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코딩'이 없을 때부터 누워서 코딩했다

나의 바이브코딩 이야기 Ep.1

by Collie Kim

나의 이야기

나는 기본적으로 씬이 형성되고 뛰어들지 않았다. 나의 경험과 바이브코딩 씬의 형성은 동시에 진행 중이다.


AI가 코딩씬으로의 진출 이전부터 채팅에서 옮겨가며 보조를 받았다. 그런 자잘한 자동화 코드 프로젝트를 두세 번 거칠 즈음, 윈드서프와 커서가 하입을 받았다. 나는 여기서 커서 무료버전도 썼었고, 윈드서프도 써보다가 윈드서프로 정착했다. 이거 뭐.. 말도 안 되는 신세계였다.


처음엔 토이프로젝트를 했다. 별자리 운세인데, api를 가지고 운세를 계산하도록 하고, 운세가 각각 json파일로 존재하도록 하는 과정이 꽤 오래 걸렸다. 디자인도 준수했지만 아직까지 완벽하지 못했다. 이때 뭐 러버블, v0, 리플잇 등의 노코딩 바이브코딩 솔루션도 나오기 시작했다. 클로드 웹 채팅과 함께 윈드서프를 병행해서 사용하였다. 문서화의 중요성을 이때 느끼기 시작했다. 개발이 약 3~4주가 걸렸다. 아이패드와 맥북을 스크린셰어로 연결하여, 이때 처음으로 누워서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바이브 코딩이라는 단어가 한국에서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 접속이 가능하다.) askstar.kr


그 이후 LLM api를 쓴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챗봇을 가볍게 만들어봤다. 그걸 창업아이디어로 창업 행사에 합격하여, 미국 실리콘벨리까지 일주일간 견학할 기회를 얻었다. 거기서는 제미나이 PM도 만났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LLM을 만드는 이들도 LLM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LLM을 미친 듯이 사용해 보며 그 위에 프로덕트를 만들었던, 윈드서프의 헤드급들은 경험적으로 LLM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가 막 윈드서프의 헤드급들이 구글로 줄 이직을 하고, 윈드서프는 난처해지고, 이 사건도 아주 유명하다. 그 직후? 한 달이 안 됐을 시기이다.)


그러니까 요지는 이러한 것이다. AI는 배우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더 잘 쓰게 된다. 더 많은 시도와 실험을 LLM위에서 반복한 사람이 가장 잘 쓰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고, 나는 돌아왔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나의 답을 정답으로 만들 수 있을 대답을 계속해서 내놓을 수 있는가라고 느끼고 왔다. 기존의 창업 아이템은 파인튜닝에 기반한 모델이었고, 경쟁력이 전혀 없음을 느끼고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인튜닝과 브레인스토밍, AI 노트 등의 수많은 솔루션이 정말 쏟아져 나오고 있고, 아직까지 매일 시장에 하나씩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무엇을 가장 잘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콘텐츠였다. 그냥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나와 잘 맞았다.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런데, 유튜브의 성장은 극적이지 못했다. 예상 못한 바도 아니었다.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고, 일부는 선택에 따른 결과였다. 나는 그 무렵 여러 이슈를 겪으며, 어디로 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유튜브를 하다가 다시금 취업이 하고 싶었다. 데이터 직군이라는 길을 발견하게 되어서, 너무나도 나와 적성적으로 일치한다는 매력을 느꼈다. 정말 고등학생 때 세상에 그런 직종이 있는 줄 알고 있었다면 올인해서 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26이 끝날 때쯤 알게 되었고, 늦은 나이에 대학교를 진학하고자 했던 도전은 허무하게 마무리 됐다.


그러다 모종의 계기로, 나는 다시 창업을 생각하게 된다. 콘텐츠 분야였고, 머리에 떠오르는 건 있는데, 빠르게 표현을 하지 않으면 휘발될 것 같았다. 그즈음 안티그래비티라는 것이 세상에 나왔다.


재밌는 게, 내가 제미나이 PM을 만났을 때 이미 클로드 코드와 제미나이 cli가 런칭했을 때인데, 나는 그때 이미 꼭 CLI여야만 했던 이유와 다른 형식의 프로덕트를 낼 계획이 있는 지를 물어봤었고, PM님이 대답을 해주실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 이미 IDE가 나올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사실 안 그럼 윈드서프 팀을 빼갈 일도 없다.


그렇게 나는 윈드서프에서 또 안티그래비티로 갈아탔다. 그 와중에, 나는 단 한 번도 클로드의 구독을 해지한 적이 없다. 25년 2월부터 현재까지 나는 클로드 프로의 유저이다. 즉, 클로드 코드 또한 늘 나와 함께했다. 안티그래비티에 클로드 코드를 물려서 사용했다.


그 두 개의 툴로 나는 디자인은 구리지만 동작을 시연할 수는 있는 수준의 모바일 온리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1-2주의 기간이 걸렸었다. 그리고 계속 그걸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정부 지원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부지원사업 준비라는 게, 오히려 사업이 밀리는 느낌이 계속 있었다. 인터뷰를 하고, 사업계획서를 쓰는데, 뭘 만들지는 정했는데, 시장에 어떻게 먹힐지를 전혀 설계하지 못했다.


많이 부족함을 느끼는 중에, 뭐라도 계속하자라는 마음으로 랜딩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뷰 참여자분들에게도 돌리고, 광고도 돌려보면 어떨까 싶었다. 랜딩페이지..? 그건 내용이 중요한 거 아닌가?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나도 가볍게, 노코딩 툴을 처음으로 써봐야겠다 싶었고, 그때 구글 ai 스튜디오를 처음 써보았다.


그리고, 한 3주 정도 시간이 지나서 조코딩 해커톤을 알게 되었고, 그냥 프로덕트를 만들어버리자 싶었다. 나는 6일 안에 상용화도 가능한 수준의 프로덕트를 개발했다. 이번엔 규모가 달랐다. 목표가 상용화였기 때문에, 더 많은 기술스택이 필요했고, 나는 병렬에 차력쇼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gpt프로를 카카오톡에서 엄청 싸게 할인을 해서 3개월치를 잘 모셔왔다. 그걸로 코덱스를 연동했고, 나는 최근 구글 ai 프로까지 구독하고 있어서, AI 3대장을 다 모은 상태였다.


코덱스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코덱스가 어디에 특화되어 있는지 눈여겨 보여 서칭을 조금 한 결과, 나는 각각의 ai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병렬로 코딩을 하기 시작했고, 만 6일 만에 모바일 온리 조잡한 프로토타입 하나 있던 게 프로덕션 레벨까지 개발을 완료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곧 런칭예정이다. 영상으로 서비스 설명과 얼마나 구현되었는지를 보실 수 있다. 해커톤 지원영상임. https://youtu.be/Leg-WUE2G4o)


이 과정에서 나, 클로드, 제미나이, 코덱스, 구글 ai프로까지 어떻게 협업하였는지 아주 귀중한 첫 실험적 업무 방식이 남았다.


+

다음 글에서 6일 만에 가장 프로덕션 레벨에 가깝게 코딩을 할 수 있었던, 방법론을 다루고자 한다. 사실 방법론만 쓰려고 했는데, 서론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것만 글 한 편이 나와버렸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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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개로, 나는 인스타에서 매일 창업일지를 올리고 있다. 또 본문에서 언급되었듯 유튜브도 하고있다.


https://instagram.com/slowspurt


https://www.youtube.com/@slowsp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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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