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코 외전]
이번엔 코딩이 아니라 글쓰기다. 창업중심대학 정부지원사업(1억 원 규모) 계획서를 쓰기 위해, 나는 기존에 방식과는 다르게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기존에는 노트북 LM에 소스를 하나씩 업로드하고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늘 쓰던 클로드코드(Claude code)를 켜고, 코딩이 아닌 글쓰기로 6일간 8번의 세션을 돌렸다.
노트북 LM보다 훨씬 똑똑하고 글 잘 쓰는 클로드를 노트북 LM처럼 쓸 수 있었다.
바이브 코딩으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입장에서, 시작 전부터 세운 철칙이 하나 있었다. 내 사업의 방향과 톤은 무조건 내가 쥐고, AI는 흩어진 정보를 구조화하고 팩트를 체크하는 파트너로만 썼다.
가볍게 공유해 보는 'AI와 사업계획서 핑퐁 하는 법'이다.
1. 개요부터 쓰지 마라, '소스 파일'이 먼저다 나는 철저히 바텀업(Bottom-up) 방식을 택했다. 이건 그냥 내 스타일일 수도 있는데, 사업계획서는 개요까지만 읽어도 될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요는 그만큼 압축적이고 중요해야 하니까 먼저 써서 한정시키지 않았다. 코딩할 때 에이전트의 관심사를 한정했듯, 글쓰기를 시킬 때도 주제를 한정시켰다. 그래서 서비스 개요, 시장 규모, 비즈니스 모델 등 핵심을 다듬은 5개의 '소스 파일'을 먼저 만들었다. AI에게는 무조건 "이 소스 파일을 바탕으로만 초안을 짜!"라고 시켰다. 예산 수치가 바뀌어도 전체 문서를 뒤질 필요 없이 소스 파일을 베이스로 고치면 AI가 알아서 전체를 일괄 수정해 주니 정말 편했다.
2. 팩트 폭행당하기 & AI 스러운 단어 통제하기 초안 4개가 뚝딱 나온 뒤엔, AI를 가차 없는 비평가로 썼다. 전체 사업계획서를 던져주고 약점을 찾으라고 했더니, '고객 검증 데이터 부족', '유료 전환 트리거 불명확' 등 12개의 뼈아픈 팩트 폭행을 날려주었다. 클로드 코드, 클로드 ai 돌아가면서 사용했고, 재미나이, 코덱스 다 왔다 갔다 하면서 물어뜯게 시켰다. 물론 녀석이 헛소리를 할 때도 있었고, 현 상황에서 만들 수 없는 범위를 계속 요구하기도 했고, 예비창업자인데 내 현물 인건비를 예산에 넣거나, "플라이휠" 같은 전혀 잘 모르는 단어를 쓰길래 "플라이휠 같은 단어 안 쓴다고!!"라며 코멘트를 한 번 이상 하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컨텍스트 길이 이슈일 거다. 세션이 8번이나 바뀌었고, 중간중간 중요내용을 잊어서 문서를 계속 남길 수밖에 없었다.
3. 마감 1시간 전, docx의 배신 가장 큰 위기는 마지막 날 찾아왔다. 완벽하게 끝난 줄 알았는데, 이 똑똑한 녀석들이 정작 사업계획서 양식(docx)에 텍스트 박스로 숨어있는 필수 작성 가이드(각주)를 아예 못 읽고 지나친 거다. 양식이 요구하는 핵심 내용이 비어있는 걸 발견했을 때, 진짜 육성으로 "헉" 소리가 났다. 결국 마감 1시간을 남겨두고 미친 듯이 수동으로 각주를 추출해서 AI와 대조하며 빈칸을 욱여넣었다. 문서 파일 넘길 때 텍스트 박스나 각주는 AI가 못 읽을 수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배웠다.
4. 그럼에도 AI를 쓴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 마감 직전 목이 상황에서도 AI의 진가가 빛난 순간이 있었다. 한글 파일에 복잡한 예산표를 일일이 표를 병합하며 그릴 시간이 없어서, AI에게 파이썬 스크립트를 짜라고 시켰다. 10분은 걸릴 노가다 작업이 단 1~2분 만에 docx 문서로 예쁘게 찍혀 나왔다. 그냥 복사해서 바로 붙여 넣기 해버렸다. 이번에 배웠다.
그리고 이 경험은 앞으로도 중요한 문서가 있을 때마다 또 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게 해 주었다.
AI는 '요술 지팡이'가 아니다 6일간 문서 작업을 해보니 코딩할 때와 똑같은 결론이 나왔다. AI는 내 생각을 대신해 주는 요술 지팡이가 아니라, 나와 같이 뒹굴며 빈틈을 채워주는 '생각 도구'라는 것. 내가 방향을 잡고 AI가 구조를 세우면, 내가 다시 글을 쓰고 AI가 팩트체크를 하는 이 핑퐁.
결국 내 사업이 세상에 왜 필요한지를 증명하는 건 철저히 내 몫이다. AI는 중간관리를 철저하게 해 준다. 내가 말한 것을 문서로, 그리고 문서들의 위계를 잡고, 노가다 같은 표 작업을 쉽게 만든다. 그러나 마감과 가독성 체크는 결국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단어와 글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고, 글자의 배열 등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외전 하나 끝
(이것도 나와 AI의 합작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