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도 유통기간이 있다
난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한다.
한번 맺은 인연은 오래오래가는 편이
다. 나의 시절의 한 페이지를 함께 해
준 이들이라면 그 시간을 소중히 간직
하고 싶기에, 웬만하면 쭈욱 가자라는
마음으로 살아왔고 그 가치관에는 변
함이 없다.
난 평화주의자이다 갈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참을성도 많고 어떤 일이 생길
때 중재자의 역할을 주로 한다.
이런 내가 딱 한번 친구와 의절 한
사건이 있다.
요새 아이들말로 하면 내가 먼저 손절
했다. 참을 수 있는 한계의 수치를 친구
가 먼저 넘었기에...
오래 유지할 수 없단 사실에 내가 먼저
"나, 이제 너랑 친구 못 할 것 같다"
절교를 고했고 그 뒤로 그 친구와는 한
번도 만남을 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사귄 친구였고 친구와
헤어진 건 29살 때였다.
친구는 내 결혼식까지 와 줄 정도로 친했
다. 그럼에도 난 그 애랑 작별을 고했다.
친구는 개인적으로 아픔이 있는 애였다.
그래서 홀로 자기 안에 자기를 가두고 사
는 친구.
그런 친구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주었고
우린 조금씩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새엄
마랑 이복 남동생과 네 식구가 살았다.
아버지가 출근하면 새엄마가 그렇게 차
별을 하셨다.
아버지가 계실 때와 안 계실 때가 확연히
달라지는 그런 분이셨다.
친구는 빨리 커서 독립하고 싶어 했다.
그 집에는 자기가 설 자리가 없다고 느끼
는 아이였다.
어린 마음에 난 그 친구가 안쓰럽기도 하
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겉도는 것 같아서
많이 챙겨 주었던 것 같다.
늘 날 선 가시처럼 굴던 친구가 조금씩
유연해지고 우린 조금씩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공부를 잘했는데 대학 진학 대신
취직을 했다.
그곳에서 빨리 독립하고 싶어 했고 새엄
마가 대학 보낼 돈이 없으니 네가 알아서
가든지 말든지 하라고 하셨다고 했다.
우린 20대 때도 종종 만날 정도로 그 때까
진 좋은 친구였다.
우리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나의
결혼식날부터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2차로 친구들이랑 호프
집에서 놀고 3차로 나이트클럽을 갔다.
비행기 시간이 여유가 많이 남아서 신랑
쪽 친구들과 신부 쪽 친구들이랑 다 같이
노는 분위기였고 재미있게 놀았다고 들
었다. 그 당시에는
2주 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조심스레 내게
"ㅇㅇ씨가 내 친구 ㅇㅇ에게 자꾸 전화
한다던데.. 친구가 부담스러워하는데
말 좀 해 줘"
라고 했다.
"아! 그래 알겠어 내가 더 미안하네.
근데 ㅇㅇ씨가 직접 말하는 게 나은
거 아닌가! 확실히 본인 의사를 말해
주는 게, 자꾸 여지 준 거 아냐?"
"ㅇㅇ가 여자 친구 있다고 했는데도 전화
오고 문자하고 그런다고 하던데.."
"얘가 왜 그러지! 알겠어 "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내가 더 존심
도 상하고 신랑 친구분 한테 면목이 없
었다.
그날 내 친구랑 약속을 잡고 만났다.
친구에게 말을 했더니 당황스러운 답이
되돌아왔다.
"여자친구가 있단 거지! 결혼한 건 아니
잖아? 내가 결혼하자고 쫓아다닌 것도
아니고 그냥 좋게 지내보자고 한 건데
그것도 안되나 딱 내 이상형이더라고"
"네가 그러면 내 입장이 불편하지 않을
까? ㅇㅇ씨는 여자 친구랑 결혼까지 생각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마음을
접길 바란다 친구야!"
잠시 지나가는 피로연의 해프닝정도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친구는 마음을 못 접고 애
아빠 친구분 한테 계속 연락을 했고
급기야는 그분 여자 친구 하고도 싸움이 생
겼다. 그 사건 이후
친구는 마음을 접은 거 같았다.
그때도 내가 알던 친구가 맞나 싶었는
데.. 그 뒤에 또 그 친구를 감당 못 할
일이 생겼다.
첫 아이를 낳고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기를 좋아하는 친구는 올 때마다
바나나 퀵, 한 봉지를 사 왔다.
그리고는 저녁까지 늘 먹고 갔다.
"인영아, 나 돈 좀 빌려 줄 수 있어?"
"돈? 얼마?"
처음엔 3만 원을 빌려 달라 했고,
그 뒤로 계속 조금씩 액수가 커졌다.
나중에 제일 많이 빌려 준 게 35만원
이였다. 방 세가 모자라다고 해 할 수
없이 또 빌려 주었다.
2000년도 초반
남편 월급이 160 정도 되었던 때였다.
"ㅇㅇ아! 오늘까지 돈 준다고 했지?
나 오늘 돈이 필요해서 애기 예방 접종
도 해야 하고 오늘까지 부탁해"
"돈 없는데.. 그냥 내가 너네 집 갈 때
마다 애기 먹으라고 간식 사 갔잖아
그것도 따지면 꽤 된다 너,
우리 그걸로 퉁 치자!"
"뭐라고? 나 애아빠 몰래 네가 하도
급하다고 해서 빌려 줬어 이건 아니지
않니? 한두 푼도 아니고.."
"그럼, 뭐 어쩌라고 지금 당장 나도
돈이 없는데..." (적반하장)
내가 알던 친구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나 무례하고 예의 없는 친구의
모습에 나는 당혹함과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 던 그 친구가 맞나 싶었다.
며칠을 나는 생각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했다.
"ㅇㅇ아, 나 이제 네 친구, 그만하려고
전엔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의 호의와 좋았던 마
음이 너에겐 당연스러운 거로 받아진 것
같아서 나 그냥 너랑, 친구 그만하고
싶어
35만 원 안 갚아도 돼 그런데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우리가 진짜 친구라면..
너 우리 집 놀러 올 때마다 하루 종일
애보고 힘들었는데도 너 그냥 안 보내
고 저녁해 먹여 보냈어
그런데 30 만원 갚기 싫어 퉁치자고
하니?
내가 너한테 준 마음까지 다치게 하면
서.. 우리 다신 보지 말자"
그 뒤로 난 그 친구와 내 인생에 단 한
번의 절연을 하였다.
그 친구가 왜 그리 달라졌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내가 좋아했던 순수하고 여렸
던 친구만 기억하고 싶다.
그 뒤로 친구 역시 35 만 원을 갚지도 않았
고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냥 가난한 이웃에게 기부 한 셈 치고 살
아왔다.
몇 년 전에 그 친구 소식을 다른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다.
유부남이랑 사귀다가 회사에서 안 좋게
퇴사당했다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그 친구를 위해 늘 기도 한다.
힘들 게 산 만큼 그 애가 행복했으면 좋겠
다고..
그때 일로 그리고 하나 배운 게 있다.
친한 사람일수록 돈거래는 안 하는 거라는
거다.
돈으로 사람을 잃게 될 수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