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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chu Pie Apr 22. 2019

신뢰를 얻는 법

이런 거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고

지난 약 2개월은 미국에 온 이후 가장 바쁘게 보낸 기간 중에 하나이다.  매주 주말을 반납하고 주 7일 근무로 2개월을 보냈다.  주마등처럼 지나간 지난 2개월을 돌이켜 보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초이, 일단 숨 호흡 크게 한 번 하고 내 얘기 들어봐"라고 말하는 매니저, 급하게 최애 멤버들을 모아놓고 Task Force Team 피칭을 하던 회의실, 그리고 모두 "너와 함께라면!"이라고 말해줘 크게 감동했던 순간, 그리고 곧 이어진 암흑의 준비 과정, 너무 화가 나 오랜만에 찾은 담배 두 개비에 구토를 했던 화장실, "나한테 얼마나 화났어, 말해줘"라고 말하던 매니저, 그리고 생각보다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던 부사장의 승인.


(언젠가 자세히 쓰고 싶은) 이 롤러코스터 과정을 지나, 코드네임으로 남아 있던 그 프로젝트는 2개월 만에 이제 하나의 팀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프로덕트를 개발하기에 앞서, 지난 2개월을 돌이켜보며 한 가지를 기록해 두고 싶었다.  리더로서 신뢰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이다.  

         



신뢰와 사랑은 닮은 구석이 있다.  바로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단 얻는 순간 마법이 발생한다.  


그래서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하나의 조직을 이끌어갈 때, 리더로서 모두 신뢰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리더를 신뢰하고 리더에게 신뢰받는 조직은 종종 믿을 수 없는 성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말한 바대로, 신뢰라는 게 그게 참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새침데기 길고양이 마냥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특히 몇몇 리더들과의 부침이 있었던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신뢰하는 리더와 그렇지 않은 리더를 (머릿속으로) 모아놓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봤다.  어떻게 하면 리더로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신뢰 (Trust)는 이해 (Understanding)로 시작해 공감 (Empathy)의 단계를 거쳐 형성된다.


하지만 말은 쉬워도 실제로는 어렵다.  이들은 모두 내 의도대로 쥐락펴락 할 수 없는 하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해 >> 공감 >> 신뢰 순으로 흐르는 가치의 사슬은 오랜 기간을 두고 보여준 나의 '행동'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다.


다만, 그 '행동'들은 내 의도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  그 행동을 토대로 원하는 가치에 최대한 근접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해를 최대한 돕기 위해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감을 최대한 이끌어 내기 위해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으며,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떻게'를 설명하기보다는 ''를 보여주는 식인 것이다. 

직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렸던 도표라, 그리고 한글로 바꾸기에는 제가 너무 게을러서, 영어입니다.


1) 투명성을 통해 상대방의 이해를 돕는다

회사에서 전반적으로 존경받는 리더들은 대체로 성급하게 동의를 구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이해를 돕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나쁜 소식일수록 논란의 소지가 많은 일일 수록, 더욱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모든 일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재무제표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목표를 초과 달성해 모두가 축하할 때도,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성급하게 동의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팩트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질문을 수용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잘못이 있다면 깨끗이 인정한다.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대신 어떻게 고쳐나갈 생각인지 등등 미래지향적으로 이야기한다.  당장 감추고 싶은 잔인한 현실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투명하게 드러낸다.  우버의 새로운 CEO인 Dara Khosrowshahi가 우버가 런던에서 영업정지를 당했을 때 쓴 편지는 좋은 예이다. (이 아저씨, 사실 좋은 편지를 많이 썼다.)


"While Uber has revolutionised the way people move in cities around the world, it's equally true that we've got things wrong along the way. On behalf of everyone at Uber globally, I apologise for the mistakes we've made." 

"우버가 전 세계 사람들이 이동하는 방식을 혁신했지만, 동시에 잘못도 많이 저질렀습니다.  전 세계의 우버인들을 대표해서 지난 실수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라니!)


"We will appeal this decision on behalf of million of Londoners, but we do so with the knowledge that we must also change."

"수백만의 런던 시민을 대표해 이번 결정에 대해 항소하겠지만, 동시에 우리 역시 변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직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열띤 토론이 펼쳐지거나, 때로는 그냥 리더가 결단을 내리고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의외로 그것이 최악의 관계로 곧바로 치닫는 경우는 드물다.  동의하지 않아도 최소한 이해는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렵지만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반복되면서 최소한 이 사람이 뭔가 숨기고 있진 않는구나, 하고 믿게 된다.  


그렇게 투명성은 신뢰의 씨앗이 된다. 


2) 약점을 보여주고 공감을 산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리더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배워왔다.  아니 어쩌면 엄격한 갱상도 싸나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하루하루 롤러코스터와 같은 스타텁 생활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리더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직원들은 아, 회사가 망하나 보다, 하고 떠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을 때 약한 모습을 숨긴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리더가 모든 짐만 짊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자기가 말도 안 했으면서) 그걸 몰라주는 직원을 괜스레 미워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물론 나와 같은 속좁이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지만.  차라리, "지금이 위기고 나도 불안하고 괴롭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응해 나갈 생각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예전에 온라인 돼지고기 사업을 하던 당시, 입점해 있던 다음 디앤샵을 통해 우리 제품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신고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너무 충격적이고 죄송했기 때문에 스스로 삭발을 하고 디앤샵에 들어가 용서를 구한 기억이 있다.  제품 포장을 담당하던 직원들을 다그치는 대신 (솔직히 고민이 많이 됐다) 내가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우리가 이 경험을 통해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다음 날 공장의 직원들이 나와 똑같이 삭발을 하고 나와 다 같이 웃어버린 기억이 있다.  구멍가게 같은 작은 사업이었고 결과적으로는 큰 위기였지만, 역설적으로 나에게는 가장 따뜻하고 자랑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그 위기는 잘 극복했다.   


훌륭한 편지를 많이 쓴 우버 CEO가 12년 간 이끌던 익스피디아를 떠나면서 쓴 편지는 내가 직접 겪은 바로 위의 예보다 훨씬 훌륭한 예이다.


"I have to tell you I am scared. I’ve been here at Expedia for so long that I’ve forgotten what life is like outside this place. But the times of greatest learning for me have been when I’ve been through big changes, or taken on new roles—you have to move out of your comfort zone and develop muscles that you didn’t know you had."

"사실 저는 두렵습니다.  익스피디아에 오래 있어온 만큼, 바깥세상은 어떤지 사실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큰 변화를 겪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크게 배워왔습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위해 도전하고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능력들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실은 전혀 두려움을 못 느낄 것 같이 생겼다. (Image source - Quartz)


실패와 두려움을 모르는 신계(神界) 리더에 대한 인상이 팽배했던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과 기대감을 자아냈던 기억이 난다.  이 기사의 아래에 보면 스타벅스의 사장인 Howard Shultz가 "리더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부분도 나온다.  


약한 모습은 사실, "지금 솔직한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신호를 가장 확실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솔직하고 약한 모습을 보여줄 때 공감의 문을 연다.  훌륭한 리더들은 이런 부분을 영리하게 잘 활용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어떤 리더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면 증후군에 대해 고백하기도 하며, 자신이 특별 관리 대상이었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추종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실제로 나 역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고 암흑기와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비슷한 일을 겪었던 한 리더의 사내 포스팅을 읽고 용기를 낸 기억이 있다.  심지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던 부사장인데, 그 이후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뀌었다.  


약한 모습은 자신감 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것은 리더가 신뢰를 얻기 위해 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에 하나이다.


3) Show, don't tell

같이 일하던 PM 중에 내가 뱀이라고 부르던 녀석이 있다.  물론 속으로만.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큰 백인인데 말을 아주 잘했다.  그리고 자기 아랫사람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일을 시키는 것에 능숙했다.  주변에 일을 다  맡겨놓고 당신은 높은 사람들과 시시덕거리는 데에 시간을 썼다.  (물론 나의 삐뚤어진 관점에서 봤을 때만 그렇다.  높은 사람들이 시시덕거릴 시간은 없었겠지요.)  그가 입을 열면 부사장이고 뭐고 높은 사람들이 깔깔깔 웃어댔고, 특히 시다바리에 불과했던 나는 질투하다 못해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웠다.  잘 생기고 키도 큰 백인,이란 것은 첫인상이었고, 나중엔 커다란 눈을 희번덕거리고 몸이 기다란 뱀 같아 보였다.


훗날 회사를 떠나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예전 직원들과 어울린 적이 있는데, 뱀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제야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뱀을 싫어했는지 알게 되었다.  "걔가 뭐 제대로 한 거 본 적 있어? 말만 번지르르 하지,"라니.  결국 사람들은 비슷하다 싶었다.  행동하지 않고 말만 하는 뱀을 다 싫어했던 것이다.


사실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리더가 될수록 delegate (위임)를 잘해야 직원들의 동기도 부여하고 더 큰 impact를 낼 수 있다.  다만 위임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어떻게'에 집중해 일일이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왜'에 초점을 맞추고 직원들에게 의지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물론 자기만의 영역이 중요했던 뱀은 전자에만 골몰했다.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지 (show) 않고, 그저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tell)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애초부터 목적 자체가 자신의 영광에 맞춰져 있으니 '왜'에 대해 나누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이다.


Show, don't tell은 사실 작문의 한 방법이다.  독자들에게 어떤 느낌인지 설명 (tell)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줘야 한다 (show)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화가 났다'는 tell이고 '그가 옆에 있는 의자를 강하게 걷어찼다'라고 하면 show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tell의 경우 독자들의 감정에 작가가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Tell은 독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반면에 show는 결국 작가가 원하는 감정을 이끌어내지만 이것이 '독자의 것'이라고 믿게 한다.  독자의 감정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감정의 근거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뿐이다.  그렇게 독자가 더욱 적극적으로 작가와 연결된다.  작가와 공감하고 작가와 같은 방향을 '능동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조직을 운영할 때도 비슷하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왜'에 초점을 맞출 때 단순한 공감의 레벨을 뛰어넘어 리더와 직원이 한 마음으로, 하지만 각자 능동적인 방법으로 그 미션을 위해 달려갈 수 있게 된다.  서로 같은 방향을 가고 있다는 근본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 와중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부침은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해결할 문제'가 된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재난 대응팀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show가 상대적으로 쉽다.  홍수로 집을 잃고 지진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대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사람들을 돕자는 취지에 초점을 맞출 때 팀은 놀라운 마법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샘솟고 엔지니어들이 자진해서 프로덕트 출시 시기를 앞당기기도 한다.  리더가 목표를 세우고 방향을 제시할 때, 그것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각자 알아서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행동할 뿐이다.  전반적으로 비슷한 방향으로. 


리더로서 스스로의 행동 혹은 결정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경지.  바로 리더가 신뢰를 얻기 위한 과정의 정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show, don't tell 할 때 가능해진다.

      



미리 밝힌 바 있듯이, 지난 2개월 간의 롤러코스터 기간 동안 수많은 리더들과의 부침에 끙끙 앓았다.  그리고 이렇게 마구잡이로 써 버린 글을 읽어보니 이건 내 나름대로 징징대는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게 속이 후련하다.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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