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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져서 산다는 것은

by 추세경

21년 6월에 발행했던 <이어져서 산다는 것은>을 퇴고하여 재 발행하는 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할머니와 통화를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연락을 드린다. 통화를 길게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안부를 묻는 정도다. 내가 전화를 드리면 할머니는 보통 반가워하시지만 가끔 드라마를 보다가 전화를 받으면 듣는 둥 마는 둥 금방 전화를 끊어서 그게 귀여울 때도 있다. 통화를 하면 할머니는 매번 나에게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그리고 항상 큰일이 났다고 한다.


'밥은 먹었어? 아이고~ 큰일이다, 큰일이야',라고 하신다.


내가 끼니를 챙기지 못할까 걱정하시는 것이다. 나이가 벌써 삼십 대 중반인 데도 할머니는 나를 밥을 챙겨줘야 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모습이야 많이 변했어도 먹여주고, 씻겨주고, 똥기저귀 갈아주던 그런 어린아이로 보는 것이다.


내가 취업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나이로는 이십 대 후반부터인데, 할머니는 나의 결혼을 걱정하셨다. 곧 90을 바라보는 나이라 더 늦기 전에 손자가 결혼하는 걸 보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런 말은 명절에 듣기 싫은 잔소리 1위이고 요새는 이렇게 말하면 벌금까지 내야 한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할머니의 이런 바람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자식을 결혼시키는 것은 그 시대 부모들의 당연한 책임 중에 하나였고 내가 비록 손자라 하더라도 자식 같은 마음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결혼을 바라는 건 그만큼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만큼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내가 결혼을 해야 할머니의 자식이자 나의 엄마인 첫째 딸의 마음이 편해질 거라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들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딱히 없다.


주말에도 할머니랑 통화를 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아침은 먹었냐고 물었고 내가 11시가 넘어서 아침을 먹을 거라고 했더니 '아이고~ 큰일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하는 말씀이 어려서 우리 집(할머니네 집) 옆집에 살았던 친구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유치원 때 가장 친했던 사이인데 집도 바로 옆이라 네 집이 내 집인 양 서로 왕래하며 지냈던 친구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서울로 떠난 후로는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지만 나와 달리 아직도 그곳에 사는 할머니는 이웃들의 말을 통해 친구의 소식을 듣고 있다.


할머니가 이야기 한 친구는 7살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제는 얼굴도 생각이 안 나고 같이 놀았던 기억은 비 오는 날 자동차 유리창 너머의 풍경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할머니를 통해 간간이 소식을 들었고 지난번에는 친구가 산림청의 공무원이 되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혼 소식이었다. 할머니는 그들이 부부 공무원인 게 부러웠는지 아내가 될 사람이 시청의 공무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나도 어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장가를 가라고도 하셨다. 통화가 끝나고는 뭔가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생판 남인데도 나는 그의 직업도 알고, 결혼 소식도 듣고, 심지어는 그 아내의 직업까지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은 이어져서 살아간다. 인간의 영혼이 기억의 집합이라면 나의 영혼은 많은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의 마음속에 공간을 내어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고, 추억을 나누며 살다 보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지난 주말에 결혼한 산림청의 한 공무원은 유치원생의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살고 있다. 나 역시 그의 기억 속에 어떤 하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마다 기억하는 게 다르니 그의 기억 속에는 나라는 존재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그를 기억하듯 그도 나를 기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5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내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나라는 사람은 때때로 너무도 이상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도 주고, 실수도 하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생각만 해도 불쾌해지는 사람일 수도 있다. 좋은 모습으로만 기억되면 좋겠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싱크대 밑에 쌓인 음식물 쓰레기처럼 고약한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든다.


한때는 인생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 살다 보니 자꾸 싸우고, 서로 갈등하며, 많은 순간 결국 자기만을 위해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외롭고 인생은 고달픈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게 사람이라면 인간관계라는 건 왜 필요한지, 사랑은, 우정은, 동료애는 왜 필요할까, 모두 포장된 가식이 아닌가, 라며 회의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다. 그 모든 연대의 감정이 사실은 인간의 이기심이 기반이라면 흔히들 말하는 듯 그렇게 아름다운 말들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인생이 꼭 외로운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고 그렇게 마음 한편에 다른 사람을 담고 사는 이상 혹여 인간이 정말 이기적이라 하더라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함께 나누는 수많은 시간 속에 우리가 나눈 정들은 서로의 마음에 남아 우리를 이어준다. 나의 기쁨과 슬픔이 너의 행복과 불행이 되고 너의 불안과 용기가 나의 걱정과 희망이 된다. 나를 위하는 것이 너를 위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너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남을 위해 희생도 하고, 서로 의지도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괜히 마음이 따뜻했던 이유는 우리가 이어져서 살고 있다는 실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중국 설화에서는 월하노인이 연인이 될 남녀의 운명을 점지하고 그들을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연결시켜 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인연의 실이 비단 남녀뿐 아니라 우리가 관계하는 모두에게 있다고 믿으면 때때로 외롭고 가끔은 서운해도 그래도 인생이 혼자 사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랑도 하고, 우정도 하고, 가끔은 제 멋대로만 살기도 하지만, 그렇게 아옹다옹하며 결국은 함께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시선을 조금 바꿔보려고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한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회의에서 시선을 돌려 우리 사이에 연결된 붉은 실을 바라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그러니 연대하며 살아가자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자고, 그렇게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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