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년이든 1만 8천년이든 신비롭기만 하다.
1만8천년 전의 히말라야 문명을 보여주는 궁룽인청(穹窿銀城)에서 꽃 피운 문명은 샹송 문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강인파제 봉우리 지역에서 융성했던 샹송 문명은 이제 샤먼의 복장에서 옛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이 샹송 문명이 세계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며 이중 황허 쪽으로 나간 이가 한족의 기원인 황제하고 주장하기도 한다. 황제가 쓰고 있는 면류관(冕旒冠)이 바로 샹송 문명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저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이 근거일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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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알리 지역의 궁룽 은성(穹隆銀城) 유적과 해발 5,000m 동굴의 암각화, 대규모 무덤군은 샹슝 문명의 발달된 경제와 문화를 증명한다. 1938년, 나치 독일은 샹슝 문명과 아리아인 혈통설을 연결지어 티베트로 탐험대를 파견했으며, 샹바라(Shambhala) 동굴과 "세계 축" 전설을 찾으려 했다. 이 탐험은 영국군에 의해 저지되었으나, 샹슝 문명의 신비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찌의 표상이 되었던 하켄 크로스 또는 만(卍)자의 유래는 여러 설이 많지만 그 중의 하나는 바로 히틀러가 찾으려 했던 전설 속의 웨이마롱런(魏摩隆仁)이 있다는 강인파제봉(岡仁波齊峰 , གངས་རིན་པོ་ཆེ, Mount Kailash)에서 흐르는 네 줄기 강물을 형상화한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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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에덴 동산에도 네 줄기 강이 흐른다는 말이 있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더라.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라." (창세기 2:10-14)
여기서 네 강이 어느 강인지는 당연하게도 논란이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을 소개하면 비손 (Pishon): 하윌라 땅을 둘러싸며, 금과 보석이 있는 지역이라고 하고, 기혼 (Gihon): 구스(또는 에티오피아로 추정되는 지역)를 둘렀다고 나온다고 한다. 힛데겔 (Hiddekel): 티그리스 강으로 알려져 있으며, 앗수르(아시리아) 동쪽으로 흐르고 유브라데 (Euphrates): 유프라테스 강으로, 현재의 중동 지역에 실존하는 강이라고 한다. 히틀러에게는 이 에덴의 네 강이 티벳에 있다고 여겨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켄 크로스는 메소포타미아 도자기에서도 발견이 된다. 나치의 하켄 크로스와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불교의 만자는 그 방향이 반대다. 어떤 이들은 이 방향으로 인해 하나는 악이고 하나는 선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어떤 합리적 근거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기독교의 십자가처럼 너무나 단순하고 자연에서도 소용돌이 형태를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그라미가 태양이라든가 만두 모양이 달이라고 하는 의식은 어느 곳에서도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하켄 크로스는 자연에서 관찰되는 형상으로 전 세계에서 이 문양이 발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비롭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신비로운 법이다. 아무튼 여러 종교에서 성산으로 여겨지는 강인파제는 이 산을 한바퀴 돌면 윤회를 한 번 한 것이 된다는 믿음의 유래라고도 여겨지며 이는 티벳 밀교에서 신자들이 윤회륜을 돌리는 관행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일 수 있는 샹송(象雄)은 이 산자락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 전설인 환웅이 백두산에 내려와 천시를 연 것과 매우 흡사하다. 설산, 신령, 그리고 최초의 국가말이다. 샹송이라는 말의 의미는 산 속의 대붕, 즉 전설의 큰 새를 말한다. 도가에 자주 나오며 힌두교의 가루다와 겹치는 이미지이다. 어떤 이들은 이집트의 신들과 연관 짓기도 한다.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가 대표적이고 태양신 라도 태양 원반이 주 상징이지만 때때로 매의 머리로 표현되고 전쟁의 신 몬투도 가끔 매의 머리를 한다. 결국 높디 높은 신성한 설산에 엄청난 날개를 가진 새가 날고 앉는 곳에서 이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명일 수 있는 샹송이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샹송 이전에는 춍롱(瓊隆)이라는 부족이 있었다고 하는데 한자야 아름다운 옥, 높을 융이지만 티벳 말의 음차일 가능성이 크니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춍(瓊)이라는 이름의 신성한 새의 후손이라고 한다. 춍(瓊)은 금빛 깃털의 커다란 대붕을 말하니 아마도 새 토템인 모양이다. 춍롱 부족의 인구가 늘어 결국 세계의 지붕에 샹송 문명을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이 춍롱 부족 시기 이미 종교 체제는 상당히 발달해 있었고 이것이 바로 본교이다. 본교를 종료로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샤머니즘에 가깝다는 것이다. 본교는 불, 빛, 벼락, 산, 호수 등 자연만물에 신령이 있다고 보았다. 전형적인 원시 샤머니즘이다. 그러나 이 본교에는 세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웨이상(煨桑), 피 네사(血祭), 신 뛰기(跳神)이다.
웨이상(煨桑)은 곡물이나 소나무 가지를 태워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아래 웨이상의 사진에 안데스 남미 사람들의 사진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의 할머니들이 논이나 밭에서 볏짚을 태우는 장면과도 겹친다. 춍롱 부족은 이런 방법으로 짙은 연기를 내어 신령을 불렀다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촛불을 밝히고 조상을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 뛰기는 신령과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아래 티벳의 사진을 보라. 우리 무당, 우리의 처용무 등과 무엇이 다른가?
피 제사는 짐작하겠지만 소나 양을 희생하여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사람을 제사 지내는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이 또한 잉카나 마야 문명을 연상하게 한다. 하기는 상나라 때 수 많은 강족을 붙잡아다가 인신 공양을 한 것을 보면 예전에는 어느 곳에서나 인신 공양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겠다. 심지어 기독교의 아브라함도 아들을 인신공양하려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러한 희생은 성인 신야미워(辛饒彌沃)가 나타나 본교를 개혁하고 없어졌다고 한다. 사실 신야, 미워 모두 이름이 아니라 성자, 성인의 뜻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름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는 첫 번째 성인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믿고 있는 것을 바꾸는 것은 언제 어느 때나 쉬운 일이 아닐테니 엄청난 사람들의 추종을 얻을 수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용중(雍仲) 본교는 바로 이 사람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본교는 이로서 용중(雍仲)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바로 피 제사를 멈춘 것이 대표적이다. 신야미워는 피 제사를 중지하고 세상의 도리를, 즉 세계관을 교화하였다. 얼마나 신야미워가 숭앙을 받았는지 신야미워는 1만년 전에 태어나서 수 천년을 살았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보다 믿을 만한 기록은 그가 기원전 1917년 태어나 82세에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용중(雍仲) 본교는 대체로 기원전 2천년에서 1천년 사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 용중이 영원불멸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는 흥망성쇠가 있으나 영원한 것은 이념, 사상, 철학이라는 것으로 즉, 종교야 말로 영원한 힘으로 이해한 것이라고도 한다.
앞서의 하켄 크로스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이 신야미워라고 한다. 하기는 이 또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켄 크로스를 신야미워가 활용했을 뿐이고 기호 자체는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바로 용중 본교의 이전 단계인 쓰바(斯巴) 본교를 말한다. 쓰바 본교는 창시자에 대해 알려져 있지 않으며 용중 본교 이전에 이미 중앙 아시아 일대에 널리 행하여졌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UUrtDovBVw&list=WL&index=14
샹송 문명 1만 8천년 전 설이 과연 성립할 수 있을까? 구석기 시대일텐데 말이다. 외계인이나 UFO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런 설도 있다. 예를 들면 남미 Ñaupa Iglesia(냐우파 이글레시아)는 페루 쿠스코의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에 위치한 신비로운 잉카 유적지로, "오래된 교회"라는 뜻을 가진 케추아어와 스페인어 혼합 이름이다. 이곳의 거석 문명이 바로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곳에(과연 티벳의 설산과 지형이 비슷하다!) 동굴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돌을 쌓아 막아 놓았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건물이라기에는 들어갈 수가 없고 건물이 아니라기에는 모양이 너무나 집과 같다. 그런데 이들 유적의 연대가 1만 7천년 전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 문명이 1만 7천년 전의 것이라면 샹송 문명이 1만 8천년 전의 것이 안될 이유도 없지 않을까? 물론 어떤 이들은 본교가 말하는 1만 8천년 전은 월력으로 태양력으로는 1500년 정도이며 고고학적 발굴 결과와 일치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4천년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4천년 전이면 이집트 쿠푸 왕의 대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때이기에 신비감은 없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Morf_i5xm2Q&list=WL&index=4
이 유적의 가공 기술을 보면 절대 1만 7천년 전의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들의 돌 가공 기술은 눈으로 보아도 구석기 시대이기 어렵다. 당신에게 돌을 깨서 만든 돌 도끼를 주고 아래 사진처럼 가공해 보라면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실제로 이 석벽의 수평선은 매우 정준하다고 한다. 각도 오차가 가장 큰 부분이 0.9도에 불과하여 정확하게 사각형 모습을 하고 있다. 이 0.9도 차이는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렵다고 한다.
가운데 있는 것은 문일까? 문이라면 왜 뚫다 말았을까? 물이 아니라면 이 구멍의 용도는 무엇일까? 신상을 안치하려 한 것일까? 신상을 놓으려면 테이블을 만드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이 바위는 안산암(andesite) 6~7이다. 청동의 경도가 3~4, 철석이 4~5이므로 청동기 시대나 철기라 하더라도 가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안산암의 표면에 흑요석이 한 층 덮고 있던 것이 확인되었다. 안산암을 1,250도의 고열로 가열하면 녹아내린다고 한다. 이때 물을 끼얹는 등의 방법으로 냉각하면 유리화가 진행이 되며 해당 부분이 흑요석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이 암석의 표면에 흑요석 성분이 매우 많은 것은 아마도 원래 이 암석은 고열로 가열한 후 급속 냉각시켜 표면이 매끄러운 흑요석으로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렇다면 당시 이 암석의 모양은 지금과 달리 거울같이 반사하는 매끈한 흑요석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정말이라면 너무나 신비한 광경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 1만 7천년 전이면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기 수천년전에 어떻게 그런 지식과, 그런 고열을 내는 방법과, 그런 암석 가공 기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믿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흑요석이 암석의 표면에서 확대경을 놓고 보아야 보일 수준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근의 Puma Punku의 거석 유적도 안산암이라고 하며 구조나 가공법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동일한 수법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호사가들이 분석해본 결과 역시 동일하게 흑요석 성분이 나왔다고 한다. 고대인들이 우리가 구석기 시대라고 해서 지푸라기 엮은 집에 원시인이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1,250의 열을 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장작을 쌓아 짚인 불로 충분하다고 한다.
게다가 흔적을 살펴보면 이 유적의 앞 바닥도 원래는 석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남아있는 벽과 문 모양 뿐 아니라 바닥도 흑요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치 디스코 클럽의 플로어처럼 매끄럽고 반사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낮에는 태양이 바닥에서 빛나고 밤에는 달과 은하수가 바닥에 보였을 것 같다. 얼마나 신비로운 광경인가?
호사가들이 그렇다면 원래 암석의 표면에서 흑요석화 한 부분이 지금과 같이 모두 떨어져 나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인가 분석해본 결과 대략 1만 7천년이었다고 한다. 1만 7천년! 샹송 문명이 정말 1만 8천년 전에 있었다면 남이의 이 거석 유적들 또한 1천년의 시차는 있지만 거의 유사한 시대의 문명이었을 것이다. 물론 모든 가정과 상상이 진실일 경우의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이 유적들의 북부로 거슬러 올라가면 또 하나의 유적 Naupa Iglesia가 나온다. 그리고 그 북부에는 그 유명한 Machu Picchu, 즉 마추 피추가 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Ollantaytambo가 있다. 여기에도 일관되게 문의 모양을 닮은 유적이 있다.
이들 유적들은 모두 해발 3천 미터 가가운 산위에 있는데 비해 사용된 안산암들의 채석장은 산 아래 평지에 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이런 돌들을 이런 높이까지 끌고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여기서 다시 이동하면 Cucso가 나온다. 이곳의 석벽은 서로 잘 가공하여 맞물려 있는데 어떻게 운반했는냐도 미스테리지만 어떻게 모양을 이렇게 빈틈없이 맞출 수 있었는가는 더욱 미스테리이다.
샹송 유적에 대해 1만 8천년 전 설과 4천년 전 설이 있듯이 이들 남미 유적지에 대해서도 시점에 대한 큰 이견들이 존재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학자들 손에 맡겨야 할 것이다. 다만 호사가의 한 사람인 필자로서는 우리의 사고 체계와 완전히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진 이들 문명에 대해 무한한 호기심을 느낀다. 처음 중국에서 침으로 환자를 마취하고 뇌수술을 하는 광경을 보았을 때의 경외심을 잊을 길이 없다. 뇌수술을 받으며 의사와 대화하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경악할 장면이었다.
샹송 문명은 샹송대장경이라고 하는 엄청난 학술 체계를 남겼다. 중국에서는 이 샹송 대장경을 해독하는 대사업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8만대장경을 디지털화 한 사업에 비견된다. 그러나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어렵고 더구나 읽고 해독하기는 더욱 힘들다. 그래도 조금씩 해석과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언젠가 샹송대장경의 내용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