 첫차를 타는 그녀의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 승객 모두에게 친절한 인사를 건네는 버스 기사, 노인이 탈 때는 따뜻한 목소리로 자리를 안내하고 승객이 내릴 때는 친절하게 하루를 응원해 주는, 그런 그의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 사회에서 그저 보통의 삶이라고 하는 누군가의 인생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걸 그저 평범한 인생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성공을 꿈꾸고 있다. 그게 내 마음이고 거기에는 '누구보다 더'라는 욕망도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마음을 꾸준히 당기고 있다. 핏줄 돋은 팔뚝으로 줄다리기의 줄을 당기듯 자꾸 마음을 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다고, 내 생에 깃든 행운에 감사하다고, 어쩔 수 없는 내 삶의 비극에 대해선 그 또한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싶다고, 그렇게 생이 주는 진한 향기로 내 영혼은 깊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런 내 길에 성공이 자리하면 좋겠지만 혹시 모를 비극이 찾아 온대도 나는 그런 내 삶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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