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고 15개월 동안 여행을 하면서
은근히 기대했던 것들이 있었다.
어딘가에서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될
어린왕자와 같은 현자를 만나게 되지는 않을까?
아니면 나를 금은보화에 파묻히게 할
보물선 같은 아이템을 발견하는 건 아닐까?
혹시,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나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뒤바꾸고
삶을 극적으로 전환시킬 깨달음을 얻을지도 몰라.
어쩌면 이런 기대들은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이고
좋다는 직장을 그만둔 것에 따른,
조금은 계산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유치한 보상심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경쟁과 외적인 성과보다는
묵묵한 과정과 내적인 성장을 위해
떠났던 여행에서도 나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성과와 외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듯도 하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린왕자, 보물선, 해골물 같은
깜짝 놀랄 일들은 안타깝게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가만히 관찰해보면
예전의 나와는 분명 다른 면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여행 중의 경험들, 만났던 사람들,
그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원래의 나와 어우러져
시선의 폭과 사고의 깊이가 더해짐을 느낀다.
여행으로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여행의 모든 것들이 은근슬쩍
나에게 조금씩 스며들어서
나를 천천히 변화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세르비아에서 알바니아로 가는 도중에
마케도니아에 들러 5일 동안 여행했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Skopje)와
호수로 유명한 관광지인 오흐리드(Ohrid)만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수도와 관광지에 집중된 여행을 꺼린다.
수도와 관광지는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데다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상당 부분 꾸며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코페 역시 그랬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중심가,
위인들의 동상과 박물관으로 구성된 관광명소,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상점들은
수도로서의 스코페가 갖고 있는
예측 가능한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스코페의 아름다운 산은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안개와 구름이 살짝 덮인 산과 나무들은
사람들의 주거지를 안락하게 감싸 안았다.
이처럼 여행지 어디에나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생각의 폭이
조금 넓어졌다는 것을 느낀다.
수도와 관광지가 비슷하고 작위적이어서
내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어딘가에 색다른 매력이
숨어 있을 거라는 호기심과
그 매력을 찾아보고 가치를 부여하는
관대함이 원래의 나에 더해졌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그 산에서 하이킹을 했을 텐데.
스코페에 다시 가 보고 싶다.
나는 실존했던 인물들의 동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그들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과
추모의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만,
특정한 가치관을 강조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도
동상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동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고,
자신의 앞에 결집하게 하고,
혁명, 충성, 발전 같은 가치를 내면화하게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동상에는 신비롭고 강력한 주술적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동상을 경계한다.
스코페에서 엄청나게 큰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을 마주했을 때도
처음에는 부정적인 생각뿐이었다.
23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영광이
약소국인 현재의 마케도니아가 처한 문제들을
희석시키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저
책상 앞에 앉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한가로운 훈수에 불과할 수도 있다.
동상이 국민들을 뭉치게 해서 사회를 안정시키고,
관광객을 불러 모아 경제에 도움을 준다면
동상이 거는 주술쯤은 걸려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것에는 선과 악이 있고,
어떤 것이 더 무거운지
객관적으로 계량해 줄 저울은 없다.
나와 아내에게 마케도니아가 각인된 건
쌀 때문이었다.
유럽에서는 질 좋은 쌀을 구하기가 어려운데,
불가리아 여행 중에 먹었던
쌀이 너무나도 맛있었다.
야채가게 주인이
마케도니아 쌀임을 알려주었을 때,
나중에 마케도니아에 가게 된다면
꼭 쌀을 사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스코페의 시장을 찾았고,
꿈에 그리던 마케도니아 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쌀이 주식인 나라에서 살면서도
마케도니아의 쌀이 맛있는지
평생 알 수나 있었을까.
시장에서 만난 터키인 아저씨는
우리가 자주 추억하는 사람이다.
양말가게 터키인 아저씨는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형제의 나라라며 반가워했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과 터키가 대결했던
3,4위전 이야기도 펼쳐졌다.
나는 기억을 짜내
그 경기에서 뛰었던 터키 선수들인
하칸 수쿠르와 일한 만시즈를 언급해
아저씨를 놀라게 했다.
아저씨가 아내에게 선물한 양말에서는
정이 듬뿍 느껴졌다.
두 달 후 계획에 없던
터키 여행을 가기로 한 데에는
그 아저씨와의 추억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불가리아에서 만난 쌀은
우리를 마케도니아로 보냈고,
마케도니아에서 만난 터키인 아저씨는
우리를 터키로 보냈다.
우리는 그 아저씨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잘 알려진 관광지에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오흐리드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진을 치고 있던 택시들은
우물쭈물하는 우리를 노리고
다짜고짜 흥정을 시도했다.
관광객들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들을 물리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들의 인내심도 굉장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내심은 단호함까지 장착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답게,
숙소로 향하는 길은
포장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돌길이었다.
꽃보다할배의 백일섭 할아버지처럼
짐을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이겨 내야 했다.
그렇게 참아가다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호수를 마주할 수 있다.
1천만 년 전에 형성됐다는 오흐리드 호수는
원시적인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잔잔한 호수는 겉으로 보기에
한없이 온순해 보이지만,
수백만 년 동안 물고기를 잡던
인류의 조상에서부터
관광업에 종사하는 현재의 인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명들을 먹여 살려왔다.
호수를 지키고 있는 작은 성당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호수 밑바닥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것 같은 느낌이다.
아, 어쩌면 이런 쓸데없는 공상들은
오흐리드 호수를 대하는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흐리드 호수는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오흐리드에서 숙박했던
에어비앤비의 주인 부부는 쾌활하고 사교적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큰 와인 한 병을 흔쾌히 선물했고,
오흐리드에서 해야 할 것들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무엇보다 오흐리드에서 잡히는
물고기 요리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추천했다.
사실 나는 낯선 음식에 잘 도전하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생선 요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낯선 생선 요리를 먹기로 결정하는 건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일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큰 결심이 필요한 도전이었다.
여행이 선사하는 들뜸은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시켜 준다.
평소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그래서 지켜만 봤을 일들이
여행지에서는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도전해 봤던
오흐리드의 물고기 튀김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물고기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먹어볼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입맛에 맞지 않아 좀 남기더라도 걱정 없다.
물고기를 던져 주자마자
깨끗이 먹어 치우는
고양이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으니까.
여행이 내 삶을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극적으로 바꿔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행은 사고의 폭을 확장시켰고,
섣부른 판단은 보류하게 했다.
소소한 경험들을 소중히 여기게 했고,
인내심을 길러 주었다.
그리고 도전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부디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마케도니아를 여행한 5일 내내
해를 볼 수 없었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다가
짙은 회색빛 양탄자 같은 두꺼운 구름 떼가
하늘을 완벽히 가리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마케도니아를 떠나기 하루 전날,
오흐리드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해를 목격할 수 있었다.
구름의 틈이 잠시 벌어졌을 때,
그 사이로 나타난 태양은
참았던 빛을 모두 내뿜을 기세로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마케도니아와의 작별 인사는 강렬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케도니아를 떠나
알바니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