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고인돌이 산닥
나는 수원 도시 여자
애아빠는 충청도 부여 남자이다.
우리 아버지는 7남매 중 셋째
애아빠는 장손집, 7남매 중 막내였다.
동화책 속에
시골쥐와 서울쥐처럼 우리는 많은
것이 서로 달랐다.
결혼과 함께 그것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결혼과 함께 처음 맞았던 명절이 그
러했다.
우리 집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
했다. 우리 집에선 여자들한테 밤까
라고 안 하신다 그런 건 으레 남자가
늘 하는 일이다.
시댁은 조선 시대인 줄 ㅠ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뭐 이런 느낌이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대발이네
집처럼... 남자 상& 여자 상이 따로
였다.
종갓집이라 명절에 손님도 엄청 많
이 왔다 밥하고 설거지만 하루종일
했던 것 같다.
난 시댁에서 보낸 첫 명절에 집에 가
고 싶어 화장실에 가 울었다.
어릴 때 우리 삼 남매가 목욕할 때나
사용했던 커다란 빨간 다라,
거기에 콩나물을 씻어 본 적 있는가?
사람들이 하도 많이 오시니 반찬을
해도 완전 동네잔치상을 준비하는
지... 형님이 콩나물을 씻으라고 주
시는데 양이 많으니 빨간 다라에 씻
으라고 하셨다.
콩나물 씻다가 팔 아파 본 적 있는가?
내 평생 살면서 그렇게 힘든 중노동이
따로 없더라.
그런데 남편이 하나도 안 도와주고
본인은 깎아 준 과일 먹으며 담소
나누고 난 부엌에서 하루종일 부엌
대기였다.
20대 때 찢어진 청바지가 유행이라
청바지를 졸아하는 난 종종 입었는데
시댁에서 어르신들이 정색을 하시며
"얘야 가서 바늘이랑 실 가져와라 내
가 꿰어 줄게" 하셨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난 부엌대기 하
고 신랑은 늦잠자도 당연한 시댁,
결혼은 미친 짓이었다.
부여에 그렇게 유적지랑 볼거리가
많다던데... 낙화암
결혼 10년 차에 가 보았다.
어찌나 무심한 남편인지..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많이 양반
되었지만...
우리 집에선 여자는 보호해 줘야
할 대상인데 시댁에서 여자는 부
엌대기였던 시절..
남자는 돈 벌어오면 끝인 줄 아는
시댁 문화에 자라온 신랑은 처음엔
부엌에만 들어와도 경기하곤 했다.
신랑이 달라진 건 내가 둘째 낳고 허
리 디스크로 많이 아프기 시작하면
서이다.
마누라가 아프니 자연히 부엌에 들
어와 할 일이 많아진 것이다.
그 뒤로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런 문화에서 조금씩 탈피한 것 같
다..
시부모님이랑 우리 부모님은 24년
띠동갑이셨다.
시골 분들과 도시 분들이라는 격차
도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 역시도 사
돈 어르신들이 부모나잇대였기에
더 어려우셨던 것 같다.
그러니 나와 신랑이 교육관이나 가
치관은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우린 많이 다투었다.
난 남편이 이해가 안 되었고 남편
역시 내가 이해가 안 되었던 것 같다.
내 남편은 나랑 동갑이지만 말하다
보면 우리 부모님 시대에 산 사람
처럼 가끔 말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 역시 꼰대 남편과 사는 느낌이
든다.
가령 어릴 때 수박 서리, 했다는
남편을 보며
우리 친정엄마가 어릴 때 했다던
참외 서리 이야기가 떠오른다.
난 햄버거를 중학교 1학년때 처음
먹어 보았는데 애아빠는 20살 때
처음 먹어 보았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과 애아빠가
좋아하는 가수들 역시 나이차가 존
제한다.
애아빠가 좋아하는 가수들은 나보
다 우리 부모님 시대 가수들일 때
가 더 많다.
나는 종종 남편에게서 우리 친정
아버지 세대가 느껴진다.
무늬만 나랑 동갑이지 사고방식은
여전히 우리 부모님 세대에 사는
남편을 보면서 늘 답답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참 열심히도 살아 준 남편
부모 도움 없이 자수 성가한 멋진 남
편이다.
이젠 시댁 그늘에서 벗어나 나 역시
자유롭게 산다.
결혼은 때로는 미친 짓이지만,, 안해
보는 것보단 해 보길 추천한다.
독신으로 나이 들어 홀로 고독사 하
는 것보단 더 멋진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