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나는 아버지랑 정이 별로 없다
같이 살며 살을 비비고 살아야 정이라는
게 드는 법인데 난 아버지랑 산 세월이
별로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
가 하늘나라 가셨다는 건 아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빙그레 회사
아이스크림 담당 부서에 다니셨다
아버지와의 기억은 6살에 한정되어 있
다 퇴근 때가 되면 검정 비닐봉지에 빙
그레 아이스크림&뚱뚱한 바나나 우유
를 손에 들고 퇴근하시던 아버지가 생각
난다 그때 기억이 행복했던 탓인지 난
나이 50이 넘어서도 종종 빙그레 아이
스크림과 빙그레 바나나 우유를 즐겨 먹
고는 한다
밑으로 4살, 2살 차이 나는 동생들이 태
어나면서 아버지는 삶의 더 나은 윤택을
찾아 그 당시에 사우디아라비아 중동 건
설팀에 지원하셔서 처음으로 해외에 나
가셨고 그때 그 순간이 평생을 가족과
떨어져 오랜 시간 해외에서 사는 계기가
되셨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기억이 6살이후로
거의 없다
동생들은 그 기억마저도 없이 살아 어
쩌면 더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을 것
같다
자식들 위해 더 나은 삶을 살아 가기
위한 부모님의 선택이셨고 그로 인해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아 왔다고
생각된다
우리 아버지는 참 선한 사람이다 그래
서 남한테 잘 속기도 하고 거절도 못하
시고 그런 성격 탓에 엄마가 많이 힘들
어 하셨다
그 당시에 중동에서 많이 벌어 오신 거
에 비해 우리 삼 남매는 많이 윤택하게
살진 못 했다
아버지가 친구 보증을 서시는 바람에
한동안 힘들게 살았고 아버지가,
국내에서 좀 뭣 좀 해 볼까? 하시고
사업했다가 안돼서 또 금전 손해를 많
이 보셨다
그렇게 아버지가 손해 본 돈만 모아도
그 당시 아파트 서너 채 값은 나온다며
엄만 힘들 때마다 하소연하셨다
어린 나는 엄마가 힘들어 할 때마다
해외에 계신 아버지가 미웠다
잠깐씩 나오셔서 사고만 치시고 다
시 해외로 나가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 휴가처럼 한 달
정도 나오셨다 가족들 선물들을 바리
바리 들고서..
그리고는 조금 정들라 싶으면 다시 나가
시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자식들 입학식&졸업식 한번,
생일이나 엄마나 우리가 아팠을 때도
한 번을 함께 해 주지 않으셨다
앨범 속 사진에 아버지랑 함께 찍은 사
진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
나이 70이 되셔서 야 모든 것을 정리
하시고 이제야 함께 사시는 아버지~
그동안 쌓아온 정이 없어서 그런지 우
린 아버지가 어색하다
아버지도 마찬 가지 이신 것 같다
오히려 어린아이들이면 선물로 관심
이라도 사지! 다 큰 자식들에게 눈치
아닌 눈치도 보시고 어려워하시는 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어릴 때 공부를 무척 잘하셨
다고 들었다 참기름 공장을 하시던 할아
버지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중학교 2학
년까지 학교를 다니다 돈을 벌게 되었
다고 했다 중화요리 집에서 숙식하는
조건으로 일을 배우고 품삯도 거의 못
받으며 20살때까지 근무했다고
그 덕에 중식,일식 자격증을 따셨고
평생을 요리하며 돈을 버셨다
중동 지역에서도 근로자들 식사를 담
당해서 그곳에서 생활했다
해외에서 너무 오래 사신 탓에 국내
에서 오히려 더 적응 못하시고 그럴 때
마다 다시 나가고 싶다고 할 정도셨고
아버진 해외 생활 탓인지 회화도 잘 하
신다
평생을 바지런하게 살아오셔서 그만
쉬시라고 해도 경비일자리라도 알아
보겠다고 하시더니 3년 전부터 작은
단지 경비일도 하신다
워낙 성실하고 인상도 좋으시고 바지
런 하시니 경비반장도 되셨다
아버지가 작년부터 걸음걸이도 조금
둔탁해지시고 손떨림도 계시고 해서
대학병원에 예약을 했다
전공의 부족으로 병원 예약을 하니
3개월이나 기다려야 했고 어제 드디
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엄마는 한걱정을 하시며
"아버지 큰 병이면 어쩌냐고"
아버지도 티는 안 내셨지만 긴장을 많
이 하셨는지 혈압체크를 하는데 혈압도
없으신 분이 180이나 나오셨다
이것저것 진찰 하시고 기본 검사만 했는
데 의사 선생님 소견상 <파킨슨 병> 의심된
다며 자세한 건 도파민 검사가 필요하니
검사예약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하셨다
올해로 74세, 평생을 남의 나라 타지에서
처자식 위해 살아오신 분이다
국내에 나오셔서 살게 된 건 4년 차,
조금씩 이제야 가족들과 사신다고 좋아하
신 아버지인데.. 다행히 암이 아니신 게 그
나마 다행이시리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아버지가 미웠
다 그리고 불편했다 그런데 뒤돌아 보니
아버지 또한 안쓰러운 분이셨다
난 우리 집에 장녀다
내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이러하면
동생들은 더 하겠지 싶어 조금씩 내가 먼저
아버지께 다가갔던 것 같다
언니가 (누나가)
솔선수범 본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아빠가 안 계셔서인지 우리 엄마는 우리
에게 더 엄하셨고 난 장녀답게 늘 동생들
에게 어른스러운 언니이자 누나였던 것 같다
가게일 하시는 엄마도 도와 드리고 집안
일, 동생들 돌봄도 내몫이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엄만 날 많이 의지 하
신다
그런 게 가끔 버겁기도 하지만 그냥 내
몫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 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초기에 발견되어 간 게 어디야?
의사 선생님도 아까 그러셨잖아"
동생들한테도 카톡을 넣었다
"아버지 파킨슨 병 진단받았고 평생
아버지가 우리 위해 돈 벌어 우리가
이만큼 성장했으니 이젠 우리가 아버
지를 살펴 드리자 나중에 부모님, 하늘
나라 가시고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자 하나 더 당부한다 아버지 불편
하다고 대면대면 하지 말고 천천히 다
가가면 좋겠다 ㅇㅇ,ㅇㅇ 야 사랑해"
"병원비 많이 나와서 어쩌니?"
"아빠, 그런 거 걱정하지 마셔요 아버지
가 평생 벌어 저희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 주셨으니 노년은 저희가 책임질께
요 지금처럼만 건강히 저희 곁에 있어
주세요 사랑해요 아빠"
아버지 손을 꼬옥 잡아 드렸다
입 밖으로 처음 내 보인 사랑한다는 표현에
아버지도
"우리, 큰 딸한테 늘 고맙고 아빠도 사랑해
딸"
해 주셨다
파킨슨병 진단은 받았지만 아마도 우리 가
족은 더 많이 단단해지고 서로 사랑할 것이
다 가족은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