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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Aug 16. 2019

그래도 희망은 있다

홍콩이 사는 법

홍콩 시위 사태는 잦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홍콩 시민들이 모두 자신의 현금을 꺼내 미 달러로 교환하자고 하는 날이다. 홍콩이 보유하고 있던 4천억 달러를 중국 정부가 시민들 몰래 빼내갔다는 소문이 있거니와 홍콩의 금융을 마비시켜 중국을 곤란하게 함으로써 시민들의 의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이어서 일요일인 18일에는 다시 대규모 항의 시위가 계획되어 있다.


중국 정부는 진작부터 홍콩 주변에 군대와 무장경찰, 그리고 특무대 등을 준비해 놓고 시위 억제 훈련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방송하며 위협을 해 왔다. 그리고는 어제부터 일부 병력이 이미 홍콩 영역인 구룡으로 진입하였다는 소문도 퍼진다. 중국 시민들이 촬영한 모습이라며 중국 무장 경찰의 장갑차들이 심천만 지역으로 집결하는 모습이 중국의 인터넷에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촬영한 각도라던가 배포되는 양상을 볼 때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퍼뜨리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시 트위트를 통해 시진핑 주석이 '인도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했고 미중 무역 협상이 이루어지려면 중국이 '인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personal meeting?"이라는 말을 트위트의 말미에 덧붙였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장 많은 해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에게 만날 것을 제안한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왕하오 박사 같은 사람은 트럼프의 뜻은 시진핑 주석이 직접 홍콩 시민들을 만나서 해결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원래 홍콩 방문 예정이었던 미국의 군함 두 척에 대해 중국  정부가 불허함으로써 일부 사람들은 미국이 필요시 군사 행동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이를 중국 정부가 원천 봉쇄한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 함정의 방문 요청은 이미 오래전에 이루어진 것이고 관례였다고 한다. 미국의 함정이 어떤 국가를 방문하는 경우 해당 국가에서는 많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미군의 입장에서 미군 함정을 어떤 국가에 보내는 가장 큰 목적은 오랫동안 해상 생활을 한 장병들에게 휴가를 주는 목적이 가장 크다고 한다. 

미 그린베이 호

필자는 어떤 사안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잘 예측이 되지 않으면 3단 분석이라는 것을 한다. 뭐 엄청난 것은 아니다. 단지 왕왕 사안 속에 몰입이 되면 객관적인 대세가 눈에 안 들어 노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는 것뿐이다. 필자의 3단 분석은 장기, 중기, 단기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는 것이며 지역적으로도 글로벌, 대륙, 해당 국가 식으로 확대해서 해당 범주의 요인들을 고려해 본다. 그러면 마음이 급해 보지 못하던 것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이 많다.


장기적, 글로벌 시각

홍콩 사태에 접목해서 분석해 보면 우선 장기적인 관점, 글로벌한 관점에서 볼 때 홍콩 사태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의 충돌, 또는 요즘 유행어로 문명의 충돌, 또는 가치관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물리적으로 중국에 회귀된 홍콩은 자유 무역, 글로벌 금융 중심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100년을 두고 생각해 본다면 서방세계가 지난 세기 동안 누적해온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 법치 국가 등의 이념을 구현한 사회이다. 그리고 번영을 구가해왔다는 점에서 상대적인 우월감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반면 중국은 사회주의, 전체주의,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정치가 법치를 우선하는 사회이다. 지난 세기 동안 경제적인 빈곤 상태로서 상대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개혁 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통하여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간의 열등감을 상쇄하는 과도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규모를 통한 국력을 보유했다는 인식으로 이제 세계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이 두 세계가 물리적으로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 홍콩의 중국 회귀이며 50년의 유예 기간, 또는 준비 기간이 '일국양제'이다. 그러나 화학적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차이, 즉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극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필자는 1997년 회귀 당시 중국의 집권층은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홍콩 문제, 그리고 나아가서 마카오 및 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홍콩을 잘 소화해 내야만 하며 홍콩이 번영하고 또 자발적으로 중국의 일부분이 될 필요가 있다. 총칼을 사용한 무력 통합은 이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시 중국의 지도부가 추진한 것이 '삼개대표 이론'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삼개대표 이론'은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개대표 이론'이란 무엇인가? 세 개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삼개(三个)', '대표(代表)' 이론이다. 그러면 어떤 세 개를 대표한다는 말인가?  위키 백과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항상 중국의 선진 사회 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표한다. (始终代表中国先进社会生产力的发展要求;)

항상 중국의 선진 문화의 전진 방향을 대표한다. (始终代表中国先进文化的前进方向;)

항상 중국 대부분의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한다. (始终代表中国最广大人民的根本利益.)

필자의 이해가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조금 더 설명을 부연한다면 삼개, 즉 3개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휴먼웨어를 의미한다. 하드웨어는 사회 인프라, 도시, 건물, 공장, 기술 개발 등 중국 사회의 발전에 있어 필요한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문명을 의미한다.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하드웨어를 발전시키고 건설해 나가는 주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중국 사회의 무형적인 자산과 제도를 말한다. 물론 예술, 문화 등을 포함하지만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서 법치와 같은 사회 질서 체계, 사회 제도의 정비 및 발전, 정치 시스템의 개선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사회 무형적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정비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휴먼, 즉 인간에 대한 것은 (필자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위한 정당이 아니며 중국 사회의 모든 사회 계층, 모든 이익 집단, 모든 인적 구성 요소를 대표한다는 의미이다. 즉, 중국 공산당은 단지 프롤레타리아 계급뿐만 아니라 자본가, 지식인 등 모든 사외 구성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 삼개 대표 이론은 당시 필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하지 않는 공산당이라는 것이다. 그럼 새로운 중국 공산당은 어떤 정당인가? 그 정체성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삼개대표 이론의 배경 하에 많은 국가의 국영 기업들이 민영화되기 시작한다. 동시에 일정 규모 이상의 사기업에도 공산당 조직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수립되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민간 기업에도 공산당 조직을 강제화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당시 시작 시점에서는 한편으로 국가가 직접 소유하고 통제하던 많은 자산들을 민영화하고 시장화하면서 공산당의 사회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써 도입되었던 것이고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자본가와 주주들의 이익도 '대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실제 진정한 목적이 과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이 삼개 대표 이론은 당시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태자당 쪽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이념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게다가 실제로 국가 자산의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장쩌민 파벌의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상당한 이권을 챙겼다. 통신 쪽은 장쩌민 일가가 장악했다는 소문이었고 전력 계통은 리펑 쪽이, 석유 쪽은 누구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전통적인 공산당 시각에서 볼 때에는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로 비추어졌을 만하다. 


하지만 장쩌민이 물러나고 후진타오와 시진핑 시대를 거치며 이 삼개대표 이론은 점점 들리지 않게 된다. 그리고 제도는 남았지만 이념은 사라지고 민영화의 추세는 멈추고 '국진민퇴'가 대신 자리하게 되었다. 필자는 삼개대표 이론이 지속 발전하였다면 종국적으로는 어떻게 던 홍콩 사회와 중국 대륙이 서로 융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차이를 줄이려는 양쪽의 노력이 서로에게 인정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홍콩 사회의 이념과 중국 대륙의 이념은 융합할 수 없어 보인다. 지금의 중국 공산당은 어떤 계급도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저 '중국 공산당'을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마치 거대한 국가 자본주의처럼 보이며 과거 봉건제의 황제의 자리를 중국 공산당이 대체했을 뿐인 것 같은 인상도 준다. 그래서 필자는 장기적, 글로벌적 시각에서 본다면 지금의 홍콩과 중국이 융합할 수 없다고 본다.


중기적, 지역적 시각

필자가 생각하는 중기는 대략 10년에서 20년 정도의 기간으로 정권이 바뀌고 인적 요소가 달라지는 기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을 요소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주변 국가들의 영향을 함께 고려해 본다.


삼개 대표 이론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중국이 10년, 20년 뒤를 내다 보고 홍콩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비교적 쉽게 대답이 가능하다. 중국이 홍콩뿐만 아니라 타이완의 통일도 고려하여 두 가지 정책 수단을 사용해 왔다. 하나는 군사력의 현대화, 과학화, 증강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적 종속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해 오고 있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에 여기서 거론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경제적 전략은 다룰 필요가 있다. 타이완에 대해 경제적 종속도를 높이는 전략은 이미 20년 가까이 실행되고 있다. 타이완에 대해서는 같은 나라라는 명분으로 관세를 없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타이완의 농산물들을 대량으로 수입하여 반중 성향이 강한 타이완의 농민들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해 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타이완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광을 장려하고 심지어 경비를 지원하며 타이완으로 보내는 노력을 해 왔다.  중국 대륙에 투자하는 타이완 기업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했음은 물론이다. 이로서 상당 정도 타이완은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게 되었다. 타이완은 이제 한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중국 의존도가 높은 경제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경우가 다른 것이 홍콩이다. 중국이 개방되기 전에는 홍콩은 중국의 비공식 관문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의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홍콩은 대 중국 독점적 지위를 영위하게 되었고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을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홍콩이 중국의 덕을 본 것인지 중국이 홍콩의 덕을 본 것인지를 따진다면 적어도 홍콩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중국이 홍콩의 덕을 본 것이다. 그리고 개혁 개방이 이루어진 후에 외국 자본의 대부분이 홍콩의 금융 인프라를 통하여 중국에 투자되었다. 이 또한 홍콩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홍콩이 중국에 투자한 것이다. 대륙 쪽에서 볼 때는 외국이 중국에 투자한 것이고 홍콩은 중국에 붙어있다는 이유로 구전을 떼어먹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중국의 개방이 가속화되고 더 많은 외국 자본들이 직접 중국 대륙에 진출하게 되면서 상하이 같은 곳이 홍콩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홍콩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중요해지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일부 중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어떻게든 홍콩에 집중되어 있는 국제 금융 중심의 위상을 상해로 이전하기 위한 방법에 부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현상은 홍콩 사람들에게 홍콩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었다는 인식보다는 중국이 그동안 홍콩으로 인해 발전하였지만 이제는 홍콩의 경제적 위상을 갉아먹고 대체하려는 경쟁자도 인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요점은 중기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이 홍콩을 융합하는 수단은 군사력과 경제적 종속이라는 두 가지였으나 경제적 종속이라는 정책 수단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홍콩이 지금보다 더 중국 대륙에 경제적으로 종속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이 중기적 관점에서 홍콩에 사용할 수 있는 융합 수단은 군사력 외에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니, 사실은 다른 수단이 하나 있다. 중국이 지금의 좌경화된 정책 기종에서 벗어나 '삼개대표 이론'의 시각으로 되돌아가서 보다 개방적 사회 체계로 '우향화(?)'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가장 모두에게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현 지도부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므로 채택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단기적, 국지적 시각

단기적이란 말 그대로 지금 눈 앞에 있는 상황을 말한다. 미중 무역 협상은 난항이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세계 각국은 홍콩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라고 하고 있으며 시위는 가라앉을 줄 모르고 내부의 도전은 커져가고 있다.


시진핑 주석과 그 지지 세력은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타이완의 왕하오 박사의 표현을 빌면 '좌경 모험주의'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홍콩 사태에 대하여 앞서 기술한 장기적 시각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홍콩을 압박할 수단도 마땅하지 않다. 따라서 남은 방법은 두 가지 라고 본다.


하나는 무력 진압이다. 이미 모든 준비는 마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무력 진압을 할 경우 전 세계에 끼칠 영향이다. 서방 세계를 비롯한 전 세계로부터의 경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크고 그것은 지금도 매우 어려운 포지션에 있는 중국에게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만일 향후 상당 기간에 거쳐 전 세계로부터의 경제 제재를 받는다면 시진핑 그룹의 집권 유지도 어려워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연책이다. 일단은 물러 나서 시간을 벌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사실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다.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최근의 중국 정부는 진퇴양난의 골짜기에 자기 자신을 몰아넣는 경향이 있다. 필자라면 오히려 홍콩의 자치 기간을 50년 더 연장해 주고 그 대신 연장 시기에 태어나는 홍콩 시민들은 홍콩이 아닌 중국 공민으로서의 법률적 지위를 가지는 등의 방식으로 홍콩 시민들을 달래고 동시에 중국 국민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좌경'의 시진핑 그룹이 이런 융통성을 가질 수 있느냐 이다.


경영학에서 하는 말 중에 '어떤 의사 결정도 무결정보다는 낫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 당국이 어느 쪽도 결정하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최악의 사태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뿐이며 중국 당국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다이허 회의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 아직까지 명확한 변화는 모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필자가 더욱 홍콩 사태를 걱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것은 시진핑 그룹이 실각하고 새로운 그룹이 정권을 장악하는 일이다. 홍콩에 평화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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