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녔던 이베이도 그렇고, 지금 근무하고 있는 페이스북에서도 근속연수 만 5년이 되면 4주 간의 유급휴가를 줍니다. 거기에 개인 휴가를 앞 뒤로 붙이면 길게는 6주 가까이 쉴 수 있게 되는 셈이죠. 그동안 수고했으니 재충전하라는 의미에서 recharge라고 부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있고, 평소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도 있고 (이베이에 같이 근무했던 최영재 님은 이 기간을 통해 파일럿이 되었다) 집 뒷마당에서 잠수 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 나의 지금 엔지니어 매니저 파트너는 뒷마당에서 4주 간 독서에 빠졌다고 한다).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작년 초, 회사에 남기로 결정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사실 바로 이 recharge였습니다. 1년만 더 "버티면" 만 5년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과 정말 멀리 여행 가고 싶었거든요. 특히 첫째 딸은 틴에이져가 되기 때문에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절박함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후 처음에는 세계지도를 펼쳐 들고 어디로 갈까, 고민했습니다. 말 그대로 고민만으로도 통 크게 설레는 거죠! 7대 불가사의를 테마로 잡을까, 각자 가고 싶었던 곳을 하나씩 꼽아 일주일씩 지내볼까, 그렇게 생각만으로 충분히 즐겼습니다. "생각만"이었던 이유는 결국 뭘 해도 너무 비싸서 가격 기준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갈 수 있는 먼 해외 중 가장 싼 비행기 값 기준으로 프랑스파리 (1인당 약 250불 수준)를 첫 목적지를 정하고, 그 이후 일정을 짰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간 가장 길게 쉬어본 게 이베이 퇴사 후 2주였습니다. 첫 직장에서는 3년 간 열흘 정도 쉰 게 다였던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가족 여행이라는 점도 설레지만, 오랫동안 아무 생각 없이 쉬어본다는 것도 설렙니다.
그러나 목표를 설정하고 성공 기준을 정하는 직업병에서 그렇게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어느새 매일 일기를 써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성공 기준은 어쨌든 끝까지 마무리한다, 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 매거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뭐 어차피 방문자 분도 많이 안 계시지만, 혹시라도 보시게 되면 어느 한 가족의 여행 이야기를 가볍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