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송데첸 (赤松德赞)
1235년 어느날 샤자(萨迦)파, 즉, 화화교의 법왕 쑤난젠잔(索南堅贊)은 비나야카 법을 수련하다가 비나야카를 관공하였다. 비나야카(Vināyaka)는 산스크리트어 “Vināyaka”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는데 힌두교에서는 가네샤(Ganeśa)로 여겨지고 있다. 가네샤는 힌두교의 주요 신으로, 코끼리 머리를 가진 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교에서의 비나야카는 흰두교와 약간 성격이 달라져 가네샤와 유사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때로는 부(富)와 번영을 상징하는 신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일부 경전에서는 수행을 방해하는 마신(魔神)으로 간주되기도 하며, 이를 제압하는 의식이 존재한다. 즉 광야에서 예수를 사탄이 시험하였듯이 수련자를 시험에 빠뜨리기도 하는 존재인 것이다.
밀종에서는 비나야카를 대일여래로 보기도 하고 관자재보살로 보기도 한다. 또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도 있고 재물운을 가져다 주는 재신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에 따라 또는 지역에 따라 비나야카에 대한 해석이 다른데 이는 뻔교가 원시 종교에 가가워 고래의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크고 지역의 승려나 샤먼에 따라 영적 현상에 대한 해석이 갖가지인 때문을 것이다. 이런 비나야카에 대한 여러 부처관 가운데 하나가 환희자재천(歡喜自在天)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비나야카를 자재천, 또는 환희천이라고 부르며 섬기기도 한다.
관공(觀空)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해당 존재를 느끼고 실재를 보는 경험을 말한다. 일종의 유체이탈 같은 것으로도 해석된다. 밀종에서는 무상유가 등의 수련에서 원신이 자신의 육체를 이탈하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현세 뿐만 아니라 영계도 방문할 수 있다고 본다. 쑤난젠잔이 이렇게 관공을 했을 때 비나야카가 코로 자신을 감아서 높은 곳으로 올렸고 수미산의 정상에 올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빨리 와서 보도록 해라~"라는 것이었다.
쑤난젠잔은 황망하여 저 먼 세상까지 보지 못하고 그저 티멧의 남부 지역 만을 볼 수 있었다. 그러자 비나야카가 말하기를 본래 네가 본 모든 지역이 너의 통치 범위에 귀속될 것이었는데 애석하구나 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네가 본 위(衛), 장(藏), 강(康) 3개 지역을 너에게 남겨 너의 후손들이 다스리게 하마 라고 했다. 이들 지역은 각기 티벳의 서남부, 중남부, 동남부를 말한다. 하지만 쑤난젠잔은 나이가 오십이 넘었고 당시 나이로는 할아버지도 한참 할아버지다. 그래서 쑤난젠잔은 나라나 통치는 원치않으니 아들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하자 비나야카는 아무 말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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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난젠잔과 멀리 떨어진 땅에 살던 샤자(萨迦)파의 한 고승 싸둔르빠(薩頓日巴)도 관공 중에 비나야카를 보았다. 비나야카는 싸둔르빠에게 말하기를 쑤난젠잔에게 위(衛), 장(藏), 강(康) 3개 지역을 다스리게 했는데 본인은 인연이 없고 그의 아들만 인연이 있구나 라고 했다. 네가 쑤난젠잔에게 가서 그의 아들로 태어나거라 라고 하였다. 중생을 교화하여 더 이상 살육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해다는 것이다. 싸둔르빠는 원컨대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는 이 일을 기록했고 멀지 않아 원적하였다. 그리고 쑤난젠잔의 아들로 전행하였다.
52세에 아들을 얻은 쑤난젠잔은 매우 기뻐했다. 늦게 얻은 이 아들은 너무나 총명하여 3살에 진경을 읊었고 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이 싸둔르빠의 전생이라고 직접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는 소위 오명(五明)이었는데 다섯 분야에 밝다는 뜻으로 큰 오명으로는 성율학(声律学), 정리학(正理学), 의학(医学), 공예햑(工艺学), 불학(佛学)이 있고 작은 오명으로는 수사학(修辞学、), 사조학(词藻学, 시문 등의 문체를 연구하는 학문), 운율학(韵律学), 희극학(戏剧学), 성상학(星象学)이 있다.
티벳 -사람들은 이 아이를 빠스빠(八思巴), 즉 티벳 말로 성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빠스빠는 바로 쿠빌리에 칸을 도와 칸의 지위를 이어 원 나라를 건국하도록 도운 티벳 승려이다. 말하자면 이성계의 무학대사 같은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가 어릴 때 원래 그의 제자였던 두 라마승이 동네에 들어서자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던 빠스빠는 곧바로 이 두 승려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너희가 왔는냐? 라고 했다고 한다. 티벳에 많이 있는 전생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두 승려는 즉시 스승에게 절을 하였다고 한다.
복장(伏藏)은 이런 전생에 관련하여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티벳 불교의 개념이다. 복장은 고승이 입적할 때 후인이 자신의 전생을 찾을 수 있도록 남기는 여러 실마리를 말한다고 알여져 있는데 사실 이에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법기나 불경, 때로는 중요한 물건들을 담벼락 속이나 건물 바닥 또는 천장 등에 숨기기도 하고 불상이나 탑 안에 숨기는 일도 많다. 이런 경우 당시 소임을 다 한 법물로 속세에 있어서는 안되거나 후대 중요한 시기에 나타나 사용될 수 있도록 숨긴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래의 중요한 용도를 위하여 현재에서 감쳐두는 행위인 셈이다.
원래는 아무도 모르게 미래 언젠가 필요한 떄를 위하여 감추어 두는 관습이었던 겉 같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gter-ma(테르마)'라고 하며, 발견자를 '테르톤(伏藏師)'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복장으로 묻어둔 물건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는 것 또한 인연이 있는 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 또한 특별한 인물로 생각되는 것이다. 1920년 본교의 대사제 총쬐이(瓊追) 대사가 총룽인청(穹窿银城)을 발견한 후 거기에 절을 짓고 평생 머무른 것도 총룽인청이 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테르톤으로서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후대에 와서 이 전통은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사리나 귀중품을 넣는 습관으로 바뀐다. 원래 비밀리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감추어지던 물건들은 꼭 사리나 귀중품이 아니었다. 문서인 경우도 있고 마귀를 물리치는데 필요한 도구인 경우도 있었다. 그것이 왜 언제 필요한지 알 수 없는 물건일수록 복장의 필요가 컸을텐데 사람들이 추측하기 어려운 물건들이었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세속에 물들어 갈수록 사찰에서는 값비싸거나 사찰의 명성을 증명하는 이런 물건들을 불상 안에 넣는 것으로 변질되어갔던 것이 아닐까?
복장에 대한 티벳 불교의 이야기 중 유명한 것이 롄화셩(莲花生, 로마루나르바) 대사의 이야기이다. 롄화셩 대사는 원래 천축국 사람으로 티벳에 들어간 후 25명의 각지 왕과 신하들을 불교에 귀의하게 만들었다. 불교의 시각에서는 이렇게 전해지지만 속세인의 눈으로 본다면 바로 문성공주와 혼인하여 본교를 불교로 압도하려 했던 트리송데첸 (赤松德赞) 왕의 의도이다. 아무튼 티벳 불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기에 롄화셩 대사의 티벳 불교 내의 위치는 매우 높다. 이 롄화셩 대사는 트리송데첸에게 건의하기를 앞으로 백성들이 종종 사악한 자들의 꼬임에 빠져 불법에 장애를 가질 수 있으니 복장을 하여 밒료한 때 다시 불법이 행해지도록 하자고 했고 왕은 이를 받아들였다.
롄화셩 대사의 뜻에 따라 티벳의 각지에는 불법을 위한 여러 복장이 감춰지게 되었고 훗날 필요할 때 세상에 다시 나타나도록 인연지워졌다. 복장에는 18종류가 있었다고 하며 한 종류마다 5종의 원만(圆满)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복장을 하는 복장사의 암호, 복장 매장의 암호, 복장 자신의 암호, 복장 심오함의 암호, 그리고 복장을 지키는 암호 등이다. 복장을 하는 복장사는 여러 자격을 갖추어야 했는데 우선 왕족 또는 귀족의 공덕이 있어 위대한 씨족의 후예여야 했고, 신체가 원만 길상의 위엄이 있어야 했고, 각종 지식과 지혜를 갖추어야 했으며, 현종과 밀종 양 교단의 불법에 통달해야 했고, 일체의 표상의 의미를 알아야 했고, 높은 수준의 깨달음이 있어야 하며, 용맹한 본성이 있어 중생을 심복하게 해야 했고, 변론을 잘해 악인의 말을 제압할 수 있어야 했으며, 마지막으로 법과 법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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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복장들은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탐욕이 판을 치거나, 기아로 사람들이 굷주릴 때, 질병이 횡행할 때, 사람들이 우매함에 빠질 때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복장 중에는 불법, 진언, 술법, 그리고 의학 지식 등이 포함되어 있어 필요한 법보가 나타나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복장이 다시 나타나 사용하게 되는 경우 해당 복장을 대신할 새로운 복장으로 대신하여 매장하던지 아니면 사용한 복장을 다시 비밀리에 매장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나라 석가탑에서 다라니경이 발견된 것도 이런 복장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석가탑에 다시 새로운 복장이 들어갔을까? 필자는 그랬기를 바란다. 삼국 시대 우리 불교 또한 선종이나 현종보다는 밀종에 가까웠고 그러니 석가탑의 다라니경 또한 복장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라니, 즉 진언인 점도 이를 시사하고 있다.
이야기는 당시 롄화셩 대사가 티벳 각지에 엄청나게 많은 복장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연히 맗은 물적, 인적 자원이 투입되었을 것이고 반발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복장을 하면 언제 다시 사용되느냐고 롄화셩 대사에게 묻자 이번 왕 다음 110대가 지나고 나면 사용될 것이라고 하였다. 수십년의 기아가 휩쓸고 난 후 나타날 복장 등을 예로 들었다고 하는데 듣는 사람들로서는 자신의 복장이 터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복장이 세상에 출현한다는 것은 재앙이 있다는 것과 동의어이며 복장을 건드리지 않는 시간이야 말로 태평한 세월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롄화셩 대사는 그때가 되면 라다크 북부 초와쟈나 지역에 흉년이 한 세대에 걸쳐 수십년간 발생할 것인바, 그때 로우거갈(洛吾格嘎尔)의 복장이 예언에 따라 나타날 것이며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이떄의 복장사의 이름은 삼제 라마(做桑杰喇嘛)이라고 말했다. 또한 삼제 라마가 원적하면 큰 불이 일어나 많은 이들의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 부나자르(布纳札日)에 남겨 두었던 복장이 발굴될 것이며 이떄의 발굴사는 자루자(嘉洛札)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롄화셩 대사의 예언은 계속되었다. 바로 기독교의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어쩌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이야기는 역사와 함께 계속된다. 몽고군과의 항쟁에서도 지속되게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티벳 사람들은 환생과 함께 이 복장에 얽힌 이야기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복장 이야기는 다바오(大宝) 법왕의 이야기이다. 티벳의 고승인 그는 15살인 1999년 겨울 중국 공산당의 감시를 피해 달라이 라마가 있는 곳으로 도피를 한다. 그의 곁에는 단지 두 사람의 호법승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칭하이 지역을 지나면서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앞에 있던 큰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칭하이에는 많은 호수가 있다. 추운 겨울에는 당연히 아무도 물 속으로 걸어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무엇인가를 느끼고 호수 속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호수 바닥을 이리저리 짚자 무엇인가 손에 걸려나왔다. 그것은 왕홀이었다. 손잡이 부분에는 세 면에 명왕의 얼굴상이 조각되어 있었고 끝 부분에는 말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바로 삼면마두명왕추(三面馬頭明王杵)로 293년 전 6대 달라이 라마가 칭하이의 어느 호수에서 잃어 버린 것이었다! 당시 어떻게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보물을 15세의 다바오 법왕이 찾은 것이다. 기적이라 해야 옳을까 아니면 윤회와 복장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일까?
https://www.youtube.com/watch?v=h8SHWxDZTKc
필자는 따질 생각이 없다. 필자는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아왔고 적어도 아는 대로 말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거짓을 말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얼마나 필자의 인생을 어렵게 해 왔는가? 이제 은퇴한 엔지니어로서 필자는 사고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 복장이 진실이든 아니든 이런 시기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상상력의 세계를 선물하고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이제 필자는 이런 정도의 여지와 여유를 가지고 싶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