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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 Nov 17. 2024

가족이 뭐길래?

엄마의 마음,, 이모는 그렇게 우리집,큰 딸이 되었다

우리 엄마는 20살에 나를 으셨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다음 생에는 공부를

많이 하고 당당히 살아보고 싶다고 하

신다

초등학교 2학년때 부모가 이혼 하셔서

할머니 손에 자란 엄마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고모손에 크고 거

기서도 여의치 않아 작은 아버지 손에 크

고 친척집에서 손타며 어린 나이에 갖은

고생을 다 하시며 자랐다고 들었다


부모님이 각자 이혼과 재혼을 하시는 바

람에 두분 사이에서 낳은 엄마는 사랑을

받기보다 천덕꾸러기로 자란 것이다

아버지와 새엄마 사이에서도 몇년 살았지

만 차별을 당하셨고 아버지마져 갑자기

돌아가시니 새엄마가 전재산을 갖고 도

망가는 통에 엄마는 그때부터 친척집에

전전긍긍하며 더부살이처럼 9살 나이에

집안일에 빨래에 안해 본 일이 없다고...


그래서 가끔 엄만 입버릇처럼

다음 생이 있다면 평범한 부모밑에서 결

혼같은 것도 안하고 평생 부모모시고 멋

지고 당당한 커리우먼으로 살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엄마가 시골에 

다녀오시더니 왠 여자애를 데리고 오셨

다 이모라고 하시며 앞으로 우리랑 같이

살거라고도 하셨다

엄마네 친정엄마가 재혼하고  낳은 딸,


엄마가 친정엄마를 그리워 하는 것을  

알게된 아빠는 전국방방곡곡 수소문 해

외할머니를 결국 찾으셨다

외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하고 

시집간 20대 딸하나와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랑 살고 있었다고


친정엄마를 만난 엄마는 기뻐도 하셨고

원망도 하셨고 만가지 마음이 뒤섞인 채

몇달을 할머니랑  왕래하고 지내셨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외할머니는

해 1년을 못 버티시고 지병으로 돌아

가셨막내 이모를 우리 엄마가 키우겠

리고 온 것이다


무슨 하늘의 장난 이었을까?

어렸던 나는 그때 이모가 미웠던 것 같

1남2여,,내가 장녀였고 내동생들은

이모오기 전까지 내말이면 다 들어주는

나와 대관계가 좋은 동생들이였는데 나

보다 2살 많은 이모라는 애가 우리집에

들어 오나의 입지가  의사와는 상관없

이 좁아진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사춘기때는 사실 엄마가 더 이해가 안 갔다

친동생도 아닌  동생을 친자매도 있는데 구

처해 데려오신 엄마를...


시간이 흘러 엄마가 말해서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를 만났던 그날 반가움도 잠시

속 원망질만 했단다 근데 1년도 같이

고 엄마가 갑자기 하늘나라 가니

서운하고 본인이 엄마한테 상처 준 말

만 기억이 나서  엄마딸을 엄마대신 양육

하며 엄보듯 하고 싶었단다


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이모한테 내

것을 다 뺏기는 느낌으로 자랐다

엄마의 사랑도 동생들도 내방도

엄마는 늘

"이모는 부모님도 안계시고 어린 나이에

쌍하니 우리 영이가 많이 양보 좀 해 줘!

마가 부탁할께"

하셨다 사실 내나이 9살, 나도 어린 나이였

다. 이모도 11살 나이에 우리가 아무리 잘

해 주었어도 가시감은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린 내가 보기엔 늘 엄마는 이모한

본인들 딸 보다 더 잘해 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들이 하나 하나 내안에 모여 시

아닌 시샘으로 쌓여 가고 있었다


사춘기시절 엄마가 교회 가신 저녁에 그 억

렀던 마음이 폭파했던 것 같다 이모랑 머

댕이를 잡고 싸웠다

이모가 키도 나보다 더 컸지만 그 당시 난

에서라도 이모를 꼭 이기고 싶어서

머리끄댕이를 놓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퇴근 해 오셨고 나는 아버

지한테 처음으로 맞았다


아버지한테 맞으면서도

"왜 나만 때리냐고 이모는 왜 안때리냐고

다 잘못 했는데 이모가 먼저 기분 나쁘

게 말했는데 왜 나만 때리냐고"

악다구니를 질렀다 그리고 고1 사춘기때

날, 딱 한번 가출을 했던 거 같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몰려 왔다 제일 친한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펑펑 울었더니 친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친구네 집에서 하루종일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엄마랑 아빠가  여러군데 전화 하시

다 친구네 집에 있는 나를 데리러 밤 늦게

오셨는데 안간다고 버티니,, 그냥 친구네

부탁하고 돌아 가셨다

그렇게 친구네서 하루 있다 집에 갔다 그뒤

로 난 말 수가 더 줄어 들었다 이모도 그 뒤

로 날 더 어려워 하는 것 같았다

어린 동생들과는 잘 지냈던 이모, 난 워낙

내성적이기도 했고 이모도 내성적이다 보

니,2살 차이나는 우린,,

처음부터 서로 대면대면 했다

친한 것도 친하지 않은 것도 아닌 그 어느

중간쯤에서 머물며 살았던 것 같다


맞벌이셨던 부모님이시라 장녀인 난 동생

에 비해 책임감도 많았고 집안일도 더

솔선수범 했다 이모가 같이 살게 되면서 그

부분어쩌면  공동으로 나눔을 해 준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난 늘 내것을 조금씩 조금씩 빼앗

기는 기분이 들었고 이러다 내가 사라질까

싶었다

그리고 자꾸 더 웅크리고 있는 나를 보게

었다 이모가 점점 미웠다


이모가 20살이 되었을때

"언니, 그동안 감사 했습니다 저 이제

독립할께요" 했다

이모는 미용사 자격증을 땄고 미용실

직 했다고 친구랑 같이 살기로 했다

집을 나갔다

엄마는 그날 하루종일 우셨지만 난 좋았

것 같다 다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 갔

뿐이였다 처음부터 이모는 우리 식구

아니였다


독립하고 이모가 간간히 연락을 했다 이

입장에서는 언니라고  연락조차 안하고

집가 잘 사는 친언니보다

자기를 돌봐 주고 늘 신경써 주는 아버지는

다르지만 엄마는 같은 큰언니가 늘 고마웠

던 것 같다


엄마는 가끔

"형편이 안되서 동생한테 해 준 것도 없는

데 언니라고 늘 챙김해 주고 때마다 연락

해 줘서 고맙다고 " 하신다

돌직구인 난 늘 뭐라한다

"엄마가 안 키워 줬으면 이모삶은 지금보

다 더 안좋아 졌을지도 몰라 이모는 평생

엄마한테 부모 대하듯 해야지,, 뭘 엄마가

못 해 줬다해"

하며 잔소리 한다


엄만 늘 내게도 그부분은 미안해 한다

"우리 영이가 힘들었던 거, 엄마가 알아

때 당시에도 알았지만 내자식이 아무래

더 편하니 부모잃은 이모를 더 챙겼던

같애 빨리 이집에서 적응하라고"


"엄마 내가 뭐 애야! 그땐 어렸으니까 서

운하고 그랬갰지 이젠 세월이 약이라고

각도 안나 우리 지금 행복하잖아 이모

 왕래하며 지내고 그냥 지금처럼 살자요"


우린 수원 토박이다

이모도 수원에서 자기 미용실 하며 산다

이모는 엄마랑 우리한테 평생 미용실 이

권이라고 하며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머리끄댕이 안붙들고 사이좋게

낸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드니 언제인진

르겠지만 이모의 삶도 참 딱하다 싶었

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도 이모의 삶도 그녀들의 의

와는 다르게 일어났고 그런 삶으로

밖에 없었고 그리 생각하니 다 안

러웠다

좀 더 삶을 윤택하게 살아 온 내가,,  그

들에게 미안함이 올라 왔다 그래서 그

후부터 내가 더 이모한테 한발자국 다

가섰던 것 같다


"이모, 난 사실 이모가 진짜 미웠다 어

릴때는 왠지 내거를 자꾸 빼앗기는 기

분이 들었던 거 같아 그래서 이모가 너

무 미웠어 그런데 지금은 이모가 좋아!

나 철들었나봐 늘 우리 가족 챙김해 주

고 무슨일 있을 때마다 자기일 처럼 도

와 주는 이모가 옆에 있어 힘이돼, 이

모 고마워 그리고 내가 미안해 앞으로

우리 행복하게 지내자"

하고 솔직하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나도 미안해 우리 그땐 너무 어려 둘

다 철이 없었다 아마 내가 너라면 나

도 너처럼 그런 기분 들었을거야 내가

더 미안하지 이모노릇 못하고 어린 조

카랑 똑같이 그랬잖아 너만 맨날 혼나

고 그게 더 마음 아팠어"

우리의 관계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

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이모는 그렇게 우리집의 큰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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