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5월에 발행했던 작품을 퇴고하여 재 발행하는 글입니다.
월급은 왜 스쳐가는 걸까
건강 보험료 인상으로 4월 월급이 적게 들어왔다. 적금을 붓고 카드 값을 내고 나니 원래도 금방 사라지던 월급이 이번 달은 잠시도 머물지 않았다. 예상에 없던 경조사로 지갑에 있는 현금까지 써버렸고 모임에 가면 신용 카드를 긁고 입금을 받아야 될 상황이랄까, 이럴 때마다 카드를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그의 노예가 된 지 오래다.
올해는 주말에 겹친 공휴일이 많아 회사원들에겐 괴로운 1년이 되겠거니 했다. 현충일과 광복절 그리고 개천절까지 모두 토요일인 조금은 이상한 1년인 것이다. 그래도 4월 말에서 5월 초에 있는 근로자의 날과 부처님 오신 날, 어린이날은 쉴 수 있었고, 회사에서 어린이날 앞 뒤로도 연차를 쓰게 해 준 덕분에 운 좋게도 1주일을 쉬게 되었다. 그 기간에 여행을 계획해 놨고 현금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여행을 취소할 생각은 없었다. 돈이 부족해도 계획된 여행은 떠나야 하지 않나, 그게 직장인의 도리지, 통장 잔고보다 중요한 건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는 것이다.
여행지는 통영이었다. 콘셉트는 글쓰기 여행. 퇴근하고 틈틈이 하던 글쓰기에 지쳐 있었고 쉬는 기간 온전히 글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잠시 멈춰 앞으로의 미래, 구체적으로는 글로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밤에는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면서 낯선 이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그들 중에 나를 설레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와 함께할 새로운 미래까지 희망해 보는 완벽한 계획이었다.(계획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사실 말이 좋아 여행이지 낮 중에는 글만 쓰려고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혼자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공부할 게 있다며 같이 가겠다는 친구가 있었고, 재미없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세경이 너만 좋으면 돼"
라고 했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이런 감성적인 문구들이 이곳저곳에 새겨진 #슬로비 게스트하우스에 우리는 머물렀다. 게스트 하우스의 상징인 '슬로비'는 어린 왕자의 보아뱀을 이용해 만든 캐릭터인데 주인장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숙소 1층의 카페와 바다를 끼고 이어진 건너 편의 섬 사이로는 잔잔한 파도가 흘렀다. 파도에 비치는 오후의 햇살은 프러포즈를 받는 예비 신부의 눈동자처럼 반짝거렸다. 바다에서는 물고기가 첨벙거렸고 그 위로는 새들이 날았다. 5월의 봄냄새가 생명의 기운으로 숙소를 감싸고 있었다. 글쓰기에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녀석을 만난 건 그날 밤이었다. 피곤한 듯 핏발 선 눈동자에 덥수룩한 머리, 구레나룻은 앞으로 쏠려 눈썹에 닿을 것 같았다. 그을린 얼굴에 벌어진 어깨는 '편한 삶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녁식사에서 만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함께 여행을 간 친구와 나는 주인장이 주최하는 저녁 식사자리에 참석했다. 손님들에게 신청을 받아 음식을 차려주는 자리였는데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보통 이런 걸 '파티'라고 한다. 모두 7명이 식사를 했는데 피부가 까만 그 녀석이 우리 앞에 앉았다. 나는 90년생이고 그는 빠른 90년생이었지만 이미 사회에 나왔다는 이유로 서로 말을 놓았다. 녀석은 말이 많은 편이었고 입담이 좋아 분위기를 주도했다. 옆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면 마스크를 쓰는 척 장난을 쳤고 조금만 마셔도 취한다면서도 연거푸 잔을 비우기도 했다. 편하다랄까, 그에게 어떤 종류의 호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안 가본 곳이 없었고 못해본 것이 없었다. 남태평양의 피지에서 두 달을 살았는가 하면 로스쿨에 합격했는데도 진학하지 않았다. 사회주의를 믿으며 류시화를 좋아한다고 했고 데카르트와 니체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얘기를 여기서 왜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의 이야기로 분위기가 자꾸 무거워졌다. 대화의 주제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자기 말만 했고 그 말도 대개는 허풍같이 들렸다. 그럼에도 그는 묘하게 매력이 있었고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분위기도 좋아서 우리는 새벽 4시까지 자리를 함께 했다. 오고 가는 농담과 주고받는 진지함 속에 그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다고 했다. 최근에 나는 글공부를 위해 그 책을 필사하고 있었고 여행 간 내 가방에도 그 책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그가 이야기하니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녀석은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고 했고 나도 요새 글을 올리는 '브런치'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내 필명을 알려달라고 했고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결국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다음날 카페에서 필사를 하고 있는데 녀석이 다가와,
"나는 가난이 부끄럽지 않아"
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내 글을 읽었다는 것이다. 내 글에 달린 악플을 보고 그런 댓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내 편을 들어준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그 녀석의 눈동자를 보니 '네 마음을 열어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로 몸을 돌려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는 가난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런저런 경험이 많은 것도 가난했기 때문이고 그 덕분에 여러 가지 풍파를 이겨내며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고시원 단칸방에 살면서 그곳이 삶의 전부인 사람들, 삶의 끝에 서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기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살았고 그런 시간을 버티며 만들어낸 지금이 좋다고 했다.
"가난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신기하다",라고 내가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부유하게 자랐으면 열심히 살지 못했을 거라고, 더 나태하게 살았거나 보다 거만하게 살았을 거라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듣는데 자꾸 부끄러워졌다. 나는 현금이 없는데도 신난다며 여행을 온 상태였다. 여행 가기 전날엔 엄마가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다. 빨리 대화를 마치고 그냥 글을 쓰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에 허풍은 없을지 의심까지 하고 있었다. 그는 진심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못된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끄러웠다.
가난을 쉽게 말하기 위해 그는 얼마나 가난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살았을까, 충혈된 그의 눈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어야 했을까. 그런 그를 그저 색안경 낀 눈으로 판단한 것은 아닌지, 어쩌면 자기 말만 하는 이유가 지친 마음을 위로해 달라는 나름의 버둥거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세계 일주를 통해 그곳이 어디든 인생의 스승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라고 했지만,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마음에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 그걸 채우기 위해 누군가는 글을 쓰고 어떤 이는 노래를 부른다. 주점마다 술병이 쌓여가는 것도 그렇고 매분 매초 SNS에 자기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그렇다. 마음이 충만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처방은 누군가의 진심 어린 사랑을 받는 것이지만 그런 귀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 타고나기를 미남, 미녀인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그 녀석이 했던 말들은 그런 마음의 구멍을 채우기 위한 노력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마음이 바뀐 건 아니다. 그가 허풍쟁이라는 생각은 여전하고 그와 친구가 되라고 하면 글쎄,,,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여는 사람이 아니다. 정을 주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아까와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고 해서 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반성해야 할 건 너무 섣부르게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했다는 것이다. 부서지기도 했고, 부서지기도 쉬웠을 누군가의 인생을 너무도 쉽게 결론 내린 것이다. 인간적으로도 그러면 안 되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좋은 글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삶을, 그가 가진 이야기를, 쉽게 단정하는 게 아니라 우선은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판단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 스쳐가는 모든 인연을 소중히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떠난 뒤, 그에게 카톡을 했다.
'니 얘기를 글로 써도 돼?'
그는 알겠다고 하며 비밀을 하나 알려줬는데 말해준 이름이 가명이었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한 이야기가 본인에게 피해가 될 수 있을까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진짜 관종이네, 하며 잠깐 느낀 그의 진심이 혹시 거짓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가 자꾸 마음에 맴돌았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다던 그의 말, 그게 자꾸 마음을 건드렸다. 사람냄새 참 진하게 풍기는 녀석을 만났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