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뭐길래?
엄마의 마음,, 이모는 그렇게 우리집,큰 딸이 되었다
우리 엄마는 20살에 나를 낳으셨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다음 생에는 공부를
많이 하고 당당히 살아보고 싶다고 하
신다
초등학교 2학년때 부모가 이혼 하셔서
할머니 손에 자란 엄마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고모손에 크고 거
기서도 여의치 않아 작은 아버지 손에 크
고 친척집에서 손타며 어린 나이에 갖은
고생을 다 하시며 자랐다고 들었다
부모님이 각자 이혼과 재혼을 하시는 바
람에 두분 사이에서 낳은 엄마는 사랑을
받기보다 천덕꾸러기로 자란 것이다
아버지와 새엄마 사이에서도 몇년 살았지
만 차별을 당하셨고 아버지마져 갑자기
돌아가시니 새엄마가 전재산을 갖고 도
망가는 통에 엄마는 그때부터 친척집에
전전긍긍하며 더부살이처럼 9살 나이에
집안일에 빨래에 안해 본 일이 없다고...
그래서 가끔 엄만 입버릇처럼
다음 생이 있다면 평범한 부모밑에서 결
혼같은 것도 안하고 평생 부모모시고 멋
지고 당당한 커리우먼으로 살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엄마가 시골에
다녀오시더니 왠 여자애를 데리고 오셨
다 이모라고 하시며 앞으로 우리랑 같이
살거라고도 하셨다
엄마네 친정엄마가 재혼하고 낳은 딸,
엄마가 친정엄마를 그리워 하는 것을
알게된 아빠는 전국방방곡곡 수소문 해
외할머니를 결국 찾으셨다
외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하고
시집간 20대 딸하나와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랑 살고 있었다고
친정엄마를 만난 엄마는 기뻐도 하셨고
원망도 하셨고 만가지 마음이 뒤섞인 채
몇달을 할머니랑 왕래하고 지내셨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외할머니는
그해 1년을 못 버티시고 지병으로 돌아
가셨고 막내 이모를 우리 엄마가 키우겠
다며 데리고 온 것이다
무슨 하늘의 장난 이었을까?
어렸던 나는 그때 이모가 미웠던 것 같
다 1남2여,,내가 장녀였고 내동생들은
이모가 오기 전까지 내말이면 다 들어주는
나와 유대관계가 좋은 동생들이였는데 나
보다 2살 많은 이모라는 애가 우리집에
들어 오니 나의 입지가 내 의사와는 상관없
이 좁아진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사춘기때는 사실 엄마가 더 이해가 안 갔다
친동생도 아닌 동생을 친자매도 있는데 구
지 자처해 데려오신 엄마를...
시간이 흘러 엄마가 말해서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를 만났던 그날 반가움도 잠시
계속 원망질만 했단다 근데 1년도 같이
못살고 엄마가 갑자기 하늘나라 가니 너
무 서운하고 본인이 엄마한테 상처 준 말
만 기억이 나서 엄마딸을 엄마대신 양육
하며 엄마를 보듯 하고 싶었단다
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이모한테 내
것을 다 뺏기는 느낌으로 자랐다
엄마의 사랑도 동생들도 내방도
엄마는 늘
"이모는 부모님도 안계시고 어린 나이에
불쌍하니 우리 영이가 많이 양보 좀 해 줘!
엄마가 부탁할께"
하셨다 사실 내나이 9살, 나도 어린 나이였
다. 이모도 11살 나이에 우리가 아무리 잘
해 주었어도 가시감은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린 내가 보기엔 늘 엄마는 이모한
테 본인들 딸 보다 더 잘해 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들이 하나 하나 내안에 모여 시
샘 아닌 시샘으로 쌓여 가고 있었다
사춘기시절 엄마가 교회 가신 저녁에 그 억
눌렀던 마음이 폭파했던 것 같다 이모랑 머
리끄댕이를 잡고 싸웠다
이모가 키도 나보다 더 컸지만 그 당시 난
싸움에서라도 이모를 꼭 이기고 싶어서
머리끄댕이를 놓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퇴근 해 오셨고 나는 아버
지한테 처음으로 맞았다
아버지한테 맞으면서도
"왜 나만 때리냐고 이모는 왜 안때리냐고
둘다 잘못 했는데 이모가 먼저 기분 나쁘
게 말했는데 왜 나만 때리냐고"
악다구니를 질렀다 그리고 고1 사춘기때
그날, 딱 한번 가출을 했던 거 같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몰려 왔다 제일 친한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펑펑 울었더니 친구
가 집으로 오라고 했다
친구네 집에서 하루종일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엄마랑 아빠가 여러군데 전화 하시
다 친구네 집에 있는 나를 데리러 밤 늦게
오셨는데 안간다고 버티니,, 그냥 친구네
부탁하고 돌아 가셨다
그렇게 친구네서 하루 있다 집에 갔다 그뒤
로 난 말 수가 더 줄어 들었다 이모도 그 뒤
로 날 더 어려워 하는 것 같았다
어린 동생들과는 잘 지냈던 이모, 난 워낙
내성적이기도 했고 이모도 내성적이다 보
니,2살 차이나는 우린,,
처음부터 서로 대면대면 했다
친한 것도 친하지 않은 것도 아닌 그 어느
중간쯤에서 머물며 살았던 것 같다
맞벌이셨던 부모님이시라 장녀인 난 동생
들에 비해 책임감도 많았고 집안일도 더
솔선수범 했다 이모가 같이 살게 되면서 그
부분은 어쩌면 공동으로 나눔을 해 준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난 늘 내것을 조금씩 조금씩 빼앗
기는 기분이 들었고 이러다 내가 사라질까
싶었다
그리고 자꾸 더 웅크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이모가 점점 미웠다
이모가 20살이 되었을때
"언니, 그동안 감사 했습니다 저 이제
독립할께요" 했다
이모는 미용사 자격증을 땄고 미용실
에 취직 했다고 친구랑 같이 살기로 했다
며 집을 나갔다
엄마는 그날 하루종일 우셨지만 난 좋았
던 것 같다 다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 갔
을 뿐이였다 처음부터 이모는 우리 식구
가 아니였다
독립하고 이모가 간간히 연락을 했다 이
모 입장에서는 언니라고 연락조차 안하고
시집가 잘 사는 친언니보다
자기를 돌봐 주고 늘 신경써 주는 아버지는
다르지만 엄마는 같은 큰언니가 늘 고마웠
던 것 같다
엄마는 가끔
"형편이 안되서 동생한테 해 준 것도 없는
데 언니라고 늘 챙김해 주고 때마다 연락
해 줘서 고맙다고 " 하신다
돌직구인 난 늘 뭐라한다
"엄마가 안 키워 줬으면 이모삶은 지금보
다 더 안좋아 졌을지도 몰라 이모는 평생
엄마한테 부모 대하듯 해야지,, 뭘 엄마가
못 해 줬다해"
하며 잔소리 한다
엄만 늘 내게도 그부분은 미안해 한다
"우리 영이가 힘들었던 거, 엄마가 알아
그때 당시에도 알았지만 내자식이 아무래
도 더 편하니 부모잃은 이모를 더 챙겼던
것 같애 빨리 이집에서 적응하라고"
"엄마 내가 뭐 애야! 그땐 어렸으니까 서
운하고 그랬갰지 이젠 세월이 약이라고
생각도 안나 우리 지금 행복하잖아 이모
랑 왕래하며 지내고 그냥 지금처럼 살자요"
우린 수원 토박이다
이모도 수원에서 자기 미용실 하며 산다
이모는 엄마랑 우리한테 평생 미용실 이
용권이라고 하며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머리끄댕이 안붙들고 사이좋게
지낸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드니 언제인진
모르겠지만 이모의 삶도 참 딱하다 싶었
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도 이모의 삶도 그녀들의 의
지와는 다르게 일어났고 그런 삶으로
살 수 밖에 없었고 그리 생각하니 다 안
쓰러웠다
좀 더 삶을 윤택하게 살아 온 내가,, 그
들에게 미안함이 올라 왔다 그래서 그
후부터 내가 더 이모한테 한발자국 다
가섰던 것 같다
"이모, 난 사실 이모가 진짜 미웠다 어
릴때는 왠지 내거를 자꾸 빼앗기는 기
분이 들었던 거 같아 그래서 이모가 너
무 미웠어 그런데 지금은 이모가 좋아!
나 철들었나봐 늘 우리 가족 챙김해 주
고 무슨일 있을 때마다 자기일 처럼 도
와 주는 이모가 옆에 있어 힘이돼, 이
모 고마워 그리고 내가 미안해 앞으로
우리 행복하게 지내자"
하고 솔직하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나도 미안해 우리 그땐 너무 어려 둘
다 철이 없었다 아마 내가 너라면 나
도 너처럼 그런 기분 들었을거야 내가
더 미안하지 이모노릇 못하고 어린 조
카랑 똑같이 그랬잖아 너만 맨날 혼나
고 그게 더 마음 아팠어"
우리의 관계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
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이모는 그렇게 우리집의 큰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