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

by 강나린

내 고향에는 '빠구리'라는, 성행위를 뜻하는 저급한 단어가 있었다. 주로 비행청소년들이나 성인이 되었으나 정신연령은 비행청소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은어였다. 후에 대학교에서 <방언학>이라는 강의를 수강했는데 그 교수님에 따르면 전라도 어느 지역에서는 같은 단어가 수업을 짼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전라도 사람에게 물어본 적은 없어서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 나는 초등 6학년 때 동네 보습학원에 다녔는데 그곳에 인근 다른 학교에 다니는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기서는 그냥 지영이라고 하자. 지영이는 아빠가 안 계시고 엄마랑 단둘이 살았는데 엄마는 시내에서 영세한 룸싸롱을 했다. 지영이 엄마는 새벽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낮 동안에는 늘 피곤에 절여 있었다. 가끔은 '손님'을 데리고 집에 오기도 했다. 지영이는 초등 저학년 때부터 뭐든 혼자 알아서 해야 했고 지영이 엄마는 '손님'들이랑 낮에 자주 집에 있었기 때문에 지영이를 하루 종일 학원에 보냈다.


지영이는 키가 굉장히 컸다. 초등 6학년이 학원의 어느 여선생님보다 컸다. 지영이 엄마는 지영이의 양육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지영이가 원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지영이는 엄마가 룸싸롱에 출근할 때나 입을 법한 손바닥만한 티를 입고 다녔다. 크롭티라는 말도 없던 그 시절, 지영이의 행색은 여러 상상과 무성한 뒷말을 만들어냈다. 워낙에 눈에 띄게 예뻤기 때문에 그저 "어린 것이 좀 까졌네" 정도의 혀 차는 소리를 듣는 정도에서 끝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책임있는 어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어떻게든 표시가 날 수밖에 없는 법. 지영이는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 머리에는 언제나 기름이 잔뜩 껴 있었다. 한번은 학원 남자 선생님이 "불 근처에 가지 마라 활활 타겠다"라고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말한 적도 있다.


예쁘고 앳된 얼굴, 성인의 키, 노출 심한 싸구려 옷, 위생 관리가 안된 행색, 뭔가 외롭고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얼굴, 초등학교 체육복 바지의 조합은 더러운 욕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동네에 무리지어 다니는 껄렁한 중고딩들이 지영이 뒤를 따라다니며 희롱하기도 했고 초딩이지만 벌써 싹수가 노란 남자애들이 자기네 집 빈다며 비디오 빌려다 같이 보자는 제안을 스스럼없이 하기도 했다. 지영이 역시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숙제를 안해 오거나 준비물을 안 챙겨와서 담임에게 혼날 게 걱정됐던 지영이가 같은 반의 어수룩한 남자애 하나를 화장실로 불러내서 "네 거 나 주라. 나 그거 보여줄게"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나는 학교가 달랐기 때문에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영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있다. 4학년 때 우연히 팬티 속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빼내는데 그게 어디를 건드렸는지 말로 설명 안 되는 짜릿함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다시 느끼고 싶어 일부러 머리카락이나 깃털 같은 것을 넣었다 꺼내본 적이 있다고. 어떤 환경에 노출돼 있느냐와 별개로 빠른 아이들은 성적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나이였다.


예쁜 아이가 부유하고 든든한 부모의 보호 아래 사랑 담뿍 받고 사는 티가 나면 예쁘다는 게 '심지어 예쁘기까지!'가 되지만 예쁜 아이가 쪼들리는 결손가정에서 방임 속에 꾀죄죄하게 다니면 '꼴에 얼굴만 반반해서'가 된다. 아름다움조차 멸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게다가 앞머리를 무스로 한껏 세워올린 외모와 배꼽과 어깨가 다 드러나는 옷차림은 가엾은 어린아이로 봐 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지영이를 두고 "지 에미 닮아서 어린것이 벌써 다방레지같이 해 다니네" 라고 욕하곤 했다. 수업시간에 졸기라도 하면 "쟤는 밤에 뭘 하길래?"라며 야릇한 경멸을 담은, 주변에 다 들리는 혼잣말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지영이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못된 짓 무용담 늘어놓기 대회에서 일등하고 싶어하는 내일없이 사는 문제아들과 비교적 따순 가정에 살면서 공부도 곧잘 했지만 사춘기니까 '경험삼아' 비행도 한번 저질러보고 싶어하는 도덕성이 결여된 남자애들의 타깃이 되어갔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2월 졸업식이 있기 전, 그야말로 고삐 풀린 혼돈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저 두어 달 후 상급학교로 진학한다는 것뿐, 그 두어 달 사이에 어린이에서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닐진대 아이들은 별안간 조숙해졌다. 당시 내 고향에는 남녀공학 중학교는 단 한 개밖에 없었다. 단일 성별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헤어진다는 생각에 설익은 사랑을 다급하게 고백하고 엉겁결에 연인이 되어 만화책이나 소설책, 부모 몰래 봐온 비디오 등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온갖 호기심을 분출시켰다. 그때만 해도 중학교에 가면 머리는 귀밑3센티미터, 신발은 랜드로바로 대표되는 까만색 굽 낮은 로퍼, 여름에는 교복 하복에 하얀 양말, 겨울에는 동복에 까만 스타킹만 허용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게 강제적 몰개성의 시기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 '개성'을 누리기 위해 파마나 염색을 해보는 여자애들도 많았다. 많은 아이들이 어떻게든 최소 한 가지의 일탈은 해봐야 된다는 강박에 휩싸인 가운데 지영이에게 사귀자며 다가온 남학생이 있었다.


저런 애가 왜 지영이를? 생각이 들 정도로 '멀쩡하고 착실한' 남자애였다. 어떤 애들은 "취향 참 독특하군" 하며 수군댔다. 뭔가 특출난 걸로 유명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소풍날에 선생님들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서 따라오는 엄마를 가진 아이였다. 아람단 아니면 보이스카웃에 소속된, 그때만 해도 제한이 없던 스승의날 선물로 비싼 스카프같은 거나 돈봉투가 책갈피처럼 끼워진 책 선물을 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 그걸 굳이 숨기지도 않는 부모를 가진 아이. 그 시절 초등학교 때 그런 부모를 가졌다는 건 학교나 사회로부터 많이 것이 용서되었다는 뜻이다. 부모의 티 나는 서포트를 받는 그 아이에겐, 본성과는 별개로, 귀하게 크는 아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그 애가 하는 모든 행동이 타당해 보이게 하는 마법을 부렸던 것이다. 그 남자애는 블랙로즈 초컬릿에 쪽지를 붙여서 지영이에게 줬고 이내 지영이의 환심을 샀다. 환심을 산 정도가 아니라 지영이는 감격하여 그 사랑을 받았다. 무슨 속셈이 있었나.


그 남자애는 지영이를 부모가 부재 중인 자기 집으로 초대했고 둘은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첫경험을 했다. 남자애가 미리 빌려놓은 비디오를 같이 봤는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갈 즈음 남자애가 지영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깨 위를 방황하던 손이 어느새 옷의 넥라인 안으로 들어와 지영이의 가슴을 더듬었다. 그 순간으로부터 겨우 6개월여 전에 태어나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했던 지영이의 여리고 예민한 가슴은 의욕과 패기는 앞섰으나 정작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몰랐던 남자애의 허둥지둥한 손에 움켜쥐어 화끈거리고 따갑기만 했다고 한다. 서툰 행위 역시 우연히 팬티 안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빼낼 때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픔과 황망함 속에 그날의 이벤트는 끝났고 지영이는 휘적휘적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지영이 엄마는 손님을 데리고 귀가했고 지영이는 자기 방에서 자는 척하며 그들의 모든 대화와 기척을 세세하게 느꼈다.


인생은 타고난 본성과 생활 환경, 주양육자의 태도와 철학과 그와의 감정 교류, 그외 살면서 맺게 되는 무수한 인간관계, 혹은 응당 겪어야 할 인간관계를 못 겪음으로써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결핍, 삶에서 만나는 중대한 사건들, 수없는 선택 등 많은 것들에 따라 달라진다. 본성은 태어난 사람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외 환경적인 요인도 어린나이에는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이렇게 무수한 우연으로 이루어진 삶 속에서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책을 읽고 학교에 가고 칭찬과 질책에 반응함으로써 할 것과 안할 것을 구분한다. "어리기 때문에 미성숙한 것이다, 미성숙한 이가 저지른 잘못은 봐주고 교화할 기회를 줘야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어리다는 기준이 무엇인가, 그 잘못은 미성숙한 판단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작정하고 행한 악한 의도에 의한 것인가, 어디까지 봐줘야하는가, 그 잘못으로 생겨난 피해는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가 아니면 애초에 보상할 수나 있는가 등의 질문이 남는다.


블랙로즈 초컬릿을 안겨 주며 동네 형들에게 부탁해 비디오 대여점에서 어렵게 빌린 미성년자 관람불가 비디오 영화를 틀어 분위기를 만들고 고로케를 나눠 먹자던 그 남자애는 지영이에게 아는 형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며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1월의 어느 날, 세상은 한겨울의 추위와, 새해에 대한 기대와,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이라는 낭만과 환호가 지나버린 스산함으로 뒤죽박죽이었다. 낮잠에 들려고 누운 채로, 나가면서 슈퍼에 들러 빈병을 팔라고 말하는 엄마가 던져 주는 돈을 들고 지영이는 혼자 중학교 교복을 맞추러 갔다. 부모와 함께 나온 무리들로 왁자한 교복집에서 나와 공중전화로 남자애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며칠 전에도 들었던 그 제안이 지영이는 왠지 꺼림칙했지만 달리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오라는 곳에 갔다. 누군가의 자취방이었고 그 곳에는 동네에 알려진 불량 중고등학생들이 대여섯 명 있었다. 자퇴생도 있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 그들은 지영이를 호들갑스럽게 맞았다.


그들은 지영이를 윤간했다. 블랙로즈를 건넸던 남자애는 대낮에도 어두침침하고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더럽고 무거운 꽃 누비이불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그 방에 도착하자마자 지영이를 두고 떠났고 따라 나가려는 지영이를 거기 있던 문제아들이 "에헤이!" 하며 잡아 앉혔다. 오빠야들 ㅈ 꼴리니까 빠구리 한 판씩만 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죽이죽 웃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이 돌림빵이라고 부르던 그것을 지영이에게 했다. 블랙로즈 남자애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 사이의 추악한 거래였을까. 블랙로즈 남자애는 그 문제아 중고딩 무리들에게 갚아야 할 빚 같은 게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어떠한 이유로 그들의 마음에 들고 싶었던 것일까. 같은 학원에 다녀 얼굴을 아니 자길 순순히 따라올 거라고 큰소리치기라도 했던 걸까. 그렇다면 첫 경험을 나누었던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기왕 '더럽혀질' 아이 내가 먼저 해보자는 마음이었을까.


지영이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 멍한 상태로 겨우 풀려나 그집을 나왔고 그대로 터벅터벅 걸어 버스 정류장 스무 개 거리에 있던 엄마의 가게로 갔다. 소방안전 기준 따위는 낯선 나라의 언어만큼이나 씨알도 안 먹히는 그곳. 역 뒤의 좁고 축축한 골목 안쪽에 파란 형광등빛의 뱅뱅이 입간판이 서 있는 곳. 지린내가 진동하는 입구를 지나 어른 한 명이 겨우 움직일 만큼 폭이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테이블 두 개가 전부인 지영이 엄마의 룸싸롱이 있었다. 낡은 회색 양복을 입은 늙수그레한 남자와 부루스를 추고 있던 지영이 엄마는 지영이를 보자 화들짝 놀라 여기가 어디라고 왔냐며 콜라 한 병을 쥐여주며 얼른 집에 가라고 했다. 지영이는 집에 가서 밤새 엄마를 기다렸지만 엄마는 다음 날 정오가 돼서야 귀가했다. 2월 졸업식을 앞둔 1월의 어느날, 다니던 학교는 모든 교과 과정이 끝났고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방학 중이었다. 새 학교는 3월에나 입학한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도 친척도 없었다.


지영이는 그렇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누구한테 털어놓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일을 그렇게 덮었다. 수치스럽고 억울했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거라 체념했다. 지영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숨죽여 죽은 듯이 사는 것뿐이었다. 한번, 거리를 걷다 신호를 받고 서서히 서는 옆 차도의 버스를 올려다 봤는데 버스 맨뒷좌석에 그 문제아 무리들이 닫힌 창문 안에서 왁자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이용해 성행위를 뜻하는 저급한 묘사를 지영이를 향해 전시하듯 하는 걸 보고 지영이는 그길로 가까운 파출소에 갔지만 다짜고짜 하대하는 듯한 반말로 세상 귀찮다는 듯 세상 못 믿겠다는 듯 인적사항을 묻고 사건경위를 묻는 나이든 경찰을 뒤로 하고 나왔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지영이의 당시 삶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나는 친언니의 장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입학식에 갔다. 그때 시드니에 살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을 방문했을 때 조카 입학식이 겹쳐서 갔던 것이다. 나는 거기서 봤다.


처음에는 그저 어디서 본 것 같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나보다 한 살이 많은 내 친언니는 태어나서 한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고 결혼도 동향인과 했으며 아이들을 낳고 여지껏 고향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이기도 하기 때문에 낯익은 사람을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12월생인 조카가 같이 입학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몸집이 작고 더 아기같아 그게 뭉클하고 애처로웠을 뿐이다. 그러다 무심히 지나가는 말로 "OO이 담임선생님이 왠지 낯이 익네"라고 했는데 곁에 있던, 연년생 자녀를 뒀고 막내가 내 조카와 친구 사이인 언니의 이웃이 "나이가 XX살이라고 했죠? 그럼 저 선생님하고 어릴 때 알았을 수도 있어요. 저 선생님도 이 고향 출신이고 나이가 동갑이에요"라고 했다. 그 이웃분의 큰애가 작년에 그 선생님 반이었다고 했다. 그 선생님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다 기억이 났다. 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구나, 블랙로즈 초컬릿.


강당 행사를 마치고 병아리같은 아이들이 그야말로 삐약삐약대며 각자의 교실로 인솔돼 올라갔다. 학부모들은 강당에 남아 학교소개와 교과 과정 설명을 들으라고 했고 언니와 그 이웃분이 자리를 잡고 앉는 사이 나는 강당 밖으로 나와 교사가 된 블랙로즈 곁에 다가갔다. 짙은 녹색과 검정색의 타탄체크 울재킷을 입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띈 그는 어릴 때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언제나 밝은 곳에서만 살았을 것 같은 그 여유로운 얼굴.


"선생님, XX년생이시죠? 6학년 때 B학원에 같이 다녔어요. 저는 지영이를 알아요."


나는 지영이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서 말했다. 지영이는 흔치 않는 성을 갖고 있었고 나는 살면서 지영이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주위에서는 두어 번밖에 못 봤다. 그리고 곧 나는 그곳으로부터 나왔다. 그의 얼굴을 얼핏 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느꼈다. 그는 알았다는 것을. 그는 지영이를 농락했고 유인했고 유린당하도록 했다는 것을. 그는 결코 죄가 없지 않다.


그저 우연인 건지 알 수 없지만 블랙로즈는 곧 병가를 냈고 이후 비정기 전근을 신청해 다른 학교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영이가 어디에 있든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체념과 적대감이 일상화되어 고독하고 험상궂은 얼굴을 갖게 된 건 아니기를. 나는 학원 다닐 때 지영이랑 친하지 않았는데 학원 봉고가 집 앞에 내려줄 때 지영이도 같은 곳에서 내렸다. 거기서 집 쪽으로 가는 갈림길까지 겨우 2분쯤 되는 거리를 걸을 때면 지영이가 어느새 다가와 말을 걸곤 했다. 한번은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비밀스런 얘기까지 내게 하느냐고. 지영이는 너는 너만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라고 말했다. 딱 한번, 생리 때문에 주말에 목욕을 못 가서 평일 새벽에 대중탕에 간 적이 있는데 지영이를 우연히 봤다. 지영이는 당황한 듯했는데 지영이의 발가락이 12개였다. 지영이는 다지증이 있었던 거였고 나는 그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소문이 날 줄 알았는데 나지 않아서 내게는 털어놓고 싶었다고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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