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에 나는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그리고 새 가족이 생겼다
결혼 전에 나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름 아이들한테 인기 많은 교사였다
연년생을 둔 학부모님이 계셨는데
형을 가르쳤던 담임선생님이 너무
좋으셨다며 동생도 꼭 그 반에 배정
해 달라고 원장님께 부탁을 하셨다고
하실 만큼 아이들한테 늘 진심이었던
것 같다
동물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사람 없
다고 내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첫 명절을 치르기 위해 시댁을
내려갔다 난 도시에서 컸는데 남편은
충청도사람이었고 난 1남 2여였는데 남편
은 7남매였다
사귀는 동안엔 몰랐는데 결혼과 함께
우린 사사건건 가치관이나 생활패턴
차이로 많이 다투었던 것 같다
뭐 하나 맞는 구석이 없었다 그래도 딱
하나 남편과 내가 유일하게 통하는 건
둘 다 착한 사람이었다는 거
새벽부터 출발해서 도착하자마자 음식
준비에 나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던 것
같다 7남매에 조카들까지 모이시니
동네잔치상 차리듯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우리 집은 명절에도 단출하게 지내
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릴 때 빨간 통 다라는 우리 삼 남매 목욕
통으로 우리 집에선 썼던 물건인데 그 커
다란 빨간통에 콩나물을 수두룩 담아서
씻고 또 씻고 ,, 콩나물 씻다 팔이 떨어질
뻔했다
남편은 네 명의 누나랑 두 명의 형이 계셨
다 다 출가하셨고 애아빠가 막내이다
둘째 형이 남편이랑 10살 차이인데 정신
지체 2급이셔서 6살 지능이었다
시어머님이 임신 기간에 약을 잘못 복용
하셔서 형이 그렇게 태어났다고 애아빠
한테 들었다
아침식사를 다 차리고 대식구가 모여
식사를 하는데 둘째 아주버님이 보이
지 않았다
"자기야 둘째 아주버님이 안 보이시는
데.."
"형수가 다락방에 식사 챙겨 주셨을
거야 "
"왜 따로 드셔?"
"평상시에는 같이 먹는데 명절에는 손
님도 많이 들락날락하시고 형도 불편해
하기도 하고 늘 그래와서"
그 말을 듣고 난 솔직히 이해가 안 갔다
가족이 그것도 명절에 밥 먹는데 왜 더
보살핌 해 줘야 할 아주버님을 다락에
두고 아무도 신경을 안 쓰시는지,, 그
냥 늘 그래왔다고 하시는 게
거기 앉아 밥을 먹자니 자꾸 아주버님
이 걸려서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 다락방에 가서
"아주버님, 우리 내려가 밥 같이 먹어요
내려가면 맛있는 반찬도 여기보다 더
많아요 제가 챙겨 드릴게요"
하고 손을 붙잡고 내려왔다
"와 진짜 맛있는 거 많아요 제수 씨,
나 이것도 이것도 먹을래"
하고 아이처럼 신이 나 반찬을 손으로
마구잡이로 집는다
가족들의 미간을 찌푸리신다
"아주버님,, 착한 사람은 바르게 앉아
식사한대요 이렇게 떼쟁이처럼 하시
면 산타 할아버지가 미워하실 텐데.."
나는 마치 우리 유치원 아이들을 대하
듯 아주버님 눈높이에 맞추어 조곤조곤
이야기해 드린다
"재수 씨, 나 이쁘게 앉아 먹을게요 산
타 할아버지한테 말해 주세요"
어르신들이 말없이 밥만 드신다 우리
집은 밥 먹을 때도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먹는 데 시댁은 조선시대 양반집 식사
하듯 숨이 막힌다
막내며느리 독박 설거지 하고 있는데
남편이 슬그머니 부엌으로 왔다
부엌에 남자가 들어가면 어른들한테
한 소리 들어서 몰래 잠깐 온 거라고
"아깐 고마웠어 형 챙겨줘서"
"당연한 거 아니야 자긴 왜 안 챙겨
명절인데 더 챙겨 줘야지!"
"내가 어릴 때부터 늘 그래서 당연하
게 살아온 거 같아"
"그리고 지금이 조선 시대야 무슨
남자가 부엌에 못 들어오냐고 우리
집에선 아빠도 요리도 하시고 엄마
힘드시면 설거지도 해"
"내가 우리 집 가면 다 해 줄게 여기서
했다가는 너만 혼난다"
하며 나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