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가 소일거리로 신청한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 줍기 일을
하시게 되었다.
부모님 집보다 우리 집에서 더
가까운 거리이다 보니 매일 엄마가
도시락을 싸 드리는 것보다 차라리
딸네집에 들러 점심을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난 아빠와의 추억이 없다.
아빠와의 추억은 고작 내 나이
6살 때에 드문 드문 기억나는 게
전부이다.
오랜 시간 해외에서 생활을 하신
아버지가 고국에 나와 한국에서
정착해 생활하신 게
한 3~4년쯤 되었나 보다.
아예 아빠와의 기억이 전무한
동생들은 감흥이 없었는지 모르나
나는 너무 좋았다.
그동안 나누지 못한 부녀의 정을
더 늦기 전에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시간은
등으로 말하고..
어머니의 세월은
굵어진 손마디로 말하는 것 같다.
어린 기억 속 아버지는 다정하신
분이셨다. 퇴근하고 오실 때면
늘 검정 봉지 안에 내가 좋아하는
과자랑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시계도 못 보던 아이는 늘
"엄마, 6시야?"
"엄마, 지금은 몇 시야?
"6시 언제 돼?"
6시에 퇴근해 오시는 아빠를
문지방에 걸터앉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
딸이 챙겨드린 점심을 맛있게
드시는 아버지를 보니 뭉클했다.
희끗희끗해진 머리칼과 쳐진
눈가, 자글자글해진 이마의
주름까지 오늘따라 왜 그리도
잘 보이는지
"우리 딸, 엄마 닮아 음식도
잘하네"
"아빠, 나이 들어가는 게
서글프지 않아? 난 요새
부모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자꾸 슬퍼"
"아빤 안 슬퍼! 단지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부자연스럽지"
"그럼 다행이고.. 아빤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아빤, 요즘이 그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사니까!"
가족 위해 타지에서 오래 사신
아빠도 사실은 우리랑 살고
싶으셨겠구나!
가끔은
아빠를 많이 미워했다.
엄마와 우리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왜 한국에서
정착하지 못하시고 외국에서
생활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나이가 먹나 보다.
이젠 조금은 알 거 같으니 말이다.
"딸, 아빠 점심 신경 쓰느라
힘들지? 그냥 아빤 김치에
물 말아먹어도 좋으니 대충 줘"
"뭐가 힘들어.. 평생 못 해준
밥도 해 드리고 아빠랑 점심도
같이 먹어서 난 좋은데..."
엄마한테 저녁에 전화가 왔다.
"역시, 장녀는 장녀네!
아빠가 고마워하더라!
엄마가 더 고맙네. 딸~"
"고맙긴.. 이번 기회에 평생
못 나눈 부녀정 나누는 거죠!
엄마는 별일 없지? 엄마도 이제
집안일 좀 그만 쉬엄 쉬 엄해"
나는 오늘도 감사하다.
이런 기회로 아빠랑 더 친해질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