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찰녀의 말뚝을 뽑은 사나이

by 이철

문성공주 사후 160년, 티벳의 한 짠푸(讚普, 티벳 말로 왕, 황제라는 의미)는 본교를 믿어 불교를 배척하려 하였다. 그는 본교의 세력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나찰녀의 관절 마다 밖아 넣은 말뚝을 없애버렸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토번은 사분오열되기 시작하였고 그 자신은 토번국의 마지막 짠푸가 되고 말았다. 그가 바로 랑다마(朗達瑪)이며 799년에 태어나 842년에 사망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신라 제42대 왕인 문성왕 재위 기간에 해당된다. 신라는 당시 중앙집권 체제가 약화되고, 귀족 간 권력 다툼과 반란이 빈번히 일어나며 국력이 점차 쇠퇴하고 있었다. 또 바다의 왕, 장보고가 사망한 직후이기도 하다.

스크린샷 2025-09-09 174556.png 랑다마(朗達瑪)

160년간 억눌려왔던 본교는 이때 다시 교세를 떨치며 일어났고 불교도들은 이들의 압박을 피하여 은둔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조심조심 불법을 전하며 자신들이 불교도임을 내세우지 않았는데 이러한 태도가 티벳 불교를 밀종(密宗)으로 불리우는 계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본교와 티벳 불교, 이 두 종교는 매우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아 종교계와 백성들 모두 분열하였고 혼란스러웠다. 티벳 밀종 또한 서로 서로 분리되어 수련하면서 서로 다른 교파로 분열되었다. 예를 들면 위구르 지역에 가까운 샤자(萨迦)파는 중국어로는 화교(花教) 또는 화화교(花花教)로 부른다. 승려가 입는 가사의 색깔이 여러 색을 모자이크처럼 붙여 이어 지었기 떄문이다. 노란 색 가사를 입는 황교의 원래 이름은 자당(噶當)파인데 지금의 달라이 라마가 속한 교단이다. 서부 지역에 세력이 많았던 가쥐(噶舉派) 파는 백교로서 하얀 가사를 입는다. 남부에 자리잡은 닝마(寧瑪)파는 홍교로서 황교에 이어 두 번째로 세력이 큰 교단이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 대륙에서 사라진 흑교가 있다. 흑교는 청나라 말기 베이징 등에 있다가 사라졌다. 후에 타이완 출신이지만 베이징에서 자라며 흑교의 전승을 이은 린윈(林雲) 대사가 흑교를 다시 열었는데 지금은 열반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주젠리런보체(朱笕立仁波切)가 흑교 법왕의 법통을 이어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린윈선사를 계승하였다.

스크린샷 2025-08-22 071551.png 젠리런보체(朱笕立仁波切)

https://www.worldjournal.com/wj/story/121375/8254475?from=wj_catelistnews_index&zh-cn


린윈 대사는 사실 형식 상으로는 정식으로 출가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어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나 적어도 현재까지 세상에 흑교의 사찰이나 라마는 나오지 않았으니 그가 흑교를 대표하고 있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린윈 대사는 어릴 때 집 근처인 베이징의 용허궁(雍和宮)에서 장난질 하다가 종종 라마승에게 잡혀서 벌로 불경을 읽고 진언을 외우곤 했는데 나중에서야 흑교의 가르침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흑교는 출세법(出事法), 즉 진언이나 밀법 수행을 중시하여 과거에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마교로 불리기도 하였다. 즉,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서장의 마교는 바로 이 밀종 흑교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린윈 대사는 생전에 이런 세간의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한 말 중 하나가 필자에게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는 '사교'도 '교'이며 '방문(방문좌도의 의미)'도 문이라 라고 하며 세간의 비아냥을 개의치 않았다. 밀종 흑교에서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 예를 들어 개신교의 전도사가 기독교를 믿으라고 선교하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성실하게 들어 보라고 가르친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들어서 기독교의 가르침이 맞다는 생각이 들으면 기독교를 믿으라는 것이다. 걸핏하면 성경을 들고 다니며 예수 믿으라고 외치는 개신교와는 달리 흑교 등 밀종에서는 수련이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가 함부로 선교를 하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자신의 수양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의 지나친 선교 태도에 질려있는 필자에게는 매우 신선한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티벳 현지에서 필자는 용케 지금은 몇 개 남아있지 않은 본교의 사찰을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불교의 법당과 힌두의 예술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만일 사람들 사이가 좋았다면 두 종교는 하나의 줄기에서 열린 두 개의 가지로 공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불교의 캐릭터와 분교의 캐릭터는 많이 겹친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는 종교와 민심마저 찢어버린 것이다.


티벳은 랑다마 이후 400여년간 본교와 불교 사이의 갈등을 거듭하였다.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이념이 장기간 충돌을 하니 국력은 날로 쇠하여 갔다. 우리 나라의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도 수십 년 동안 싸우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지속하다가는 티벳과 같은 꼴이 될 것만 같아 걱정이다. 랑다마(朗達瑪)가 밀종을 배척한 것에는 사실 수 백년간 밀종의 세력이 커지면서 밀종 사원 세력이 커진 것과도 관계있어 보인다. 즉, 승려와 귀족의 권세가 강해지고 그들은 왕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니 왕실의 세력이 취약해 진 것이다. 이것은 고려에서 불교가 횡행한 것을 풍수지리를 하는 요승 신돈을 척결했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사실 우리나라 불교는 고려 시대까지 밀종이었다고 생각된다. 풍수지리는 전형적인 밀법의 한 갈래이며 조선 초 무학대사의 마술이나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이야기도 모두 밀종의 냄새가 짙다.


랑다마(朗達瑪)가 밀종을 배척하고 본교를 다시 세우려 한 것은 별다른 큰 이유없이 고려 왕실의 명령을 배반하고 위화도 회군을 하여 자기의 나라를 세운 이성계가 당시 세력이 강한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세우려 한 것과 유사하다. 다만 당다마가 불교를 본교로 일대일로 대치한 것에 비해 이성계는 사회적 세력이 강했던 불교를 세속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선종 세력이 밀종을 대체하게 하고 군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유교를 속세의 이념으로 분리한 것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당위를 인정받기 어려운 찬탈, 즉 반역을 한 이성계는 즉시 명나라에 신하를 자청하여 보호를 받고자 하였고 이렇게 하여 단군 이래 독립된 제국이었던 우리는 명 황실의 신하국이 되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조선이 사실상 독립 국가였다고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주황실부터 제후국은 독립적이지 않았는가? 명실 상부한 독립 제국이었던 우리가 명 황실의 제후국이 된 것은 역사적 사실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율곡의 글이나 발언에 중도 명 나라의 신하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읽은 해동소학을 보면 이율곡의 발언 중에는 우리나라라는 의미로 '중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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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은 티벳이 중국에 병합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1949년 10월 중국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중국공산당은 티벳 통합을 최우선과제로 설정하였다. 그리고는 6.25가 일어난 직후 전세계가 한반도의 전쟁에 집중할 때 1950년 7월 티벳에 무력 진입을 하기 시작했다. 10월에는 인민해방군 4만여명이 공격했으며 1951년 5월 티넷은 중국이 주권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되 티벳이 자치권을 가진다는 17개조 협정을 중국과 맺는다. 중국의 지배에 항거하는 민중 봉기가 일어나자 중국은 1951년부터 티멧에 지속적으로 군대를 보내고 토지개혁을 하며 티벳에 중앙 행정 기구를 확대하였다. 그리고 1959년 라사에서 중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에 망명한 것은 바로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자신이 티벳에 계속 있으면 이런 사태가 지속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지금은 티벳 나찰녀의 관절에 못을 밖은 말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유물론을 믿는 중국 정부가 전설을 믿고 쇠말뚝을 다시 밖어 넣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중국 공산당은 유물론을 믿기에 우리와는 다른 판단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UFO다. 미국 정부가 UFO의 존재를 부정하는 반면 중국 공산당은 UFO가 출현하면 뉴스로 보도한다. UFO가 떨구고 간 것으로 보이는 물체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도하기도 한다. 유물론에 입각하면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고, 실체가 존재하면 인정하는 것이다. 인민들이 쇠말뚝을 밖아야 한다고 믿으면 그 이유는 믿지 않더라도 인민들에게 그러한 요구가 있다는 '현실'은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 공산당이 다음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자신들이 찾겠다는 입장을 취할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튼 티벳은 신비로운 일들이 많은 땅이고 나찰녀의 전설이나 쇠말뚝의 전설은 우리와 같은 공상가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런 일들을 배경으로 소설을 구성하고 또 써보고 있는데 아직은 필력이 모자라 성에 차는 글이 나오지 않고 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지도와 제언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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