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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an 07. 2024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이유


나는 잘 떠난다. 누군가와 함께 떠나기도 하지만, 혼자 떠나는 것을 조금 더 좋아한다. 떠나는 기간이나 목적지도 각양각색이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한테 용기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누군가 나에게 잘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저는 겁도 없이 잘 떠나요"라는 답변을 드려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집이 한 곳에만 존재하는 점이 못마땅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역마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오히려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듯한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면서 살겠다는 꿈을 남들 몰래 품었다. 어쩌면 그건 아득히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떠돌이 유전자가 품은 소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성인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는데, 50개 주 가운데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도시 뉴욕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직장인이 된 후로는 뉴욕의 화려한 빛 아래 갑작스레 찾아온 폭풍 같은 어둠에 갇혀서 방황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터널의 끝자락을 지나던 어느 날, 나는 애리조나와 유타에서 붉은 암석이 이루는 대자연을 바라보다가 심장이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내 마음에서 일어난 작은 파동이 인생에서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준 촉매제가 되었던 것 같다.


꿈틀대던 그 느낌의 여파로 나는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뉴욕을 떠나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 엘에이로 이사를 갔다. 그 시점부터 나는 마음속 이끌림에 의지하며 본격적으로 여기저기로 떠나기 시작했다. 여행하는 것처럼 살거나, 사는 것처럼 여행하는 상태. 나는 그럴 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점차 깨달았다.


그러다가 근본적인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너는 왜 이리도 떠나고 싶은 거야?'

기억은 유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느 한 지점에 꼬리표를 달고 멈춰 섰다. 그래, 틀림없이 그때였다. 그때 나는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면서 살라는 최초의 울림을 들었던 것이다.




그날 엄마는 이른 오후부터 집안 청소에 정신이 없었다. 호주에 사는 아빠 친구분께서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우리 집에 놀러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아저씨가 집에 도착하셨다. 반쯤 까진 머리와 유난히 큰 눈에 날카로운 눈빛, 늘씬한 몸을 가진 분이셨다. 아빠는 평소보다 한층 키운 목소리로 아저씨를 반겼다.


엄마, 아빠, 아저씨는 저녁식사를 하고 난 후 술을 드시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조기유학이 화두에 올랐다. 그러다가 문득 아저씨께서는 부모님께 나를 호주로 유학 보낼 생각이 있냐고 물으셨다.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본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하시면서.


아저씨가 숙소로 돌아가신 후, 엄마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지원아, 호주에서 학교 다녀볼래?"

나는 주저 없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언니, 진짜야? 미쳤어? 안 무서워?"

옆에서 듣고 있던 동생이 무척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뭐가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워."


겁도 없이 조기유학을 덥석 수긍해 버리는 바람에 나는 의도치 않게 가족 모두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어린 나이에 해외 생활을 해보는 것도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영어만큼은 잔뜩 배워 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열 살의 어린 나이에 혼자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


호주 유학 D-0, 대망의 날이 다가왔다.

'게이트 넘버, 여기 적혀있는 데로 찾아가서 비행기 타는 거야.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에는 짐 찾고 나오면 끝이야. 잘 모르겠으면 그냥 사람들 가는 데로 따라가면 돼. 입국 신고서 꼭 내고, 알겠지? 입국장에 가면 아저씨 아내분께서 안내판 들고 기다리고 계실 거니까 걱정하지 마.'

가족 품을 떠나기 전 엄마가 했던 말을 되뇌며 나는 난생처음 혼자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줄을 섰다.


혼자 비행기를 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남들과 똑같이 기내식을 받아먹고, 이어폰 너머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조명을 밝혀 <아홉 살 인생>을 읽었다. 비행기는 각자의 방식으로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 승객들을 태운 채 미지의 x, y, z 축을 가로질러 시드니 공항을 향해 힘차게 날았다. 가끔 난기류로 비행기가 흔들리면 온갖 무서운 상상이 들어서 겁이 났지만, 왠지 어른이 되는 데 한 발짝 더 다가선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혼자 헤쳐나가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9시간이 흐르고, 비행기는 시드니 국제공항에 착륙을 했다. 엄마가 일러둔 대로 같은 비행기에 탄 몇몇 사람들을 뒤에서 몰래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입국장에 와 있었다. 입국장을 둘러보니 내 이름이 적힌 푯말을 들고 계시는 홈스테이 주인아주머니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공항 안에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의 언어들이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오갔다.


차를 타기 위해 출구 쪽으로 향하는 순간, 생전 들어보지 못한 기괴한 아기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홈스테이 아주머니께 물었다.

"응..? 새소리 말하는 거니?"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아주머니의 검지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을 따라가 보니 난데없이 앵무새가 나타났다. 머지않아 나는 호주에는 무지갯빛의 앵무새, 머리에 노란색 뿔 같은 게 달린 하얀 앵무새, 분홍빛깔의 앵무새 등등 다양한 종류의 앵무새들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처: https://www.reddit.com/media?url=https%3A%2F%2Fi.redd.it%2Fqvmjkbkja0c51.jpg


그 후로 나는 일상 속에서 늘 앵무새를 발견했다. 그들은 특히나 위에 사진처럼, 내가 홈스테이를 하던 집의 발코니를 심심찮게 방문하곤 했다. 한국에서는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던 앵무새들이 모습을 비출 때마다 이 현상이 참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태평양을 건너와보니 이 호주라는 세계는 내가 여태껏 경험한 세계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이 세계는 내가 경험한 딱 그만큼 내 안에서 확장되었다.


나는 곧 깨달았다. 세상에는 기꺼이 떠나야만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늘 신나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모험을 즐기는 편이긴 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인해서 계획한 것들이 와장창 무너져버리기라도 할 때면 내 정신과 마음은 온통 불안으로 가득해진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하고 넘겨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래라는 것이 원래 불확실성의 연속이긴 하지만, 길게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딛고 선 땅이 지나치게 흔들릴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정은 불확실성을 감내할 만큼, 혹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어떤 특정한 세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만큼 흥미를 자극하는 일은 결코 많지 않다. 호주 사람들은 왜 길거리를 맨발로 다니는 걸까? 뉴올리언스에서 부두교가 널리 퍼진 이유는 뭘까? 조지아(나라)에는 어쩌다가 소와 말이 지천에 깔리게 되었을까? 이 땅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일수록 나는 이 세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나를 알게 된다'라는 뻔하디 뻔한 문구. 하지만 이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여행이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외부 세계를 알아가는 것도 황홀한 일이지만, 여행이 나를 정말로 흥분하게 만드는 순간은 바로 나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직감적으로 다가오는 운 좋은 순간이 가끔씩 찾아온다.


오아후 Three tables beach


하와이에서 스노클 장비를 낀 채 몸뚱이를 물속으로 내던지던 날, 나는 생애 처음으로 바닷속 세계를 보았다. 물 밑에서 펼쳐지는 장관을 바라보면서 온몸으로 경이로움을 느끼다가 문득 내 발밑 한참 아래를 물고기들과 함께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삶이 축복과 환희로 빛나는 순간이었다.


열심히 움직이면서 살아간 덕에 삶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떠돌아다니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혹은 어떤 이유로 멈춰야 하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아마도 계속해서 이 세상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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